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손수 심은 장미꽃으로 꾸며진 길, 매일 당번을 정해 청소하고 먹이를 주며 열대어를 기르는 학생들,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고 짬을 내어 기도제목을 나누는 모임 현장, 시간이 부족해 기자가 사 간 빠삐코를 먹지 못하자 봉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발길을 돌리던 순수한 친구들…. 목포 덕인중학교에서 만난 풍경들은 기자가 알고 있던, 북한군마저 두려워한다던 ‘중이병’ 학생들이 모인 공포의 현장이 아니었다. 직접 와 보니 ‘사랑을 나누는 강선생’ 블로그의 운영자인 강정윤 선생님의 넘쳐나는 포스팅 욕구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취재│한경진 기자 · 사진│한치문 기자
블로그는 저에게 일기장인 셈이에요. 저는 이 공간을 ‘단상록(Teacher's diary)’이라고 불러요. 대학 때 교사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매일 일기를 쓰라는 과제를 받은 적이 있는데요. 2014년에 목포에서 첫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미흡함 때문에 실수도 하게 되고, 여러 고민이 쌓이다 보니 그때처럼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목포 아그들(선생님은 아이들을 ‘아그들’, 혹은 ‘덕인왕자들’이라고 부른다)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초임교사로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저와 같은 고민을 하시는 교사 분들과 소통도 하고 싶어서요. 실제로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다른 학교 선생님들과 이웃이 되기도 했죠. 사실, 예전에는 블로그에 자기 일상을 모두 공개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런 걸 굳이 왜 해?’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던 제가 이렇게 1년차 파워블로거가 되어버렸네요(^^;).
#선생님은블태기그런거없다
처음에는 블로그를 아이들에게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도 선생님인데 사생활을 너무 공개하는 것 같고, 제 글 때문에 누군가 상처를 받을까 조심스러워서요. 그런데도 아이들에게 오픈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가 있어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저 혼자 보기 아까워서였고요. 또 다른 이유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멀다면 먼 존재인데, 선생인 제가 먼저 솔직하게 제 삶과 생각을 오픈하면 아이들과 진실하게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지요. 아이들은 정말 솔직해요. 자기를 존중해주고 관심있게 바라보는 걸 다 느끼죠. 그래서 제가 카메라를 들이댈 때도 쑥스러워하지만 웃어줘요. 지난 스승의날에는 학생들에게 편지를 많이 받았는데요. 대부분이 평상시에 제 블로그를 보고 있고, 저에 대해 알게 돼서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썼더라고요. 아마도 제 글에 담겨있는 친구들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느끼고 있지 않나 싶어요. 언젠가 이 아이들이 커서 블로그에 남겨진 자기들의 해맑던 어린 시절을 보면서 잃었던 순수함을 발견하게 된다면 정말 좋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하루하루 포스팅을 하는 게 귀찮거나 번거롭지 않아요. 흔히들 블로그를 하다보면 권태기처럼 ‘블태기’가 온다는데 저는 아직 그런 게 없어요. 블로그가 딱 제 스타일이에요.
#선생님이협찬따왔다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재밌는 일들이 많아요. 제가 가끔 수업 시간에 잘한 친구에게 주려고 간식을 챙겨 가는데, 하루는 ‘로아커’라는 초콜릿을 나눠줬어요. 지금까지 준비한 간식 중에 가장 인기가 많았죠. 그걸 받더니 초콜릿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예뻐서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는데, 한 달 뒤에 초콜릿 유통업체에서 글을 봤다며 연락이 온 거 있죠! 제 글을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허락을 했는데, 얼마 후에 제가 준 것에 몇 배 되는 크기의 초콜릿을 아이들 수만큼 보내주신 거예요. 개학하는 날 아이들에게 나눠줬더니 난리가 났죠. 그 뒤로는 왠지 제가 사진 찍는다고 하면 협조를 잘 하는 것 같더라고요(하하). 그 외에도 강씨 성을 가진 교사 지망생 분이 블로그를 보고 “저도 예비 강 선생이에요”라면서 용기를 얻었다는 연락을 주신 일도 있었고요. 한번은 아이들을 학교 수련회에 보내는 게 불안하셨던 학부모님이 제 블로그에 있는 수련회 일상을 보시고는 안심하고 아이를 보내셨다는 이야기도 듣게 됐어요. 그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뭔가 신기하고 보람되기도 하고 그래요. 이렇게 sena에서 취재 오신 것도 저에게는 엄청난 사건이고요.
#선생님우쿨렐레연주한다노래불러라
학교에서 저는 교사이지만, 동시에 매주 경건회(채플) 시간에 설교를 하는 전도사이기도 해요. 종교 담당 교사이죠. 그런데 아이들에게 전도사님으로 다가가면 왠지 벽이 생기는 것 같아 선생님으로서 다가가는 편이에요. 해요. 물론 전도사님이어야 할 때도 있죠. 그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긴 해요. 요즘 제가 매우 공을 들이는 모임이 있는데요. 바로 매주 목요일에 있는 ‘주얼리 기도모임’이에요. ‘주님을 일찍 만나서 행복한 아이들의 기도모임’이라는 뜻인데요. 처음에 4-5명으로 시작했던 모임이 지금은 40명까지 늘어났죠. 주얼리 모임은 한결같이 ‘아주 먼 옛날’이라는 찬양으로 시작해요. 왜냐하면 제 우쿨렐레 연주로 예배가 시작되는데, 제가 딱 그 곡만 연주할 줄 알거든요(하하). 사실, 점심시간에 시간을 쪼개서 모이는 게 쉽지 않은데, 강요하지 않아도 모임에 오는 게 참 기특해요. 사실, 모임 친구들 중에는 종교가 없거나 타 종교인 친구들도 있는데요. 한 번은 물었더니, “모임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선생님께 좋은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온다”고 하더라고요. 언젠가 그 친구들도 하루하루 경험하는 기도모임을 통해서 조금씩 삶이 변화될 걸 믿어요.
#아그들아,선생님한테는꿈이있다
저에게는 두 가지 비전이 있어요. 하나는 제 블로그 이름처럼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는 거예요. 사실은 가끔 화가 날 때, 이 이름 때문에 화도 못 내고 ‘끙…(;;) 사랑을 나눠야 되는데…’ 하는 순간이 있기도 한데, 그게 오히려 저에게 약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앞으로도 저의 글과 삶을 통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으면 해요. 블로그 이름값은 해야죠. 그리고 다른 하나의 비전은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알고 보면 누군가는 저와 같은 삶을 꿈꾸고 있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면 감사하고 벅차요. 제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끄신 걸 느끼니까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에요. 우리나라 지도에서 어디쯤에 있는지 관심조차 없던 목포로 부르셨고, 교사로 부임한 첫 해에 감당하기 힘든 친구들을 만나게 하셔서 저의 연약함을 보게 하시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블로그를 통해 매일 묵상하게 만드시고……. 모든 게 저를 성숙한 인간으로 다듬어 가시는 과정이란 걸 알아가는 중이에요. 이 모든 일을 너무나 순수하고 예쁜 덕인중학교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우리 덕인 왕자님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