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나노 기술 연구의 대가이자 세계적인 과학자로 손꼽히는 서울대의 현택환 교수가 노벨화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언론도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결국 그의 수상은 아쉽게도 불발되었지만, 그 일은 우리나라 과학계의 수준을 전세계에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호들갑스러웠던 언론이나 여론과 달리 “후보에 오른 것만 해도 축복”이라고 너무나 덤덤하고 의연하게 말하던 현택환 교수,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
취재│한경진 기자 · 사진│한치문 기자
Do your best, and God will do the rest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경북 지역의 한 시골 동네에서 자라던 그는 학교 대표로 과학경시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결과는 은상. 전혀 예상치 못한 성적을 받게 되면서 그는 생각했다. ‘아, 내가 과학에 소질이 있구나.’
초등학교 5학년 말에 그는 대구로 유학을 떠나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정말 치열하게 공부했다. 시골 동네에서 도시로 유학을 왔으니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죽어라 공부하던 중학교 시절 어느 날, 교실 뒤쪽 벽면에 누군가 써 놓은 글귀 하나가 그의 마음에 콕 들어와서 박혔다. ‘Do your best and God will do the rest(최선을 다하라. 하나님이 나머지를 맡으실 것이다)’. 너무 멋진 말이었다. ‘God’이 하나님인 것은 알았지만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는 것도, 관심도 없었던 그는 최선을 다하면 하늘이 돕는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그 문장을 노트든 책이든 보이는 곳마다 적어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 문장은 그의 평생 모토가 되었다.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마 4:4)
과학경시대회 이후 그는 늘 과학 과목에 관심이 있었다. 지구과학, 생물학 등의 과목들 중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무언가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화학’. 일찌감치 화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힌 그는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서울대 학생들은 뭔가 달라 보였다. 공부만 하던 촌놈인 자신과 달리 다방면으로 유식하달까? 그 중에서 특히 심기를 건드린 것이 있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했잖아”라며 툭툭 던지는 어록 같은 말들. 그런 말들은 어디에 나오느냐고 물으니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도 모르냐?”고 했다. 자존심이 살짝 상한 그는 성경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자기 발로 학교 안에 있는 선교단체 동아리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성경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하나님을 만났다. ‘회개와 죄 사함’에 대해 배운 뒤 여느 때처럼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갑자기 성경이 읽고 싶어져 요한복음을 읽고 기도한 후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추운 날씨임에도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12시간은 해야 가능한 분량을 단 3시간 만에 해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부한 후 항상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로 들어와 자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날은 술이 써서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그는 그날, 그렇게 성령님을 만났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마 6:27)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박사 과정을 밟게 된 그. 유학 3-4년 차가 되기까지 그에게는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도 실험 결과는 나오지 않고, 해결할 실마리조차 안 보였기 때문이다. 슬슬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박사학위를 마칠 수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이 작은 연구소에라도 취직할 수 있을까?’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도피처는 말씀밖에 없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 6:27)”. 그랬다.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마음만 아프고 더 두려워질 뿐. 이 말씀으로 그는 다시 일어섰다. 안 되는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펴고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나온 논문들, 최신 학회지에 나온 연구 결과들까지, 그의 연구와 상관이 없어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을,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마구 부어주셨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막 시작 단계였던 ‘나노 물질에 관한 연구’.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은 ‘나노’에 관해 관심 갖게 하셨고, 그 후 2년 동안 그가 한 나노 관련 연구 결과들은 세계 최고 권위지인 <미국학회지>에 2편이나 실리는 업적을 달성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1997년, 그는 서울대 교수가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당시 국내에는 ‘나노 물질’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터라, 그가 나노 연구를 한다고 하면 주변 교수들은 “나노? 니나노?”하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교수가 된 초창기에, 국내에서 역대급 연구비를 내걸고 창의적인 연구에 투자하는 사업이 있어 그도 지원을 했다. 그의 연구 아이디어는 1차 심사에서 1위로 통과할 정도로 좋은 아이템이었지만, 결국 너무 창의적이라는 이해 못할 이유로 최종 탈락되고 말았다. 상심이 컸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나노 연구에 몰두한 끝에 그는 400편 이상의 논문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저널에 발표하고, 그 논문들이 현재까지 6만 회 이상 인용되고, 심지어 2020년에는 노벨 화학상 후보에까지 오른 나노 소재 연구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이자 우리나라 과학계의 자랑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돌이켜보니, 오래 전 도전했던 그 연구 사업에 탈락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당시 그 연구 사업의 조건은 다른 연구를 모두 금지한 채 그 연구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연구는 성공할 수 없는 과제였던 것이다. 만약 그가 선정되었다면 아직도 그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현택환 교수는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은 큰 그림이 있으신 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렘 9:24)
과학자, 연구자라는 직업은 남들 앞에 자기 성과를 자랑해야 하는 직업이다. 어떤 작은 결과만 나와도 ‘이건 정말 대단한 연구다’, ‘가치가 있는 연구다’라고 자랑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현택환 교수는 한동안 고민이 많았다. 하나님은 늘 겸손하라고 말씀하셨고, 심지어 성경에서는 ‘지혜도, 용맹도, 자랑하지 말라’고 했는데 직업 상 그럴 수밖에 없어서였다. 하지만 예레미야 9장 24절 말씀에서 해답을 얻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그래서 그는 어떤 자리에서든 사람들 앞에 서게 되면 늘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빼놓지 않는다.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한다. 누구든 그를 세 번만 만나도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연구 성과 못지않게 그가 드러내고 싶은 자랑거리다.
그가 서울대학교에 부임한 뒤 ‘코람데오’라는 크리스천 모임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과학자이기에 앞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제자들도 하나님을 아는 과학도로 살기를 바란 것이다. 벌써 24년 차가 된 모임의 역사에 비해 점점 크리스천인 제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단 몇 명이 모이더라도 그는 이 모임을 쉬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며 꿈, 소망에 관해 묻는 질문에 현택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 것처럼, 저도 언젠가 은퇴할 때 제자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음 같이 너희들도 나를 본받아라’고 말할 수 있는, 온전한 코람데오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과 같아요. 마라톤도 굉장히 긴 마라톤이죠. 그러니 계속해서 꾸준하게 신앙의 기본들을 해 나가는 꾸준함이 필요해요. 청소년들이 어릴 때부터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