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섭 형제를 처음 본 건, 한 케이블 TV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3(이하, 너목보3)>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채널을 돌리던 중 한 외국인 친구가 ‘11학번 준섭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는 능청스럽게 립싱크를 하는 걸 보며 ‘특이한 친구네’ 하고 무심하게 시청했었다. 그 친구는 결국 그 프로그램에서 우승해 가수 존박과 함께 소울 넘치는 파이널 곡을 선보였다. 그것도 무척 잘 불렀다. 그리고 다음날, SNS를 뒤적이던 중 길거리에서 찬양하는 한 외국인 친구의 영상을 보게 됐다. 그런데 이럴수가! 그 영상의 주인공이 바로 어제 TV에서 봤던 준섭 형제였다. 이 친구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듣게 되었다.
취재│한경진 기자·사진│정화영 기자
11학번 준섭이
: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를 전공한 11학번 준섭 군의 별명. <너목보> 프로그램에서 ‘11학번 준섭이’라는 글씨를 티셔츠에 새기고 나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제가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에 오기까지 한 건 케이팝 때문이었어요. 미국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케이팝이 너무 좋아서 한국에 관심이 많았고, 뮤지컬 배우가 되고도 싶었죠. 제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음악이나 예술은 힘든 직업이니까 대학에서는 다른 전공을 선택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들을 해줬어요. 그래서 제 관심사였던 한국어학과에 지원했던 거예요. 하지만 뮤지컬도 포기할 수 없어서 뮤지컬 전문학교에도 지원을 했었죠. 사실 두 군데 모두 합격을 했는데,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어요. 제가 노래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춤과 연기는 nothing, 완전 못했거든요. 학교에 입학을 한다 해도 잘 해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하나님께 기도를 했어요. 저에게는 학비가 필요하니까 장학금을 주는 학교로 가겠다고요. 그래서 장학금을 많이 주는 오하이오주립대 한국어학과를 선택하게 된 거예요. 한국어학과에 입학한 후에는 모든 게 좋았어요. 물론 공부 자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관심 있는 분야여서 그런지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조셉이었던 준섭이
: 한국에서는 ‘준섭’으로 불리지만 준섭 군의 본명은 ‘조셉’이다. 대학 때 가장 친하게 지내던 한국 친구가 발음이 비슷하다며 조셉에게 준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준섭이라는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았어요. 조셉이라는 이름을 꼭 바꿔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다니엘이 이집트에서는 ‘벨드사살’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성경인물들에게도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더라고요. ‘아, 이름이 바뀌는 것도 의미가 있겠구나’ 싶었죠. 그때부터 준섭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게 됐는데, 지금 보니 <너목보3> 프로그램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저에게 ‘11학번 준섭이’라는 특이하고도 친근한 캐릭터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요.
<너목보> 준섭이
: 준섭 군은 케이블TV의 진짜 가수 찾기 프로그램 <너목보>에서 우승해 가수 존박과 멋진 듀엣곡을 선보였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11학번 준섭이’가 인기검색어 순위권에 들기도 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이곳에 오면 연예인들도 많이 만나고, 케이팝도 마음껏 듣고, 가수도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오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케이팝스타> 오디션에도 참가했다가 잘되지 않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나 돈이 없는 현실도 힘들었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영적인 부분이었어요. 왜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는지, 나는 크리스천인데 왜 이렇게 삶이 힘든 건지…. 그런 생각 때문에 많이 괴로웠죠. 그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말씀’ 덕분이었어요. 계속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들도 믿음의 사람이 되기 전에는 힘든 일이 많았고, 광야의 삶을 살았잖아요. 그걸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저를 회복시켜주셨어요. 그분들과 함께 길거리 찬양도 시작하게 되었고요. 그러던 중에 <너목보3>에 나가서 우승도 하게 되었죠. 사실 촬영하는 것도 힘들었고, 외국인이라 우승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요. 우승을 하고 나니 많은 게 달라졌어요.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인터뷰 요청도 들어오고 있어요. 그 덕분에 많은 걸 배우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이나, 조심히 행동하는 것들을요.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에게 축복의 말이나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죠. 처음에는 아이돌이 되려고 한국에 왔지만, 이곳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찬양을 시작하게 되었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게 되고…. 이제 저는 사는 목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태원 준섭이
: 준섭 군은 현재 ‘연탄365’라는 사역팀과 함께 이태원, 홍대 등에서 한 달에 두 번 찬양 버스킹을 한다. 지금은 바빠서 이전만큼은 못하지만 혼자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길거리로 나가서 자유롭게 찬양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제가 길거리에서 찬양하는 걸 보면서 은혜를 받았다고 얘기해 주세요. 저도 다른 곳보다 길거리에서 할 때 자유로워요. 사실 교회에서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지만 여럿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옷차림이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잖아요. 그래서 버스킹할 때가 참 좋아요. 일어서도 되나요? 움직여도 되나요?라고 묻지 않아도 되니까요. 지금 함께 버스킹을 하는 ‘연탄365’ 팀과는 1년 전부터 함께했는데요. 처음에는 몇 사람 없는 곳에서 찬양을 했는데, 영상을 통해 제 얼굴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있어요. 오 마이 갓! 처음에 사람들이 모인 걸 보고 완전 놀라기도 했어요. 물론, 버스킹을 하다 보면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고, 가끔은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순간순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어요. 그래도 제가 외국인이라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한국 사람이 찬양을 하고 복음을 전하면 거절하거나 자리를 비키라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저는 찬양을 할 때 크게 거절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다들 그냥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루살이 준섭이
: 한국에 처음 올 때 품었던 아이돌의 꿈에서는 조금 멀어졌고, 생활 역시 크게 나아진 것은 없지만 준섭 군은 하루하루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지금이 가장 편하고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원래 저는 ‘오늘 이렇게 해야 돼. 다음 주는 이렇게 준비하고, 내년은 이렇게 해야지’ 하고 철저히 계획하면서 살아왔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어려움도 겪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면서 하루씩 사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그게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물론 마음에 바라는 것도 있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지만, 만약 그것이 안 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살고 싶어요.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요. 하나님은 아버지가 자녀를 항상 사랑하고 안아주는 것처럼, 제가 좋은 사람이 되도록 사랑해주시고 관계를 맺어주시고 안아주시는 분이거든요. 저는 한국의 청소년들도 이것을 항상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자기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꼭 붙잡고 가야 한다는 것을요.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꼭 알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