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의 피아니스트>, <안녕 나나>, <미인의 법칙>, <홀릭>, <그럼에도 파드되>까지. 청소년 소설로 잔뼈가 굵은 나윤아 작가가 최근 기독교 소설인 <조각게임>을 내놓았다. 특별하게 살고 싶었지만 평범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예나의 이야기는 어쩌면 나윤아 작가 자신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취재│한경진 기자 · 사진│한치문 기자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살아 있어”
사람마다 힘겹고 어두운, 기억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시기가 있다. 나윤아 작가에게는 중고등학교 시절이 그랬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문제도 없었지만, 집에 들어오면 시작되던 아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의 가구와 가전제품에는 ‘빨간 딱지(돈을 갚지 못해 압수 예정인 물건에 붙이는 스티커)’가 붙어 있고, 우울증에 걸려 자녀들에게 관심이 없으셨던 어머니, 그리고 ADHD와 경계성 지능장애로 학교에서 왕따와 학교 폭력을 당하던 동생까지. 그 시절 그녀가 매일같이 듣던 말은 “죽고 싶다”는 말뿐이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동생까지 모두. 실제로 엄마는 언제든 내키면 죽겠다며 약을 가지고 다니셨고, 한 번은 엄마를 극적인 순간에 발견해 울면서 살려내기도 했다. 그래도 서운하기는커녕 ‘내가 엄마였어도 그랬겠다’ 싶었다. 학벌도 직장도 좋고 잘나가던 엄마에게 갑자기 찾아온 현실이 너무 암울했으니. 그래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죽지 말라고는 못하겠어요. 그런데 갑자기 사라지면 내가 너무 슬프니까 죽기 전에 전화라도 해 주세요. 그걸로 조금 위로가 될 거 같아요”라고. 그게 고작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학교에 있는데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더 이상 안 살려고. 오늘이 마지막이야” 순간 ‘철렁!’ 했지만,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힘들어서 죽으려는 건 이해하는데, 어쨌건 자식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 엄마죠.” 그럴 듯한 설득이었는지 엄마는 “알겠어. 그때까지만 살아 있을게”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그렇게 그녀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럴 듯한 이유로 엄마의 자살 시도를 조금씩 지연시키며 지냈다.
신기한 건, 가족 모두가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도 그녀만은 ‘난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남아야지!’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비록 현실은 부모님이 밤새 물건을 때려 부수며 다투시는 소리를 방에서 숨죽이며 듣다가 새벽에야 난장판이 된 집을 빠져나가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어떻게 우리를 이 모양 이 꼴로 둘 수 있나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어머니는 죽겠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시면서도 매일 새벽예배에는 나가셨다. 그 시절 어렴풋이 들은 엄마의 기도는 거의 원망에 가까웠다. “새벽기도까지 다니는데 어떻게 내 인생을 이렇게 망칠 수 있는 거냐”는……. 초등학교 이후로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가 고등학생이 되어 무료로 과외를 해주시던 선생님 덕에 반강제적으로 어느 교회의 금요기도회에 갔을 때, 마치 외계어를 하는 듯 이상한 말로 울며불며 기도하는 무서운 분위기 속에서 그녀도 가까스로 입을 떼어 엄마가 했던 것처럼 기도했었다. “하나님이 진짜 계신다면 어떻게 우릴 이 모양 이 꼴로 둘 수 있나요? 그래도 엄마가 새벽기도를 10년이나 다니셨는데!”
목 놓아 울고 있는 여학생을 보신 교회의 사모님은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거시더니, 얼마 후에는 “고등부에 참석해 봐요”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하셨다. 성경책 속에 꽂혀 있었다며 붕어빵을 사먹으라고 돈까지 쥐어 주시면서. 그녀는 그 따스함에 용기를 내 교회 고등부에 가 보았다. 하지만 작은 키에,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느라 고도비만이던 그녀는 낮은 자존감에 누구와도 어울리기 힘들었다. 완벽한 아싸가 된 기분. 그녀는 전도사님께 ‘앞으로 안 나갈 거니까 연락하지 마세요’라고 쿨하게 메시지를 보내고는 몇 달 만에 교회를 손절했다.
‘하나님은 확실히 계시다’
기적은 상상치도 못하게 찾아왔다. 그녀의 어머니가 언젠가부터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시더니 정말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인상이 바뀌고, 말투가 바뀌고, 일상이 바뀌었다. 심지어 그녀가 대학생이 되었을 즈음에는 “네가 교회에 나가면 좋겠어”라며 전도까지 하셨다. 180도 변한 엄마를 보니 진짜 하나님이 있기는 한가보다 싶었다. 그래서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기도해 보고, 응답이 있으면 나가는 거야”라며 물고 늘어지는 말에 못이기는 척하며 그녀는 엄마와 기도모임을 시작했다. “하나님이 진짜 있다면 교회 가는 게 맞는지 사인을 주세요.”라는 기도제목으로.
기도모임이 3개월쯤 되던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고등부에 잠깐 나갈 때 리더였던 친구를 길거리에서 거짓말처럼 마주친 것이다. “청년부에 한번 나와”라는 말이 마치 안 지키면 벌 받을 것 같은 기도응답으로 느껴져 그녀는 용기를 내 청년부에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와 너무 예뻐졌다 너”, “윤아 왔네!” 하며 몰려든 청년들, 그리고 환영받는 분위기까지. 집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자 얼싸안고 기뻐하던 탕자의 아버지처럼 모두가 그녀를 반겼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교회 생활은, 처음에는 사람들 덕분에 즐거웠지만 말씀을 배우면 배울수록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자체가 감격이고 감사였다. 남들처럼 수련회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감격해 눈물 콧물 흘리는 경험도 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자신이 얼마나 엉망인 사람인지, 그런데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았고, 힘들었던 과거조차 선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 자신에게 딱 맞는 선한 과정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첫 작품, <공사장의 피아니스트>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잘하신 일 중 하나를 꼽자면 그녀와 동생을 거의 매일 동네 도서관에 데리고 가 책을 읽게 해주신 거였다. 도서관에 나란히 꽂혀있던 <해리포터>를 꺼내 읽으며 그녀는 조앤 롤링 같은 동화 작가가 되는 꿈을 키웠고, 그 꿈은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계속됐다. 모두가 대학 학과를 정하는 시기, 그녀는 글 쓰는 것으로 승부를 보기 위해 공모전에 도전했다. 그래서 만든 첫 소설은 <공사장의 피아니스트>. 남들이 강요하는 꿈이 아닌 자기만의 꿈을 찾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이다. 고등학생이어서 누구보다 잘 그려낼 수 있었던 현실적인 소재였지만 결과는 탈락…. 그렇게 물거품이 된 진로 계획을 뒤로 한 채 그녀는 결국 심리상담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야심차게 쓴 자식 같은 원고를 그대로 묻어버릴 수는 없는 일! 그때부터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고 원고를 보내며 문을 두드렸다. ‘메일을 확인은 하나? 이렇게도 반응이 없다니’ 싶던 어느 날, 한 출판사와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그녀는 ‘작가’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작품을 알아봐 준 출판사의 담당자는 크리스천이었다. 화기애애한 대화 속에 서로를 알아 본 둘은 “언젠가 기독교 소설도 만들어 보자”고 약속했다. 언제인지 모를 약속. 그리고 10년 후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조각게임>, 누구나 마음에 조각이 있어
<조각게임>은 아주 사소한 거짓말이 일파만파 커져 위기를 맞은 예나가, 그 거짓말을 없었던 일로 만들기 위해 ‘조각게임’이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내용이다. 예나는 유일하게 같은 반 친구들 마음에 난 구멍과 그 사이에 끼워진 조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구멍에 크기가 안 맞는 어설픈 조각이 끼워져 있는 친구를 찾아 그 이유를 알아내고 결국 완벽한 조각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예나가 미션을 수행할 대상은 아이돌을 준비할 만큼 독보적인 미모에 성격까지 좋아 전교생의 워너비로 통하는 한정원. 누가 봐도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한정원이 왜 어설프고 못생긴 조각을 갖게 된 걸까? 그 이유를 찾아서 예쁜 조각으로 완성시키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누구나 마음에 아픈 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곱씹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완성해도 다시 망가져버리는 조각에 실망해 절대 변하지 않는 완전한 조각을 찾아 나서는 다음 미션을 통해서 독자들은 영혼의 구멍을 완전하게 메워줄 존재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조각게임>은 대놓고 ‘하나님’을 말하지 않지만, 결국은 하나님 이야기로 귀결된다.
너에게 해주고픈 이야기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집필을 시작했으니 술술 풀릴 줄 알았지만, <조각게임> 집필은 나윤아 작가에게 지금까지의 그 어떤 작품보다 힘든 작업이었다. ‘이런 게 하나님의 나라야’, ‘하나님에게 답이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대놓고 설명하듯 말하기보다 재미있게 푹 빠져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담당 편집자와 함께 고치고 덜어내고 갈아엎기를 반복하는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손을 털었으니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이 ‘하나님이 너어~무 좋은 분’이라는 것만 알면 된다. 내 안에 결핍과 불안 등 채워지지 않는 모든 것의 해답이신 하나님,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 그것이 나윤아 작가가 인생에서 경험한 간증이자, 자기와 같은 과정을 밟아가고 있을 요즘 청소년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 나윤아 작가의 <조각게임>을 선물해 드립니다. 3월, sena 인스타에서 확인하세요^^ (@senaq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