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자괴감’이라는 멍에

2013년,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 앞에서 한 친구와 약속이 있었어요. 그 김에 오랜만에 학교에 방문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생활기록부를 보고 싶었거든요. 선생님들께서 적어 주신 평가보다는 성적이 궁금했어요. 고등학교 3년 포함 23년 동안 거의 외면하던 성적이 그제야 보고 싶었지 뭐예요. 그런데, 심각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제가 인지능력이 모자라진 않았어요.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IQ를 초록창에 검색해 보니 상위 10% 안에 들더라고요. 그런데도 공부를 안 했으니 성적이 엉망이었던 거예요. 사실, 공부를 안 한 핑계를 대자면 엄청 많죠. 하지만 다른 어떤 이유들보다 그냥 제 성격이 제일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잘하는 건 아예 시작도 안 하고, 재미없으면 하기 싫어하고, 앉아 있기보다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성격. 그게 저였거든요. 

고등학교 1, 2학년 때 어울리던 친구들은 고3이 되니 대부분 예전처럼 놀지 않았어요. 혼자 할 것도 없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앉아만 있다고 공부가 되는 것도 아니니, 저는 주로 ‘잠실야구장’에 앉아 있었어요. 몇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을 수 있었거든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제가 걱정도 고민도 없이 야구나 보러 다닌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아니에요. 그때 사실 엄청 두려웠어요. 미래에 대해서요. 세상에서 요구하는 것 중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엄청났죠. 그래서 야구장으로 숨었던 거예요. 돌아보면 저에게 야구장은 두려움과 자괴감을 피해 몰래 숨어 들어간 ‘동굴’이자 ‘도피처’ 같은 거였어요. 그게 고등학생 시절에 제가 짊어지고 있던 멍에였어요. 두려움과 자괴감 말이에요. 

‘율법주의’라는 멍에

그런데 ‘멍에’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마태복음에서 이야기하는 멍에는 ‘율법주의’를 말하는 거예요. 율법은 구약시대까지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부터 모든 인간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죠.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이시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유대 사람들은 여전히 율법을 짐처럼 짊어지고, 율법을 다 지켜야만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들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잖아요? 인간은 누구나 죄의 DNA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아무리 노력해도 율법을 완전히 다 지킬 수 없어서 괴로웠을 거예요. 누군가는 율법을 어긴 사실들을 감춘 채 종교 형식에 참여했겠죠. 그러니 율법은 당시 사람들에게 멍에일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다 지킬 수도 없는 무거운 법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았을 테니까요. 그때의 사람들도 고등학생 때 저처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자괴감과 힘듦, 그리고 그것 때문에 생길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척 괴로웠겠죠.

무거운 멍에가 가벼워지는 법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주의’라는 멍에처럼, ‘내 안에 있는 죄와 싸우는’ 멍에를 가지고 있어요. 그 대부분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되고요. 그런 죄와 싸우기에 인간은 완벽하지 못해요. 그래서 자기의 욕심, 혹은 성숙하지 못한 인격으로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죠. 여기까지 읽는다면, 친구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은 힘들어. 너만 힘든 거 아니야’라는 말로 들릴 수 있겠네요. 제가 친구의 사연을 더 자세히 듣지 못하는 점이 정말 큰 아쉬움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다는 말씀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언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어른이죠. 그렇다면, 어릴 때에 비해서 메고 있는 짐이 가벼워졌을까요? 아니요. 무게로 보자면 어릴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지금이 더 무거워요.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바뀐 게 있어요. 첫째는, 짐을 바라보는 영적 시각이 바뀌었어요. 제 과거 이야기를 하나님의 눈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 거죠. 둘째는, 짐을 질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예전 같으면 두려움과 자괴감에 빠졌을 일도, 이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알기에 자유하고 평안할 수 있게 됐어요.

돌아보면,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된 건 아니에요. 두려워하던 제 마음에 들려주신 여호수아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수 1:8), 그리고 신앙 공동체가 제게 부어 준 격려와 사랑을 먹고 점점 자란 거죠. 그래서 친구 역시 신앙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영적인 영양분을 먹으며 잘 자라나기를 바라요. 예배 시간에 원하지 않는 생각이 들면 떨치려 애쓰기보다는 하나님께 “하나님! 제 마음이 이래요. 그래도 저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하는 마음이 훨씬 더 커요”라고 솔직히 털어놓아 보세요. 먼 훗날 모든 과정을 통해 “주님께서 제 무거웠던 멍에를 쉽고 가벼운 멍에로 바꿔주셨다”고 고백하는 친구가 되기를 바랄게요. 

글│노희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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