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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골방의 그 예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달빛마을TV’ 김상진&짐니 | 2021년 03월호
  • 예배도 수련회도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낯선 시간들을 보내면서 유튜브에서는 여러 찬양 채널들이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채널은 바로 <달빛마을tv>. 그들의 찬양은 무언가 특별해 보였다.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꾸안꾸’의 매력이랄까. 다양한 볼거리나 화려함 없이 늘 같은 구도에서 같은 인물이 비슷하게 부르는 찬양이지만 영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점점 음악도 사람도 목소리도 아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다. 부부가 한마음으로 찬양하는 그 순수한 모습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좋으실까.

     

    취재│한경진 기자 · 사진│한치문 기자

     

     

    부부가 되기 전, 두 사람의 꿈은 대중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상진은 군대에서 제대한 후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익히기 위해 매니저로 일하며 가수의 길을 준비 중이었고, 짐니(김지민)는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무려 우승을 거머쥔 뒤 걸그룹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달려가던 두 사람은 우리나라 CCM계 1세대이자 대선배인 노문환 목사를 만나 주말마다 찬양 사역팀에 함께하게 되면서 점점 다른 가치, 다른 기쁨을 발견하게 됐다. “곧 데뷔하게 될 거야”, “인기 있고 유명해질 거야”라며 화려한 약속을 하지만 실제로는 허무함과 기약 없는 기다림만 있던 그 세계. 반면 이곳에 오면 관객이 한두 명뿐이어도 두 사람의 노래를 듣고 은혜받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구나!’ 

     ​특별한 부르심은 없었다. 누가 하자고 제안한 것도 아니다. 그냥 점점 그들 안에서 가치가 달라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뜬구름 같은 약속에 대한 환상은 조금씩 깨지고, 대중 앞에 서는 무대보다 찬양하는 자리가 더 좋아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계속 하고 싶다. 이 길로 가자.’

     

    부부가 된 뒤, 틈틈이 노문환 목사의 사역을 돕던 두 사람에게 특히 의미 있는 ‘인생 집회’가 있었다.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성탄절 무렵이라 교회 모임 단속이 심해 사역이 쉽지 않았지만, 그런 중에 지하교회 성도들을 상대로 호텔 방에서 파티하는 척 진행된 어느 예배. 그 조심스러운 분위기에서 부부는 준비한 중국어 찬양을 시작했다. “나의 피난처 예수 사랑해요” 한마디를 불렀을 뿐인데, 모인 사람들이 흐느끼더니 공간은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 ‘우리 찬양 그렇게 은혜로운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자리는 흩어져 몰래 예배하던 지하교회 성도들이 1년 만에 모인 현장이었고, 그들은 입 밖에 낼 수 없지만 너무나 불러보고 싶던 ‘예수’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마음이 무너진 것이었다.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은혜가 있는 자리에 설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이. 며칠 뒤 중국 선교를 마치고 온 상진은 말했다. “나 이제 사역만 하고 싶은데, 어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사역만 하겠다니 당황스러웠지만, 그렇게 느낀 것은 짐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둘은 인생에 있어서 큰 결단을 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찬양하는 일만 하겠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찬양사역에 올인하기로 했지만 ‘현실’이 주는 무게는 무시할 수 없는 법. 그래서 부부는 어머님이 하시던 작은 카페를 맡기로 했다. 전문가 못지 않은 짐니의 인테리어 센스로 제법 예쁘게 꾸몄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일. 빼꼼 문을 열어보기만 한 손님 외에 정말 아무도 오지 않던 카페는 3달 만에 폐업하고 말았다. 갚아야 할 공사비만을 남긴 채....

     ​모든 일을 그만두고 찬양사역을 하겠다고 했을 때, 멘토인 노문환 목사는 “하나님을 기다려”라고 조언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생계를 위해 카페를 하는 것도 기다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결단과 기다림은 의지할 만한 구석에 양다리를 걸쳐놓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자 간절해진 상진은 그제야 처음으로 진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돈이 필요해요.” 그 전까지 그런 것은 수준 낮은 기도라며 늘 “주님의 나라를 위해”, “저를 보내주세요”, “주의 뜻대로”라고 고상하게(?) 기도해왔던 그였다. 하지만 절박해지니 그 수준 낮은 기도가 절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렇게 포장된 모습을 모두 벗고 엎드리자 그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성경 속 하나님, 배웠던 하나님이 정말 나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돌아보면 참 감사한 시간이다. 너무 힘들어서 아토피가 목까지 번지긴 했지만 그제야 ‘영 아니면 육’, ‘하나님이 전부 아니면 전무(無)’라는 원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역만 하겠다고 뜨거운 마음으로 결단하던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바로 길을 열어주실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디에 광고를 한 것도 아니고 알리지도 않은 채 가만히 집에서 기다리고만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가끔 노문환 목사가 사역을 가면서 불러주면 그 자리가 그렇게 귀하고 감사할 수 없었다. 노래하지 않아도 스태프로나마 사역지에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어떻게 하면 사역을 더 도와드릴까, 더 편하게 해드릴까 날마다 고민했다. 그때 갖게 된 생각의 습관이 있다. ‘나는 이 정도의 사람이야. 사역하고 초대받고 하는 것은 나 같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구나. 이 자리에서나마 작은 일에도 충성되게 열심히 도와야겠다’ 그래서 달빛마을이 알려진 지금도 부부는 늘 불러주는 자리가 황송할 뿐이다. 회중이 단 한 명이어도 그 자리가 너무나 감사하고 귀하다. 어찌 보면 그 시기는 하나님께서 부부의 마음을 다지고 훈련하시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더 낮아지게, 더 겸손하게.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은 1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점점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한테 주신 달란트가 노래밖에 없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이 길로 부르신 게 아니면 어떡하지?’ 혼란스럽던 부부는 더이상 가만히 있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골방에서 찬양을 하고, 그것을 촬영해 영상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살던 아파트 단지 이름을 따서 ‘달빛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서. 그것이 ‘달빛마을TV’ 골방라이브의 시작이다. 

     ​​찬양 콘텐츠를 만들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냥 한 사람이라도 같이 예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회수 10회에, 댓글 하나가 신기하고 감사하기만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갈수록 구독자와 조회수가 늘어나자 유혹도 찾아왔다. ‘편집자를 구해볼까, 어디 나가서 찍어 볼까’ 하는 고민들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세련된 화음도 본질을 벗어나게 하면 포기하고, 광고도 없애보고, 그들의 고백으로 예배하기 위해 신청곡도 받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런 소통도 영상 퀄리티도 필요한 것이지만, 달빛마을에게 주신 방향성은 그쪽이 아니었다. 찬양 콘텐츠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예배만 하는 것. 그 첫 마음을 지키기 위해 부부는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다 덜어내고 비우기로 했다. 그래서 달빛마을은 오늘도 골방에서 오롯이 건반 한 대만으로 예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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