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작가를 꿈꾸는 꽃다운 스무 살, 발랄 소녀 은경이의 story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이 공짜라는 말에 “다 주시요!” 외치며 행복에 겨워하던 일도, 처음 버스를 타고 만 원을 냈다가 버스 기사의 짜증 섞인 눈초리 속에 500원짜리 동전을 두 손 가득 받아들던 일도 이젠 추억이 되었다. 올해로 남한 생활 5년차에 접어든 은경이를 만나보았다.
취재│김지혜 기자 · 사진│김주경 기자
은경이는 어떻게 탈북하게 됐나요?
14살 때였어요.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안 보이는 거예요. 엄마가 아빠 친척집에 갔다고 하시니 그런가보다 했죠. 그랬는데 한 보름 뒤에 모르는 남자가 와서는 엄마랑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게 남한행의 시작이었어요. 차 타고 30분이면 되는 거리를 돌고 돌아서 3일 동안 걸었던 기억이 나요. 북한은 10월이면 엄청 춥거든요. 비까지 줄줄 맞으며 걷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어렵게 도착한 곳에서 쪽배를 타고 중국으로 넘어갔어요. 아빠도 거기 계셨는데, 그동안 얼마나 잘 먹었는지 포동포동 살이 오르셨더라고요. 저는 그때 생일인데도 못 놀고 통강냉이를 메고 나르면서 일했는데…. 세 달 동안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오게 됐어요. 오는 내내 언제 뒤통수에 총부리가 겨눠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서 배고픈지도, 힘든지도 몰랐어요.
힘든 과정을 거쳐서 오게 됐는데, 북한과 한국이 많이 다르게 느껴졌나요?
북한에 있을 때는 자유라는 것을 몰랐어요. 그런 인식 자체가 없죠. 여기는 가족사진을 많이 걸잖아요. 북한은 집이 아무리 작아도 하얀 벽은 꼭 하나씩 있어요. 거기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매일매일 깨끗하게 닦아야 해요. 안전원이라고, 여기로 말하면 경찰이 집집마다 돌면서 먼지 검사를 하거든요. 손가락으로 쓱 닦아서 먼지가 나오면 “단련대(감옥보다 조금 가벼운 곳) 몇 달!” 그게 일상이에요. 세뇌를 엄청 시켜서, ‘우린 왜 이렇게 못 살까, 배고파!’ 하다가도 당 노래를 틀어주면 ‘맞아, 우리는 행복한 나라야!’ 그러고요. 또 여기는 국어, 영어, 수학이 주요 과목이지만 거기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김정일의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주된 과목이에요. ‘와 진짜 영특하다. 어떻게 그 나이에 한글을 떼셨지?’, ‘제기밥(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시며 눈보라 헤치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다니!’ 그렇게 우러러보던 분들의 실체를 한국에 와서 알게 되고는 많이 허탈했죠.
남한 생활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어요?
저를 보는 시선이 제일 힘들었어요. 일반학교에 잠깐 다녔는데 거기서 은따를 당했거든요. 선생님께 제가 북한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등교 첫날부터 애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거예요. 처음 한 일주일은 쉬는 시간마다 애들이 제 주위에 바글바글했어요. 북한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하며 어찌나 관심을 갖던지. 그랬던 애들이 화장실에서 제 뒷담화를 하더라고요. “쟤 혹시 총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나 죽이는 거 아니야?” 하면서요. 배신감이 들더라고요. 아무리 잘해줘도 ‘쟤도 혹시…’라는 생각에 점점 다가가지 못하고 저를 감추게 됐어요. 결국 일반학교 다닌 지 한 달 만에 지금 다니는 탈북민 대안학교로 전학을 왔어요. 여기에 와 보니 저처럼 일반학교에서 상처를 받고 온 애들이 몇 명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친구들이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것이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북한 사람들이 북한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북한 사람들에 대한 색안경을 빼고 ‘저 사람들이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도 ‘한국 사람은 다 그래’라고 편견을 가졌던 적이 있고, 그걸 깨는 데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서로에 대한 편견과 벽을 허물어야 가까워질 수 있는 거니까 조금씩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제가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한국 사람과 북한 사람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일이요. 한국에서도 살아보고 북한에서도 살아봤기 때문에 저만이 공감해 줄 수 있는 아픔과 고통과 상처가 있으니까요.
“땅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 되는 게 통일이지요”
탈북민들과 함께 통일을 준비하는, 뉴코리아교회 정형신 목사님
뉴코리아교회는 "교회 하나 합시다"라는 쿨한 제안을 한 탈북민 몇 명과 정형신 목사의 기도 끝에 세워진 교회이다. 그것도 맨 처음에는 정 목사님의 신혼집을 예배당 삼아 시작되었다고. 어쩌다보니 사역의 시작을 북한 선교와 관련된 곳에서 하게 되었고, 북한에서 건너 온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탈북민 교회를 개척하게 된 정형신 목사는 북한 선교를 위해 예비된 일꾼이 틀림없었다.
취재│한경진 기자 · 사진│김주경 기자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탈북민들은 얼마나 되나요?
흔히 ‘탈북민 3만 명 시대’라고 하죠? 현재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북한 사람이 29,000여 명 되는데, 이 숫자는 1948년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누적된 수치예요. 잘 살펴보면, 1999년까지 약 50년 동안 한국에 들어온 사람이 1,000명 정도이고, 2000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들어온 사람이 28,000명 정도 돼요. 결국, 세대가 흐를수록 북한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것은 북한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한 명 한 명 남한으로 넘어오다가 통일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요.
그럴 수도 있죠. 흔히들 ‘통일’이라고 하면 땅을 합치는 개념으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람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한 사람 한 사람 내려오고, 또 한 사람 한 사람 올라가면 그게 통일인데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북한에 직접 올라가서 그들을 만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북한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내주기 시작하셨어요. 그들이 바로 탈북자들이죠. 그러고 보면 이미 한국에서는 탈북자들을 통해서 통일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탈북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북한선교’라고 말하기도 하죠. 탈북자들 대부분이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선교사의 도움을 받게 되고, 한국에 와서도 탈북민을 돕는 단체들이 대부분 교회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북한 선교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죠.
목사님 교회에서는 북한 선교를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고 계세요?
게 분류하면 세 가지예요. 우선, 제가 섬기는 ‘뉴코리아교회’에서는 탈북민들과 함께 예배하면서 그들의 신앙 훈련을 돕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데 신앙 훈련만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분들의 삶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에 ‘이음세움나눔’이라는 NGO 단체를 만들었어요. 이 단체를 통해서 다른 교회들과 연합하기도 하고, 정부와 서울시 등에 사업을 제안해서 지원을 받기도 하면서 탈북민들이 잘 정착할 수 있게 하는 여러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죠. 이와 더불어서 선교란 내일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이 되었을 때를 준비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불씨선교회’라는 선교단체도 만들었어요. 이 단체를 통해서 매주 기도모임을 갖고 예배하면서 통일을 준비하고 있죠. 특히, 언젠가 북한의 문이 열렸을 때 그곳에 가서 함께 살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어요. 1년 정도 북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음식도 나누고, 건강도 봐주고, 아이들을 위해서 유치원을 만들고, 마을을 정비하는 일들을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한 지역에 30명 정도가 그룹을 이루어 자리를 잡고 살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 북한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게 되고 그곳에 자연스럽게 교회가 세워지지 않을까요?
그럼, 우리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준비할 수 있는 북한선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흔히 통일에 대해 생각하자면,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해야 할 것 같고 그렇죠? 그렇지 않아요. 이미 통일은 우리 곁에 와 있어요. 내 곁에 있는 북한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북한선교의 시작이죠. 사실, 통일된 시대를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우리 친구들 세대예요. 통일이 되면 다음 세대에게 어마어마한 기회가 생겨요. 지금처럼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도 철도로 중국이나 유럽 등 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있고, 수많은 일자리와 자원들이 생기죠. 물론 하루아침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다음 세대 친구들이 살아갈 미래는 통일된 나라에 달려있지요.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통일이 되면 이미 물질주의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변질된 남한 성도들의 신앙이 순교를 각오하면서까지 믿음을 지키던 그들로 인해 다시 부흥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그들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와 딸, 김미영 집사님 & 김주현 학생(중1)
매주 목요일이 되면 아빠부터 8개월 된 아기까지 주현이네 식구들은 총출동한다. 그들의 목적지는 바로,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쥬빌리통일구국기도모임' 현장. 아직 어린 동생들은 사랑과 사탕(?) 때문에 이 날만을 기다리지만 이제 알 건 알 나이가 된 주현이의 마음가짐은 조금 다르다. 이제 조금씩 북한이 어떤 곳인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알 것만 같다는 주현이를 만나보았다.
취재│한경진 기자 · 사진│김주경 기자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에 언제부터 참여하셨어요?
주현 : 열 살 때부터 시작했어요. 지금 제가 중학생이 됐으니까 4년 정도 다닌 거예요.
엄마 :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북한에 관심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모여서 북한을 위해 기도했던 기억도 있고요. 그러다가 하루는 교회에서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가 열린다고 해서 가 봤는데, 그날 3개월 동안 기도회에 참여하겠다는 서약서를 받더라고요. 3개월 정도는 참여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신청을 했다가 이젠 애들까지 데리고 4년 동안 다니고 있네요.
대부분이 어른들이라 주현이는 그 모임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주현 : 가서 기도하는 분들을 보니까 신기하기도 했어요. 북한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시는구나, 통일이 되면 저분들이 잘 이끌어주시겠구나… 싶기도 했고. 처음에는 북한과 관련된 영상을 틀어주면 무서워서 영상이 끝날 때까지 잠깐 밖에 나갔다 오곤 했는데요. 매주 꾸준히 다니면서 북한에서 오신 분들의 간증도 듣고, 북한에 대한 정보도 듣고 하니까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TV에서 북한 관련 뉴스를 듣거나 북한에 대한 생각이 날 때 잠시 기도하고 그래요.
기도회에 참여하면서 북한에 대한 마음이 조금은 바뀐 것 같아요?
주현 : 처음에는 ‘북한’이라고 하면 저와 상관없는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원래 우리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점이 피부로 다가오면서,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까지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더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통일이나 북한에 대한 움직임들이 남 일이 아니고, 언젠가는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 : 기도모임에 가면 정말 생생한 얘기를 많이 듣게 돼요. 충격적인 이야기도 많고요.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다가 선교사가 되어서 다시 북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예수 믿다가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탈북해서 우리나라에 오기까지의 이야기 등 실제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북한에 대한 기도의 깊이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북한선교를 위해서, 그리고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고 준비해야 할까요?
주현 : 기도모임에 온 분들이 하나같이 북한 선교를 하려면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하세요. 솔직히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북한은 못 사는 나라, 나쁜 나라, 위험한 나라’라고요.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통일이 된다 해도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 거예요. 그치만 우리가 먼저 그분들을 용납하고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언어가 다르고 사고방식이 달라도 평화롭게 잘 지낼 수 있겠죠.
엄마 : 많은 친구들이 통일을 경제논리로 바라보는 것 같아요. 우리도 살기 힘든데 북한 사람들까지 책임져야 하냐고 생각하죠. 그래서 저도 주현이에게 통일은 돈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해줘요. 어차피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이 먹이실 테니까요. 다만 ‘우리 안에 그들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봐야겠죠.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우리가 준비가 안 돼서 통일이 안 된다”라고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어른들에게서 물려받은 물질적인 사고 때문에 다음 세대가 통일에 대한 마음을 접게 된 것을 회개해야 할 것 같아요.
기도모임을 통해서 자녀들이 북한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라시나요?
엄마 : 저는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살고 싶어요. 따로 북한을 위해 선교를 하는 것보다, 그곳에 집을 짓고 아이들과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이웃이 되는 것이 진정한 선교가 아닌가 해요. 제가 바라는 건,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 그날이 되었을 때 우리 아이들이 북한 사람에 대한 편견 없이 다가가는 좋은 이웃이 되어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