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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난이 고난을 이해하고 상처가 상처를 품어주는
배우·감독 추상미 | 2018년 06월호
  • 고난이 고난을 이해하고
    상처가 상처를 품어주는

     

    배우·감독 추상미

     

    그녀는 원래 유명 여배우였다. 그런데 어느 날 북한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영화를 들고 영화감독이 되어 나타났다. 게다가 요즘은 북한과 통일을 위한 청년 모임까지 이끈다고 했다.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북한으로 향하게 했을까? 그 시작은 TV에서 방영된 북한의 *꽃제비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충격을 받은 어느 날부터였다고 한다. 그날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그녀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 꽃제비 : 먹을 것을 찾아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돌아다니는 북한의 어린아이들. 

     

    취재│한경진 기자·사진│정화영 기자

     

     

    Q. 북한 꽃제비 영상에 왜 그렇게 감독님 마음이 꽂히신 걸까요?
    그 다큐멘터리를 본 게 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을 때였어요. 남편이 바빠서 혼자 아이를 돌볼 때가 많았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꼼짝없이 아이만 봐야 하는 상황이 너무 낯설었고 몸이 힘드니까 마음까지 힘들더라고요. 정신적으로 많이 쇠약해졌죠. 제가 14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거든요.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매일 아이가 죽는 꿈에 시달렸어요. 아이가 갑자기 잘못될 것만 같고, 아이에 대한 애착이 집착처럼 강해지던 때였죠. 그 무렵에 그 영상을 보게 된 거예요. 먹을 게 없어서 토끼풀을 뜯어 먹는 아이를 보는데 정말 눈물이 끝없이 흐르더라고요. ‘쟤는 엄마가 어디 있길래 저러고 다니지?’ 싶었어요. 예전 같으면 그냥 안됐다고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부모가 되니 그 아이가 다르게 보이는 거 있죠. 우리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겹쳐 보이기도 하면서요.

     

    Q.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약해진 상태여서 더 그랬던 걸까요?
    저도 ‘내가 왜 이렇게 울지?’ 싶을 정도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요. 그때 하나님이 깨닫는 마음을 주셨어요. 이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시는 거라고요. 하나님이 그 아이를 보면서 이렇게 애통하고 계셨던 거예요. 그때 북한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됐죠. 사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북한은 저에게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 인권이 유린당하는 나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나라 정도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이후, 북한에 대한 마음이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으로 바뀌더라고요. 마치 살인을 저질러서 사형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자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랄까.

     

    Q. ‘사형장으로 가는 자녀’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요?
    그곳은 하나님을 모르는 땅이고 또 국가 자체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고 있잖아요. 백성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그게 죄인지 모르는 채로 살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죠. 실제로 북한은 그 죄의 결과로 역사적으로 수없이 아픈 사건을 겪었고, 지금까지도 극심한 가뭄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어요. 하나님을 거부한 죄의 결과로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북한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Q. 그런 마음 때문에 북한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게 되신 건가요?
    바로 그런 결심을 한 건 아니고 계기가 있었어요. 우울증 때문에 날마다 삶보다는 죽음을 묵상하던 어느 날 예수님을 뜨겁게 만났어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이렇게 네 가까이 있는데 왜 죽음을 생각하니. 내가 너의 진짜 남편이고 진짜 인생의 동반자야”라고요. 그러면서 웅크렸던 저를 부축하시고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환상처럼 보여주셨죠. 그 순간 저는 다시 태어났어요. 그날부터 3개월 동안은 매일 기도하고 말씀 읽는 게 일과의 전부였죠. 주님이 내 남편이라고 하시니, 저는 신부가 되어서 정말 신혼처럼 매일 행복에 겨워 살았어요. 그러다 문득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님, 제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 텐데 그게 뭐죠?”라고 물었어요. 그때 저에게 비전을 주셨죠. “나는 너를 하나님 나라의 예술가로 세우고 싶다”라고요.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성도들을 향해 주시는 메시지가 있는데, 그걸 담아내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 제가 할 사명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당시에 저는 이미 영화 연출을 공부하던 중이었고, 단편 영화를 두 편 만든 후에 육아 때문에 휴학을 한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그 후에 장편 영화를 만들 소재를 찾다가 만난 것이 폴란드로 유학을 가게 된 북한 전쟁고아들의 이야기였어요.

     

    Q.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영화죠? 어떤 이야기인가요?
    한국전쟁 후에 북한에는 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겼어요. 김일성 정부는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외교라는 명분으로 약 1,500명의 고아들을 폴란드, 러시아, 체코 등 사회주의 국가로 위탁교육을 보내죠. 그중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특별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고 해요. 폴란드는 특이하게도 사회주의국가이면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요. 가톨릭이 너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국가도 이를 어찌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마침 북한 아이들을 돌보게 된 분들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어요. 이들은 정말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봤어요. 제가 얻은 자료들을 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으로, 한 가족으로 돌보았는지 알 수 있어요. 다른 나라로 간 아이들과 달리 폴란드 사람들은 자신들을 ‘선생님’이 아닌 ‘아빠’, ‘엄마’라고 부르게 할 정도로 남다른 사랑을 주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8년 뒤에 북한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버려요. 그때 한 폴란드 선생님이 쓴 글이 있어요. “주여, 저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아이들을 저희에게서 떼어 놓으십니까”라고요.

     

    Q. 아, 정말 자녀로 여겼던 거군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저도 그게 궁금해서 직접 폴란드에 가서 취재를 시작했어요. 그 일이 있은 지 70년이 지났고, 당시에 아이들을 돌보시던 분들은 80대, 90대 노인이 되셨는데도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시더라고요. 또 그때 아이들과 떨어진 이야기를 하며 자식을 잃은 것처럼 펑펑 우셨고요. 그런 애틋함이 어떻게 가능한지 참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그분들 역시 북한 고아들처럼 어린 시절에 2차 세계대전을 겪은 경험이 있었던 거예요. 자신들이 고아이거나 전쟁 중에 가족을 잃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 아이들의 아픔을 지나칠 수 없었던 거죠. 자신의 상처가 연결고리가 되어 또 다른 상처를 품은 거예요.

     

    Q.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무척 감동이 되네요. 영화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건 1년 반 전이에요. 극으로 된 영화를 만들려고 준비하다가 실제로 폴란드에 가서 선생님들을 만나고 나니, 단지 시나리오만을 위해 이분들을 인터뷰하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한 내용을 가지고 <그루터기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먼저 만들었어요. 영화를 위한 사전 다큐멘터리인 거죠. 이 다큐멘터리만으로도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실제로 북한에서 온 친구들을 섭외해서 촬영 및 편집까지 마쳤고 개봉을 위해서 배급사와 조율하는 과정에 있어요. 그러기까지 1년 반 넘게 끌고 오다 보니 스텝들도 지쳐서 떨어져 나가고 관계자 분들에게도 죄송스러워지고 해서 ‘아, 이거 하지 말라고 하시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지금 와서 보니 오히려 이때까지 하나님이 기다리게 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만들었을 당시는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라 개봉을 했어도 오히려 반감을 샀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남북 관계가 반전이 되어버렸잖아요.

     

    Q.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기대가 되네요. 영화감독으로서 영화를 통해 주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 작품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소재이고 메시지이기 때문에 계속 기도하면서 인도하시는 대로 작업을 해왔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에도 아이디어를 주시는 대로 받아 적기만 했죠. 그러면서 든 생각은 통일은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시려는 하나님의 비전이라는 거예요. 폴란드 분들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도 같은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전쟁과 분열된 상처, 목숨을 걸고 힘겹게 신앙을 지킨 경험들이 우리 민족을 살릴 것이고, 더 나아가 다른 민족을 살리게 될 거예요. 아직도 남아 있는 사회주의국가들과 우상으로 가득한 일본,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중동을 비롯해 아직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유대 사람들까지요. 물론 통일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이겠지만, 정치와 경제가 통일되어도 사람이 통일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겠죠. 2천만의 동포를 우리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복음으로 하나 되는 것, 그 일은 참 오래 걸리겠지만 교회가 나서서 꼭 해내야 할 일이고, 이 글을 보는 다음세대가 꼭 이뤄내야 할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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