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사, 그리고 래퍼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뜬금포 조합이다. 그런데 전도사와 래퍼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마이크를 잡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잡은 마이크로 마음만 먹으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마이크를 들고 부르신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 아니 래퍼, 아니 ‘전도사래퍼’ 다비드를 만나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곡을 들어 보면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깍두기에 물 말아 먹을 때 가난과...”라는 가사로 시작해요. 실제 경험담이신가요?
어려서부터 목회자 자녀였기 때문에 항상 남성민이라는 제 이름보다는 ‘000 목사님 아들’로 더 많이 불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목회자 자녀로서의 부담감과 압박이 항상 있었죠. 또래 친구들보다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고, 사람들 눈치도 엄청 보면서 지냈어요. 또 개척교회다 보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이었고요. 한번은 엄마가 밥을 해주셨는데, 누룽지죽에다가 반찬은 깍두기가 다였어요. 그날 제가 안 먹겠다면서 상을 엎어버렸대요. 그때 어머니가 우시면서 저를 혼내셨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밥상을 엎다니... 뭔가 굉장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셨네요?
어릴 때는 ‘우리 부모님은 하나님이 목회자로 사용하시는데, 왜 이렇게 가난해야 하지? 정말 하나님이 계시긴 한 걸까?’ 하는 생각들이 커지면서 하나님을 잘 믿지 못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방황이 시작됐죠. 친구들이랑 몰려다니면서 싸우고, 학교에서 하도 말썽을 피워서 부모님이 불려 가신 적도 여러 번 있었고요. 그때는 제 안에 항상 분노가 차 있었고, 어느 순간에 터지기라도 하면 걷잡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셨나요?
중학교 때 ‘목회자 자녀 캠프’에 갔는데, 찬양을 인도하시던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들은 누구 목사의 아들, 딸이 아니라 다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딸이야!” 그 말이 저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저는 항상 ‘000 목사 아들’로만 불렸으니까요. 그때 저도 모르게 손을 들고 울면서 찬양하기 시작했는데 마음에 처음으로 참 평안이 임했어요. ‘아, 하나님이 나에게도 은혜를 주시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제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찾아왔어요. 은혜 만땅 받고 설레는 맘으로 학교에 갔는데, 제 삶은 이전과 똑같은 거예요. 수련회에서는 두 손 들고 찬양하고 울면서 회개했는데, 학교에 가면 여전히 친구들과 싸우고 죄에 빠져 지내고. 그런 생활이 자꾸 반복되다보니까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에 스스로 자책을 많이 하며 지냈어요.
어쩌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하지 않았어도 되는 고민들일 텐데요.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고등학생 때 갔던 수련회 마지막 날 저녁집회 때였어요. 그때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끝까지 버티고 있었죠. 사람들은 다 돌아가고 불도 꺼졌는데, 갑자기 제 마음 속에 터져 나온 말이 있었어요. “살려주세요!”라고요. 눈물이 터져 나오면서 “저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 거 같아요!” 하고 계속 기도했어요. 그런데 제 마음에 하나님이 이런 감동을 주시는 거예요. ‘성민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학교에서는 문제아, 집에서는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말썽꾼, 교회에서는 예배시간에 떠들다가 쫓겨나기도 한 실패자가 바로 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런 저를 사랑하 신다니요! 엄청난 감동이었죠!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이후로 특이하게도 ‘힙합을 하는 전도사’가 되셨네요. 음악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원래는 음악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줄곧 목사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원래는 ‘국제경영학과’에 들어가서 경영과 영어를 공부한 다음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용인에 있는 한 교회에서 청소년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서, 제가 맡은 아이들을 큰 캠프에 자주 데려가곤 했어요. 그런데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에도 꿈쩍도 안하던 아이들이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의 공연에는 엄청 열광적으로 반응하고, 찬양인데도 곧잘 따라 부르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느꼈죠. ‘아! 이게 음악이 가진 힘이구나!’ 그날 이후 무작정 안산에 있는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해서 다니기 시작했어요. 피아노를 칠 줄 아는 동생한테는 작곡을 맡기고, 저는 처음으로 곡의 가사를 썼죠. 그렇게 해서 맨 처음 같이 만든 곡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곡이에요. 그 곡으로 저희 교단에서 하는 CCM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홍대 ‘수상한거리 가요제’에서 금상도 받게 되면서, 예상치 못하게 음악의 길이 열리기 시작한 거죠.
수많은 음악 장르 중에 왜 하필 ‘힙합’에 꽂히게 되신 걸까요? ‘힙합’이라는 장르가 대체로 욕설이나 선정적인 가사도 많고, 자기 과시가 많기도 하잖아요.
힙합 아티스트들의 음악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가사에 솔직한 자신의 스토리를 담는다는 거예요. 목회자 자녀로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속 시원히 해 본적이 없던 제게는 제 이야기를 가사로 쓰는 게 유일한 탈출구였거든요. 그러면서 힙합의 매력에 점점 빠지게 된 거 같아요. 그리고 교회음악의 경우 CCM이라는 카테고리에 아예 묶여져 있잖아요. 그런데 힙합은 그 안에 복음 메시지를 담아내도 굳이 CCM이라는 장르로 한데 묶이지 않고 그냥 힙합이라는 장르로 남아 있어요. 그렇다 보니, 일반 공연장에 설 때도 청중들이 그걸 제 이야기로 들어주시니까 거부감 없이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거죠.
전도사이자 래퍼로서 교회 특송은 물론 일반 공연도 많이 다니실 텐데, 특별히 기억나는 공연이 있다면요?
제가 어느 공연에서나 빼 먹지 않고 부르는 곡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인데요. 이 곡에는 저의 이야기가 가장 잘 담겨 있기도 하고, 제 곡 중에 가장 힙합다운 곡이기도 해요. 한번은 제가 홍대 한 공연장에서 공연을 할 때였어요. 그날도 이 곡을 중심으로 콘티를 짜고, 부르기 전에 곡 설명을 했어요. ‘이 곡은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 이야기가 담긴 곡이니 그냥 한번 들어봐 달라’고요. 그런데 정말 의외로 사람들이 이 곡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시더라고요. 심지어 공연이 다 끝나고 내려왔는데 어떤 여자 분이 울면서 다가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는 교회는 안 다니지만, 다비드 씨 공연을 보고는 내내 눈물이 났어요.” 그때 알았어요. 불신자들은 복음 자체를, 예수님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요. 복음을 드러내는 도구가 진심을 다해 전한다면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어요.
전도사와 래퍼는 언뜻 보면 공통점도 없고 잘 어울리지도 않는데, 두 가지의 삶이 어떻게 조화(균형)를 이루며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Two for One>이란 곡에 그러한 고민들을 담았는데요. “전도사 Life. Rapper’s Life. That’s my Life. 두 가지 모두 하나”라는 가사가 있어요. 전도사일 때는 적은 사례비로 아이들한테 뭐라도 사주고 싶은 어른인데, 래퍼로서는 한껏 폼을 잡아야 할 때도 있거든요. 어찌 보면 너무도 다른 두 가지 삶이지만, 핵심은 둘 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전도사로서의 삶이나 래퍼로서의 삶이 결국에는 하나라는 것이죠. 그런데 힙합문화 속에는 워낙 유혹이 많기 때문에, 이 두 가지의 삶을 균형 있게 맞춰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는 오전에는 새벽예배, 설교 준비, 독서를 하고, 오후에는 작업실에서 음악 작업을 하는 걸로 하루 일과를 철저히 분리시켜요. 오전에 말씀과 기도로 받은 은혜가 오후 곡 작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균형 있게 두 가지 모두를 해낼 수 있죠.
앞으로의 비전이나 나누고 싶은 기도제목이 있다면요?
목회자로서, 래퍼로서 세운 구체적인 목표는 없어요. 그동안 제가 계획해서 이루어진 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냥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자! 이게 제 비전이에요. 전도사로서, 래퍼로서, 또 NMN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서 너무 바쁘고 막막할 때가 정말 많지만, 그럴수록 더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시간을 갖고 싶어요.
끝으로 sena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저와 제 아내도 청소년기에 sena로 QT를 했어요. 제가 신앙적으로 방황할 때 저를 다시 붙잡아 준 게 sena였거든요. 저한테 QT 시간은 말씀을 읽고, 제 생각을 정리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그 하루하루가 쌓여 실패자였던 제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요즘 청소년들은 입시로 바쁘다보니 꿈을 꾸기는커녕 생각할 시간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럴수록 구별된 QT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독대하면서 하루하루 나아가다 보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꿈이 어느 순간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