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어느 예배 자리에서 강사로 초청된 김성민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믿기지 않는 현실들인데, 너무나 담담하게 웃으며 얘기하는 그. 그리고 그 모든 일을 하나님 안에서 해석하며 풀어내는 그.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언젠가 sena 독자들과도 꼭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
취재│한경진 기자 · 사진│김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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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때였다고 한다. 이제 막 말이 트였을 아기인 성민이가 보육원으로 들어오게 된 때가. 그마저도 확실치 않다. 자신의 이름만이 아니라, 생일도 주민등록번호도 보육원에서 만든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보육원에 입소하게 된 성민이의 날들은 그때부터 지옥이었다. 보육원의 형, 누나들에게는 동생들 괴롭히는 것이 가장 즐거운 놀이였으니, 힘없는 동생들은 그저 공포에 떨며 살아 있는 놀잇감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아파하고 두려워하는 동생들을 보며 신나하는 형, 누나들도 너무 무서웠지만, 그보다 더한 고통은 모든 것을 보면서도 “안 다치게 해라” 하며 무심히 지나가는 선생님이었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픔, 어른들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상처, 게다가 ‘뭐든지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교회 선생님의 말과 달리 “이번에는 안 맞게 해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기도해도 응답 없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어린 성민의 마음에는 분노만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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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초등학교 입학은 성민이의 꿈이었다. 공부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학교에 있는 시간만큼은 맞지 않아도 되어서다. 그런데 입학 하루 만에 그 꿈이 산산이 깨졌다. “아빠 없는 사람 오른손 들어. 엄마 없는 사람 왼손 들어”라는 선생님 말씀에 두 손을 다 들고 있어야 했던 성민이는 그날부터 보육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놀림과 왕따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느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음을…. 다른 친구들은 아빠 엄마가 계셨다. 엄마와 함께 등교했고, 부를 때에도 ‘선생님’이 아닌 ‘엄마’라고 불렀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부모님이 달려오셨지만, 보육원 친구들은 사건이 생기면 언제나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다 같이 잘못해도 대표로 맞아야 했다. 성민이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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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이 된 어느 날, 하루는 어느 교회의 청년부가 보육원으로 찾아와 수련회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튿날까지 복음은 전하지 않고, 그저 보육원 친구들이 무슨 말, 무슨 행동을 해도 다 받아주고 같이 놀아주기만 했다. 뭔가 따뜻했다. ‘이런 게 사랑받는 건가?’ 형, 누나들이 믿는 하나님을 그도 만나고 싶어졌다. 어릴 때 아무리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아, 없는 존재로 결론냈던 그 하나님을….
수련회 마지막 셋째 날, 다 함께 모인 시간에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어요.” 그런데 난감했다. ‘나는 죄가 없는데? 죄인은 나를 때린 형들과 방치한 선생님이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죄가 없는 것 같던 그때,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형들에게 맞은 대로 나도 동생들을 때린 일, 학교 친구들을 괴롭히면서 내가 맞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 일상이 되어버려 죄인지 인식조차 못했지만, 그 모든 것이 죄였던 거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눈물이 쏟아지며 회개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주변에 앉아 있던, 자신을 그렇게도 때리던 형들에게로 다가갔다. 형들을 안아주었고, 함께 기도했다. 형들 눈에, 그리고 그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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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후, ‘나는 고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구나. 나를 특별히 선택하셔서 나처럼 상처 많은 형, 누나, 동생들을 품을 수 있도록 여기서 훈련시키신 거였구나’라고 깨달았지만, 허무하게도 세상은 바뀐 게 없었다. 보육원의 현실도 그대로였다.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즈음, 누군가가 ‘큐티책’을 선물해주었다. 왠지 이것이 비법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매일 어떻게든 빨리 학교로 가서 일단 큐티를 했다. 점심시간에도, 저녁에도 ,자기 전에도 수시로 펼쳐보았다. 그런데 매일 그렇게 말씀의 요점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곱씹고 발견하는 큐티는 사실 그에게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글을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계성 인지장애’로, 책을 아예 볼 시도조차 한 적이 없어 항상 꼴찌만 하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책도 쓰고 강연도 한다. 그 모든 게 큐티에서 시작되었다고 믿는 그는, “학교에서도, 인생에서도 항상 꼴찌였던 저를 학교 성적도, 삶의 성적도 좋아지게 해준 것이 큐티였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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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알아가면서 그에게 ‘찬양사역자’라는 꿈과 동시에 대학 입학의 꿈이 생겼다. 그런데 입시를 앞둔 어느 날, 보육원에 사건이 터지고 만다. 운영자인 교회 장로님의 횡령 사건. ‘신앙이 있다면서 저럴 수 있나?’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충격의 결론이 ‘하나님은 없다’로 귀결되자, 그는 찬양이고 대학이고 다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대학에 가지 않으면 보육원의 보호의무가 끝나는 것이 원칙. 결국 그는 보육원에서 나와 또 다시 고아가 되고 말았다. 먼저 퇴소했던 선배가 준 5만 원을 손에 쥔 채….
다짜고짜 서울로 향했다. TV에서 보던 그 으리으리한 곳에 가면 할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박스를 깔고 자는 노숙 생활이었다. 공중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음식을 먹으며 견디기를 무려 6개월.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다짜고짜 한 식당에 들어가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시작된 첫 직장생활은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의 고된 일정이었지만 참 행복했다. 일한 만큼 보상을 해주고, 뭐든 시켜만 주면 최선을 다하는 그를 사장님도 좋게 봐주셨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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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보육원 출신 선배와의 약속이 있어 기다리던 그에게 어머님 두 분이 접근했다. 교회 권사님들이었다. “다른 분들 전도하세요” 하고 돌아서는데, 두 분이 갑자기 양팔을 잡으시더니 교회로 이끄셨다(다행히 이단은 아니었다고). 어리둥절 오랜만에 들어간 교회. 그런데 난데없이 맺힌 것이 터지듯 눈물 콧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날, 그렇게,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자 비전이 생겼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그랬다. 가족이 없는 그였지만, 알고 보니 누구보다 많은 가족이 있었다. 보육원에서 함께 지낸 수많은 가족, 그들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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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브라더스 키퍼’라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창세기에서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라고 반문했던 그 말에,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다”라고 응답하기로 한 것이다. 영어 성경의 표현을 따 회사 이름을 ‘brother's keeper’라 짓고, 그는 자신처럼 보호기간이 끝나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돌보는 일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사업과 교육 등에 나서며 보육 시설을 개선하는 법률 통과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언젠가 식물을 가꾸며 마음이 편해졌다는 보육원 동생의 말을 듣고 논문을 뒤져 식물의 치유 효과를 알게 된 뒤, 벽면을 식물로 꾸며 환경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플랜테리어 업체 ‘breath keeper’를 만들어 자립준비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brother's keeper의 BK를 딴 여러 브랜드로 더 많은 자립준비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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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하나 평범하지 않았던 그에게 ‘요즘 청소년들’에게 해주고픈 말을 물었다. 이것은 지금껏 쉼 없이 달려온 요즘의 자신에게도 해주는 말이라고 했다.
“너는 너 자체로 참 아름다워. 너 자체로 정말 향기로워. 네가 가는 공간은 너 때문에 아름다워지고, 네가 있어서 그 공간이 향기로워질 거야. 뭘 하지 않아도 돼. 꽃이 뭔가를 하지 않잖아. 그냥 자기 모습을 그대로 펼쳐낼 뿐인데 그 꽃으로 공간이 아름답고 향기로워져. 그렇다고 꽃이 365일 내내 펴 있지도 않아. 어떤 때는 완전히 죽은 것 같기도 하지만, 때가 되면 또 피어내잖아. 우리 그렇게 살자. 너는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운 꽃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