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구독
  • 로그인
  • 회원가입

MagazineContents

[인터뷰] 그의 근자감(?)은 어디에서 나올까?
KBS 이창훈 아나운서 | 2013년 05월호
  • 그의 별명은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앵커’

    523대 1. 지난 2011년 KBS의 장애인 뉴스앵커 모집 당시 경쟁률이다. 그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523명 중에 선택된 단 한 사람. 그는 바로 1급 시각장애인 이창훈 씨였다.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앵커’라는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창훈의 생활 뉴스’를 진행했던 1년 넘는 기간은 사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시키신 본격적인 훈련 기간이었다. 

    “523대 1이라는 경쟁률이 사실 말도 안 되잖아요. 하나님께서 그 많은 사람 중에 특별히 저를 세워 주신 이유는 저를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어요. 앵커로서 생방송을 하는 훈련을 받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눈이 오거나 비가 와도 지팡이에 의지해 뉴스 시간에 맞춰 혼자 출퇴근을 하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었죠. 몸 상태나 목소리, 또 언어나 외모도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고요. 그래서 앵커로 활동하는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 시간을 통해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시키셨던 것 같아요.”

     

    무대 체질에 잘난척 대장, 학생 이창훈

    ‘앵커로 세우신 건 자신을 겸손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그의 고백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그 해답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나름 재능이 있는 편이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4학년 때 트럼펫을 배웠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듣다보니 무대에 서는 일이 많았죠. 아마 그런 것들이 제 자존감을 높이는데 큰 몫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늘 ‘내가 최고다’라고 생각했고,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데 집착을 많이 했어요. 당시에 시각장애인 교회에 다니면서 회장을 하고 성가대도 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한다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데 더 관심이 많았죠. 하지만 학교도, 교회도 시각장애인들 안에서의 경쟁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예요. 그러다 1년에 한두 번 비장애인 친구들이 봉사 하고 함께 예배드리러 오는 날이 되면 엄청 기대를 했었어요. 비장애인 여자 친구들 앞에서 특출 난 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기대만 컸지 뭐 잘 되거나 그러진 않더라고요. 그런데 우습게도 마음속으로는 ‘나를 못 알아봐서 그래’라고 생각했었어요.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 거만함이 대단했던 거죠(하하).”

     

    "넌 목사님이 되어야 해"

    소위 ‘잘나가는 학생’이었던 학창 시절에 그의 꿈은 ‘목회자가 되는 것’이었다. 아니, 자신의 꿈이라기보다 그냥 운명(?)이라 생각했다고. 그의 어머니가 눈을 고쳐 주려고 이것저것 다 해보고 마지막으로 찾아갔던 한 도사에게서 “이번에도 차도가 없으면 교회에 나가세요”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 이미 그의 앞날은 정해져 버린 것 같았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뇌수막염 때문에 실명이 됐는데요. 저 때문에 어머니가 안 해본 것 없이 다 하시다가 결국에 하나님을 만나셨어요. 그 후부터 ‘넌 목사님이 돼야 해’라고 늘 말씀하셨죠. 저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어요. 또 앞에 나서기 좋아해서 강단에 올라가 설교하는 목사님의 모습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고요. 그런데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세상의 맛을 보게 됐죠. 가요, 텔레비전, 프로야구 등 세상에는 재밌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면서 목사님이 되기엔 너무 부족하고, 또 제 안에 너무 부끄럽고 죄악된 것들이 많다는 걸 느꼈죠. 그때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고민 끝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죠. 그런데 사실 그 결정도 ‘저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까’라는 고민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편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 끝에 결정한 거였어요. 동기 자체가 아주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거였죠. 하지만 그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정말 오래 참으세요”

    그의 생각대로 하나님은 방송 일을 통해 그의 인생에 또 다른 일을 시작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실명이 되던 순간부터, 아니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를 위한 일을 하나하나 하고 계셨듯이 말이다.

    “하나님은 정말 오래 참으시는 분이에요. 제가 그렇게 어릴 때부터 깝죽거리고 나대고 그랬는데도 전혀 손대지 않으시고 스스로 깨닫기까지 참아주신 것 같아요. 아나운서 일을 하면서 절제된 생활을 하는 것도 어쩌면 하나님께서 저를 만들어 가시는 과정인 거죠. 절제하고, 낮아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 말이에요. 또 생각해 보면 제가 실명이 된 것도 정말 하나님의 은혜예요. 시각장애인이 되지 않았다면 앵커가 될 수도 없었을 거고, 그저 그런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삶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고, 목적도 없이 그냥 흐르는 대로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누구의 죄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아픔

    시각장애인이라는 환경이 얼마나 불편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긍정 모드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그런 상황과 환경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임을 알기 때문이다. 

    “저는 시각장애인이 된 게 감사해요. 왜냐하면 우리 가정 자체가 교회에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거든요. 제사를 1년에 10번은 지낼 정도였죠. 그런데 제 눈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다 교회에 갔을 때 어머니께서 요한복음 3장 9절 말씀을 받으셨대요.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라는 말씀이죠. 그리고 ‘이 아들은 니 아들이 아니다’라는 음성을 들으신 후로는 저에게 쏠렸던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붙들기 시작하셨대요. 저도 그 말씀을 저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있어요. 아직은 어떻게 사용하실지 모르지만 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나타나기를 기대해요.”

     

    여러분, 질문하세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성경 말씀을 옛날이야기처럼 듣던 그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받아들였다. 어떤 특별한 체험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계신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갔고, 삶 속에서 그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며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하는 조언에서도 그는 유난히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지금 교회에서 중학생 한 반을 맡고 있어요. 그 친구들과 같은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신앙은 ‘훈련과 동행’이라는 점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교회 안에서 하는 예배와 찬양, 말씀의 끈을 놓지 않으면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고, 또 아는 만큼 경험하게 되고,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을 했으면 좋겠어요. 무조건 믿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어린 시절에 ‘내가 무얼 믿고 있는 건지’, ‘하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인지’ 진지하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보고 고민도 해 보는 과정이 있다면 어느새 깨닫게 되고 또 믿음이 성장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창훈 아나운서를 만난 날, 그의 계약 기간은 만료된 상태였고 그의 문제로 일부에서는 편하지 않은 기사들도 간혹 나오곤 했다. 하지만 당시의 심정을 묻으니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면 답이 안 나와요. 하나님이 계신데 부정적일 이유가 없죠. 그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열어 주시는 길에 순종하면서 잘 살고 싶어요.” 어쩌면 이 고백이야말로 모든 크리스천에게 ‘정답’인 듯 싶었다. 

    그리고 며칠 후, 자신의 이름을 건 새로운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되었다는 그에 관한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역시 하나님은 드라마틱한 분이시다.

     

     


  • url 복사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여러분의 댓글은 힘이 됩니다^^
등록

저작권자 ⓒ 새벽나라
본 기사를 개인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게재(링크)를 원하시는 분은 반드시 기사의 출처(로고)를 붙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