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가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연못가에 힘없이 누워 있습니다.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할 만큼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그는, 병자로 살아온 세월이 38일도, 38개월도 아닌, 무려 38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전한 집이나 치료받을 만한 공간이 아닌 연못가에 누워 있는 이유가 뭘까요? 그가 자리 잡고 있는 연못의 엄청난 전설 때문입니다.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저어 움직이게 할 때, 가장 먼저 물에 먼저 들어가는 단 한 사람만 병에서 치료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에 가장 먼저 연못에 뛰어들기 위해 물가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언제일지 모르는 그날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사실일지 모르니 일단 기다려 보는 수밖에요. 그런데 그의 주변을 보니 또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다리 저는 사람, 중풍 환자를 비롯해 각종 장애를 가진 사람들까지. 모두 38년 된 병자의 경쟁자들입니다. 정말 천사가 와서 물을 움직이게 한다면, 이 사람들이 모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서로 먼저 들어가겠다고 밀치고 잡아당기는 통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38년 된 병자는 그 난리 통에도 스스로를 한탄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겠죠.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야말로 답이 없습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기회를 엿보며 준비하는 삶,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알고 보면 모두 경쟁자인 삶, 누군가를 밟고 달려가야 성취할 수 있는 삶, 경쟁력도 조력자도 없으면 도태되고 마는 삶. 왜인지 이 베데스다 현장에 우리의 현실이 겹쳐 보입니다.
상대평가의 세상 속에서
11월, 수험생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중대한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수험생들에게는 마치 베데스다의 그날과 같은 ‘결전의 날’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그날을 준비해 왔으니, 이 경쟁에는 자비도 양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점수 순서대로 줄을 서게 될 테니 한 사람이라도 제치고 앞서야만 합니다.
이 상대평가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든 앞줄에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경쟁과 상관없이 멀찍이 떨어져 하나님만 생각하며 초연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저마다 처한 상황이, 품은 비전이, 가진 재능이 서로 다르니까요. 다만, 이것하나는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경쟁조차도 지혜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나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땅을 위한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심’으로 말입니다.
매달 <Monthly Job> 코너에 소개되는 직장인 크리스천들처럼 자기 자리에서 성실히 일하며 세상의 한 부분에 이바지하는 사람들, 금메달과는 멀어져 있더라도 자신의 ‘퍼스널 레코드’를 경신한 것에 만족하고 환호하는 운동선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섬기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기 위해 고된 길을 기꺼이 가는 분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
베데스다 현장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병에서 회복되고 싶냐”고 묻습니다. 혹시 도와줄 조력자가 되어줄까 싶어 사정을 구구절절하게 얘기하자, 다짜고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진작 움직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들어가더니 일어나게 되었고, 펼쳐놓았던 돗자리를 둘둘 말아 든 채 자리를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38년 동안 병을 앓던 그 사람은 그렇게 예수님을 만난 순간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을 기다리며 다른 병자들과 경쟁하던 삶에서 구원자를 간증하는 삶으로 가치관이, 삶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요 5:15). 우리에게도 이러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기는 것이 목적인 삶, 세상에서 인정받으려던 삶, 목표를 위해 내달리는 삶을 살던 우리에게 예수님은 ‘공부해서 남 주는 삶’,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가르쳐주려 하십니다. 그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가능합니다.
글│sen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