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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개의 소중한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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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
유창록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이스라엘뿐 아니라 다메섹과 블레셋의 멸망을 예언케 하셨으며, 계속해서 두로와 에돔, 그리고 암몬의 죄악을 심판하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죄악을 살피시며, 약자를 향한 잔인한 행위와 형제에 대한 배신을 결코 가벼이 보시는 분이 아니심이라. 다윗과 솔로몬 왕에게 백향목과 기술자들까지 제공하였던 두로는 이스라엘과의 우호적 관계와 약속을 배신하고 전쟁 포로들을 에돔에 넘겨 신의를 저버렸다. 에돔 또한 형제 민족이었던 이스라엘을 외면하고 끝없이 원한과 분을 품고 복수하였으니, 사랑과 긍휼을 완전히 버렸음이라. 암몬 역시 롯의 후손으로 마땅히 이스라엘을 우애로 대해야 함에도 영토확장의 욕심에 눈이 멀어 잔인하게 길르앗을 도륙하였으니, 맹렬한 불의 심판만이 있을 뿐이라. 신의와 책임을 외면하고, 분을 오래 품으며, 이익과 욕심으로 이웃을 짓밟는다면 여호와의 진노를 누가 피할 것인가? 지금 회개할 때이다...ILJ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4:26,27"
12:22
유덕선
2026년 11월 4일 수요일 <그 벌을 돌이키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모스 1장 9절-15절 <감사> 1. 말씀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2.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묵상> 11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형제간의 신의와 사랑을 저버리고 화와 분을 끝없이 품은 에돔의 그 죄로 말미암아 그 벌을 돌이키지 않으신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이웃과 가족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을 보내시기 전에 돌이키겠습니다. 말씀을 주시고 여러 번의 기회를 주십니다. 주실 때 다름을 인정하고 이웃과 가족들을 사랑하겠습니다. <적용> 주신 사랑을 표현하는 하루 되겠습니다. <기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오늘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1:32
김영득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에돔 암몬 모두 이스라엘의 한 뿌리라 할 수 있다. 다른 점은 하나님을 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신을 섬기고 죄악에 어린아이 까지 불에 바치는 끔찍한 일을 한다. 그들만의 신에의해 그들의 탐심을 채우고 살아보려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의 징벌은 이미 예고되고 지금 극에 달한 그들은 돌이킬 수 가 없는 상황이다,
11:32
금신향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이유 두로의 죄목: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않고, 사로잡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에돔에 넘긴 죄 심판의 핵심 이유: 신의와 계약을 저버리고 인간을 상품화하여 노예로 팔아넘긴 비인도적인 행위 에돔의 죄목: 칼로 형제(이스라엘)를 끝까지 쫓아가며 긍휼(자비)을 버리고, 끊임없이 분노를 품은 죄 심판의 핵심 이유: 형제 나라를 향한 잔혹함과 식지 않는 증오심, 자비 없는 무자비함 암몬의 죄목: 영토를 넓히려는 탐욕으로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른 죄 심판의 핵심 이유: 자신의 영토 확장을 위해 약자와 임산부까지 참혹하게 살해한 극단적인 반인륜적 잔혹 행위 : 이 세 나라에 대한 심판은 공통적으로 형제애와 인륜을 저버린 잔혹함과 하나님이 정하신 도덕적·윤리적 경계를 넘은 죄에 대한 공의로운 판결을 의미함
10:40
이희승
어제 본문에서 이어진다. 이스라엘 주위의 다른 나라들의 죄악을 언급하신다. 아람 (수리아), 블레셋에 이어서 오늘 본문에는 두로와 에돔과 암몬이, 내일 본문에는 모압과 유다가 나오고 그 다음이 이스라엘의 차례이다 [암1:3-2:5]. 이웃한 이들 일곱 나라들에 대한 아모스 선지자의 심판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마도 이스라엘은 아마도 내심 다음과 같이 자긍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라야. 큰 축복을 주셔서 정치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앞날에 거칠 것이 없어졌잖아.’ 그렇게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상황과 여건 속에서 다음 순간 이 모든 나라들의 심판의 예언이 단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선언의 전주곡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얼마나 놀라고 당혹스러웠을 것인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기와 자기 가족과 자기가 속한 공동체는 무한 긍정하고 싶어하는 본성을 가졌다. 나와 나의 가족에게 부어진 축복과 은혜 앞에서 미리 불안에 떨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그로 인하여 다른 이들의 처지를 반대 급부로써 섣불리 죄악시하며 속단한다거나, 혹은 나와 내 가족의 처지를 섣불리 낙관하는 잘못에 빠지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이웃 나라들 중 두로는 어제 본문에서 블레셋이 그랬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앙숙이었던 형제의 나라 에돔에 인신 매매하였다 (9절~10절). 두로가 단지 이스라엘을 전쟁 포로로 삼은 것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노하신 것이 아니라, 잡은 이들에 대해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대우마저 베풀지 않은 채 가장 수치스럽고 모욕적일 수 있는 노예의 자리로 내몬 행위에 대해 하나님이 분노를 쏟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에돔도 마찬가지였다 (11절~12절). 에돔이야 말로 아브라함과 이삭이라는 한 아버지를 둔 형제의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한 때 이스라엘에게 이 역사적 사실을 각인시키고 자기의 위엄과 주권을 보이시고자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막아서는 에돔과 싸우지 말고 우회하라는 말씀을 주셔서 이스라엘이 그에 순종했던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이스라엘의 태도와 반대되는 행위로써 에돔은 그들이 끝까지 지켰어야 할 선을 넘었던 것이다. 암몬은 더욱 잔인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업으로 받은 자신들의 땅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지경을 무분별하게 넓히려는 욕심으로 이웃의 길르앗을 쳤고, 그 과정에서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르는 등의 잔혹 행위를 서슴없이 저질렀다 (!3절~15절).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죄악과 폭력을 좌시하지 않으시고 랍바 성에 불을 놓고 전쟁을 회오리처럼 갑자기 임하게 하여 암몬 자손들이 손 쓸 새도 없이 왕과 지도자들과 그 백성들이 함께 사로잡혀가는 치욕을 그들이 길르앗에게 행했던 대로 맛보게 하리라 말씀하신다.
10:28
PARK MEAE
:5-10 선민의식 깨트리기 :8-10 하나남의 삼판은 스올 하늘 갈멜산 꼭대기부터 바다 밑까지 피할 수 있는곳은 없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자이기 때문에 죽정이와 알곡을 거르심 :11~15 무너진 다윗의 집을 다시 세워, 풍성한 은혜와 결코 다시 뽑히지 않을 영원한 회복을 약속하심
09:27
박영찬
길르앗이 요단강 서편 땅에 만족하지 못하고 동편 땅에 정착하였는데 옛날에는 그 땅을 지킬만큼 힘과 군사들이 있었지만 후손들은 대적과 경계하는 지역을 지킬 능력이 없었습니다. 두로와 에돔과 암몬의 잔혹함을 보여 주며 그들에게 임할 심판도 암시합니다. 인간이 악한 마음을 품으면 그 잔인함이 극에 이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고 선으로 대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롬12:17~21, 살전5:15)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습니다. 그 누군가가 복수를 멈추고 용서하지 않으면 피의 복수는 계속됩니다. 또한 탐심을 품으면 그만큼 악이 유혹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주어진 땅이 아니라 보기에 좋은 땅을 탐하여 경계지역에서 고난을 당했던 것처럼 욕심이 과하면 악에게 점점 가까워져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항상 몸과 마음을 성결하게 하도록 말씀에 깨어 있고 기도로 무장하여야 하겠습니다.(약1:15)
09:07
서보훈
〈하나님의 공의는 모든 민족에게 적용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아모스 1:13) 아모스 1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주변 여러 이방 민족의 죄도 지적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모든 민족과 나라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암몬은 자신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길르앗을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임신한 여인들의 배까지 가르는 잔인한 일을 저질렀다. 자신의 영토와 이익을 얻기 위해 무고한 생명까지 희생시킨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잔인한 폭력과 무고한 생명을 짓밟는 악행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심판하신다. 적용: 1. 우리는 자신의 목적과 유익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겠다. 나의 성공과 유익이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되겠다. 2. 하나님은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신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힘과 지위를 이용하여 약한 사람을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고 세워 주는 사람이다. 나라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자신의 권위와 영향력을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섬기고 약자를 보호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어떤 이유로도 무고한 생명을 잔인하게 짓밟는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세상에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옵소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미 가진 것을 더 가지려 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영향력을 국민을 섬기고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며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사용하게 하옵소서. 저 역시 나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게 하시고, 약한 사람의 아픔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을 보호하고 세워주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8:28
김정남
하나님은 이스라엘 주변 6개 나라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셨다. 본문에서는 두로에 대한 심판과 에돔과 암몬에 대한 심판의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두로는 화평의 계약을 파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에돔에 팔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을 보여준다. 특별히 두로는 해상 무역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었는데 그들의 주요 수입원 중에 하나는 노예무역이었으며 이에 이스라엘이 분열 왕국이 되자 허점을 틈타 노예로 팔아버렸던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신의를 지키지 않은 두로의 모습은 오늘날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의 기술 개발을 자기 이익을 위해 팔아넘긴다거나 불법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비인간적인 태도로 대우하는 모습들을 말할 수 있다. 온전한 관계가 아닌 관계를 무너뜨리는 모습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세우는 능력의 통로이다. 그래서 복음에 연합되어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게 되며 사람들과 온전한 관계를 세움으로써 화평과 의의 열매를 맺는 모습을 가지게 된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으며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의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것임을 제시한다. 과거 부목사로써 청년들을 지도할 때 한 가지 패턴이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청년들과 좋은 관계 가운데 많은 청년들이 모이게 되었지만 늘 2~3년이 지나면 청년들 사이에서도 관계가 나빠지고 나도 청년들과 좋은 관계를 지속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이러한 모습을 사단의 시험으로만 여기고 관계 개선을 위해 힘쓰자고 권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온전한 관계 개선이 되지 않아 매우 힘들었던 기억들이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이 주관하는 관계 개선은 결코 온전할 수 없으며 늘 갈등과 문제를 일으키고 끝내는 분열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온전한 관계의 형성은 사람의 생각과 열정이 아니라 철저하게 복음에 연합될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연합은 주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지 사람의 모임을 통해서는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아마도 사람의 모임, 연합의 모습은 땅 위에 것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땅의 것으로는 결코 참 만족이나 온전함의 모습은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복음 외에는 연합의 능력은 드러나지 않으며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는 관계를 모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하신다. 이러한 영적인 원칙을 야고보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사람의 욕심은 모두 땅의 것에 대한 것이기에 그 욕심은 땅의 한계를 드러내며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임을 보여준다. 반대로 모드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모두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성도가 복음을 통해 위의 것을 찾고 구하는 삶이 되지 않으면 그는 땅의 것을 찾고 구하는 자가 되어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가 됨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성도의 신앙생활은 땅의 것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하늘의 것에 대한 소망으로 바꾸는 과정이며 이것을 온전하게 이루는 때는 종말의 때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다. 그 가르침을 따라 오늘도 땅의 것에서 눈을 들어 하늘의 신령한 은혜, 복음에 담긴 생명과 기쁨의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주의 지체들도 이러한 은혜를 힘입어 믿음을 따라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고 진정한 연합과 마음의 기쁨, 그리고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08:15
김경애
● 암 1:9~15 <그들의 왕은 그 지도자들과 함께 사로잡혀 가리라> 타인에 대한 해코지 반드시 심판이 있다. 심성이 지은 죄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은 사람의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라 긍휼함을 보신다. 이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몰랐던 내 안의 내 심보를 마주할 때도 있다. 못되고 자아로 똘똘 뭉친... 굳이 남을 말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 앞에서 어느 누구도 당당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이다. 자복할 수 있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 고약한 심보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긍휼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성령님이 붙잡아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08:10
박도형
[시작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주님, 주님이 저희를 사랑으로 품고 긍휼로 대하시는것과 같이 저도 저의 가족과 이웃 동료 공동체원을 긍휼한마음으로 섬기게 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말씀] 두로와 에돔에 임하는 벌 1:9~12 9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로의 서너 가지 죄 때문에 내가 그들을 처벌하는 것을 돌이키지 않겠다. 그들이 형제의 계약을 어기고 사로잡은 사람을 모두 에돔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10 내가 두로의 성벽에 불을 보내 성채들을 불사르겠다.” 11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돔의 서너 가지 죄 때문에 내가 그들을 처벌하는 일을 돌이키지 않겠다. 그들이 한 가닥의 동정심도 없이 칼을 가지고 자기 형제를 뒤쫓으며 그들이 항상 맹렬하게 화를 내며 끝없이 분노를 품었기 때문이다. 12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 보스라의 성채들을 불사르겠다.” 암몬에 임하는 벌 1:13~15 13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암몬의 서너 가지 죄 때문에 내가 그들을 처벌하는 것을 돌이키지 않겠다. 그들이 자기 영토를 넓히려고 길르앗의 임신한 여인들의 배를 갈랐기 때문이다. 14 내가 랍바 성벽에 불을 놓아서 전쟁하는 날, 함성과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는 날에 폭풍 가운데서 성채들을 불사르겠다. 15 암몬의 왕은 자기 관리들과 함께 사로잡혀 갈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묵상] 우리가 알지못하는 이웃에게도 긍휼을 베풀어야하는것은 그들도 역시 하나님께서 지으신 소중한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인종이나 종교 지역 문화권에 갇혀서 타인을 구분짓고 배척하기 쉽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주님의 자녀이며 우리의 전도의 대상임을 느낄때 진정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품을수있게 될 것입니다. 열방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계속 품게하여 주소서.
08:09
서재학
"과한 욕심" 욕심이 과해지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게 된다. 오늘 본문은 세나라가 욕심으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다. 첫째, 두로는 약속을 어겼다. 둘째, 에돔은 매정했다. 셋째, 암몬은 잔인했다. 세 나라의 징계를 통해 내 삶에 적용하고 개선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첫째, 약속이다. 하나님과의 약속, 사람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한 서원과 헌금생활은 우리가 흔들리기 쉬운 약속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를 굳건히 지키길 다짐한다. 둘째, 매정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내겐 사랑이 부족하다. 말씀을 통해 부어지는 은혜와 감동으로 하여금 어려운 사람을 지나치지 않는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이 되길 다짐한다. 셋째, 잔인함이다. 세상의 가치관대로 살면 잔인해지기 쉽다. 항상 하나님 말씀을 붙들며 세상이 아닌 하늘 나라를 기억하며 살길 소망한다. 그리고 잔인해질 것 같은 순간에 십자가를 떠올려 우리의 죄사함을 기억하자. 두로와 에돔과 암몬의 죄를 통해 다짐하는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성경의 가치관대로 살면 세상에서 빼앗기고 새치기 당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우리에겐 하늘 소망이 있는데. 이런 마음으로 과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길 다짐한다.
08:07
이광순
26110 - 한 줄 큐티 아모스 1:9-15 죄에 대해 단호하신 하나님, 그분이 심판의 칼을 들으셨습니다. 두로와 에돔, 그리고 암몬을 향해 칼을 드셨습니다. 저들의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가슴을 후벼 팝니다. 저들을 징계하는 이유에 내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징계가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회복을 위한 징계가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돌이키라고 회초리를 드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처벌입니다.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여야 하는 처벌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죄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가 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저들의 죄목이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죄에 대해, 악에 대해 무딘 삶을 살고 있는가 봅니다. 죄와 악이 자연스러운 그런 끔찍한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가 봅니다. 형제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 동정심도 없이 형제를 뒤쫓으며 항상 화를 내고 끝없는 분노를 품는 것, 영토를 넓히려고 잔인한 불의를 행하는 것… 하나님이 지목하신 이 악행들로부터 나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 하나님! 그렇게 내가 죄에 무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를 어찌하여야 하겠습니까? 용서하소서, 당신의 징계가 시작되기 전에 돌이키게 하소서. 아버지가 우리에게 심으신 그 아름다운 본성을 회복하게 하소서. 그래서 징계가 아니라 축복을 누리는 그런 삶을 살게 하소서. 형제와의 약속을 지키고, 온유와 사랑으로 늘 은혜를 나누고 축복하게 하소서. 건강하고 평화로운 방법, 합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는 선한 삶을 살게 하소서.
07:50
윤동호
리더십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책임은 막 중 합니다. 더욱이 한국과 같이 그 의사결정 권이 리더들에게 집중 된 사회에서는 더욱 리더들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이 중요합니다. 두로와 에돔, 암몬의 리더들은 포악하고 잔인하여 하나님의 분노와 노여움을 사는 아괭을 일삼고 주변국들을 수탈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리더들의 선한 영향력과 하나님의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품성에 따라 하나님의 뜻과 정의와 공의로 통치 하는 리더들이 이 땅에 온전히 선한 정치를 그리고 선한 리더십을 발휘 하여 생육하고 번성 할 수 있는 나라와 공동체가 세워지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07:35
David Kim
서너 가지의 죄를 제하는 십자가 긍휼을 저버린 죄에 임하는 심판 아모스 1:9-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암1:9)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1. 두로(암1:9), 에돔(암1:11), 암몬(암1:13)에 대한 "나 주가 선고한다"(암1:9,11,13) "코부 아마르 예호바’ 심판 메시지이다. 똑같이 반복되어 적용하고 있는죄는 바로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암1:3,6,9,11,13)이다. ‘서너 가지 죄"(암1:3,6,9,11,13)는 몇 가지라는 걸까? ‘For three sins… even for four’(암1:9,11,13, NIV)인데 3가지의 죄는 각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범죄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이 못참는 네 번째 죄는 바로 암1:3,6,9,11,13의 후반에 나오는 죄이다.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않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고(암1:9), 형제나라 이스라엘을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고(암1:11),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던(암1:13) 죄는 하나님이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죄이다. 말하자면 의리도 온유도 긍휼도 없는 죄이다. 2. ‘서너 가지 죄"(암1:3,6,9,11,13)가 몇 개의 죄인지 한번 묵상해 볼래? 하신다. “본문에서 찾았지만 한번 계산해봐. 시간은 걸리니까 내일까지 해봐.” 하신다. 하나님도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의리이고 온유고 긍휼이라고 말씀하신다. ‘의리’는 하나님과의 계약을 기억하는 것이고(암1:9),… ‘온유’는 화를 내고 분을 품는 내 발톱이 비워지고 하나님의 도구로 온전히 쓰임받는 상태이고(암1:11)… ‘긍휼’은 상대방을 안스럽게 여기는 거라고 하신다(암1:13). 3. 내게 있는 의리와 온유와 긍휼을 돌아본다. 난 특별히 ‘의리"를 좋아한다. 사람에게 ‘의리"가 있어야 하나님께도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같은 존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그 대박 언약을 따라 삶으로 드러내며 사탄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리 말이다. ‘온유"는 내 발톱, 죄성, 상처, 욱하는 성질이 비워져야 가능하고 그래야 하나님의 도구로 온전히 쓰임받을 수 있음을 고백한다. 죽는 날까지 완전히 비울 수야 없겠지만 ‘의리"를 기억하면 하나님의 도구로 온전히 쓰임받는 ‘온유"의 삶이 됨을 말이다. ‘긍휼"은 마음의 동일화이다. 입으로만 하고 영혼은 비어있는 그런 ‘긍휼"은 또 하나의 배를 가른다. 근데 ‘긍휼"도 ‘의리"와 ‘온유"가 먼저 되어야만 가능함을 고백한다. 그 ‘의리"와 ‘온유"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생겨나는 십자가의 수직이라면… ‘긍휼"은 세상과의 삶의 교제를 어떻게 할 거냐 하는 십자가의 수평임을 말이다. 근데여… 주님. 주님이 정말 싫어하는 ‘서너 가지 죄"(암1:3,6,9,11,13)가 제 삶에서 제해진 십자가로 가야 주님과 ‘의리"와 ‘온유"가 생겨나고 그 결과 세상과의 삶의 교제에서 ‘긍휼"이 생겨날 수 있음을 고백해요. 날마다 그래서 십자가로 가야만 가능함을요. 십자가를 쳐다만 보지 말고 그 십자가에 저를 못박는 날마다가 있을 때 투데이는 투다이 될 수 있음을요. 섬기는 땅들 사람들도 ‘서너 가지의 죄를 제하는 십자가"로 가서 삶으로 의리와 온유와 긍휼이 생기게 해주세요. 전쟁과 추위와 단전 단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팽팽하게 당겨진 위로의 줄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가 언제 될 거죠? 주님… 전쟁 끝내 주실래요?
07:13
하수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분노하는것, 복수하는것, 화가나는것, 모든것이 다 내 마음속에 있지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어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나 대신 모든것을 능히 이루어주실것을 믿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잠잠해진다. 오늘말씀이 훈계의 말씀도 맞지만 오히려 위로가 되는 말씀이 것도 그 이유다. 예전에 너무 억울한 일이 있을때 하나님 나는 잘못한것이 없는데 왜 저사람은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하나님을 아무렇지 않게 찬양하고 나에대한 미안함이 없나요?라고 울면서 기도한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그때에는 아무 반응?도 안해주시는거 같았는데 지금와서보면 내가 억울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조치를 취해주셨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것. 나는 그저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아가는것밖에는 없다.
06:53
오철
아모스 1:9-15 두로는 형제의 언약을 기억하지 않고 포로로 잡은 백성을 에돔에 넘겼고, 에돔은 칼을 들고 형제를 쫓으며 분노를 품고 긍휼을 버렸으며, 암몬은 영토를 넓히려고 길르앗의 임신한 여인들의 배를 갈랐습니다. 세 나라의 죄는 모두 가까운 이웃과 형제를 향한 것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심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의 기준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기준에 따라 이루어짐을 깨닫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나라의 죄를 먼저 꾸짖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모든 민족의 폭력과 배신을 보고 계심을 보여 줍니다. 또한 에돔의 죄가 "긍휼을 버린 것"이라고 지적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난 행위뿐 아니라 마음에 품은 분노와 냉담함도 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형제를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하셨고(마 6:14),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마 5:7).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이 변화되었는지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이웃을 바라보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믿음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굳어진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래 서운했던 가족이나 동료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그들의 손을 붙잡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주신 사랑이 이웃에게 흘러가고,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감사도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말씀이 살아 있음을 보게 하옵소서. 아멘.
06:44
김영조
11.04 아모스 1:9~15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하나님 앞에서 이익을 선택했다 하나님이 주관자이심을 믿지 못한것이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하루 만나게 되는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아래에 있다 나는 그의 계획안에 살아가는 존재이다 오늘도 예수를 선택하는 하루가 되기를
06:23
김명현
** 관찰(Observation) 앞에서 “○○의 서너 가지 죄 때문에”라며 심판을 예고하는 패턴은 주변 나라들에 대해서는 2장 3절까지 이어진다. 이후에도 같은 형식으로 유다(2:4~5)와 이스라엘(2:6~16)에 대한 심판이 선포된다. ** 해석(Interpretation) 9~10절은 지중해 연안의 무역도시 두로에 대한 심판이다. 형제의 계약을 어기고 사로잡은 사람을 모두 에돔에 팔아넘겼기 때문에 성벽에 불이 나고 궁궐이 무너진다고 한다. 11~12절은 에서의 후손인 에돔에 대한 심판이다. 칼로 자기 형제를 쫓으며 동정심없이 분노를 계속 품었다고 한다. 데만에 불이 임하고 보스라의 궁궐이 무너진다고 한다. 13~15절은 요단강 동쪽의 암몬에 대한 심판이다. 영토를 넓히려고 길르앗의 임신한 여인들의 배를 갈랐기 때문이며, 랍바 성벽에 불을 놓아서 성채들을 불사르며, 암몬의 왕과 관리들은 잡혀 갈 것이라고 한다.
05:37
오현
*깨어진 잔에 담긴 외침* 오늘 본문의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한 심판은 단순한 지정학적 범죄나 외교적 배신의 관점을 넘어, 인간의 욕망이 신성을 훼손할 때 일어나는 영적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1. 언약의 거래화 두로는 이스라엘과 맺은 형제의 계약을 이익 창출의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에돔에 노예로 팔아넘긴 행위는 단순한 정치적 배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경제적 재화로 환원한 영적 도덕의 붕괴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관계와 신의를 오직 이익의 관점으로만 바라볼 때, 우리는 성소를 시장으로 만드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2. 분노의 우상화 에돔은 에서의 후손으로서 야곱의 이스라엘과 피를 나눈 백성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상처와 미움을 대를 이어 가꾸며 분노 자체를 하나의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에돔의 문제는 환난에 처한 형제를 돕지 않은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죄는 자기 안의 억울함과 응어리를 거룩한 분노로 착각하며 끊임없이 칼을 갈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결국 타인을 베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먼저 파괴하는 불길이 됩니다. 하나님은 타인을 향한 앙금과 독기를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우리의 은밀한 악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십니다. 3. 미래의 강탈 암몬 자손이 영토 확장을 위해 길르앗의 임신한 여인의 배를 가른 것은, 땅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가혹한 자원 독점과 미래 수탈의 모습입니다. 이는 단지 영토 경계선을 넓히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내일과 약자의 숨통을 끊어버린 도덕적 자살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강자의 야욕 때문에 억울하게 짓밟힌 소외된 생명들의 비명을 결코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4. 주권의 확장 아모스 선지자의 선언은, 이방의 도덕적 한계와 죄악까지 낱낱이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와 공의의 지평을 열어 보여줍니다. 이방 민족들에게 대한 심판은 율법의 부재로 인한 죄 때문이 아니라, 인간 속에 깃든 보편적 양심과 생명 존중의 규범을 짓밟았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의 불길은 파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탈한 세상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를 회복시키기 위한 은혜의 징검다리입니다. ----------------------------- 결국 오늘 본문은 깨어진 계약의 잔, 깨어진 형제의 잔, 깨어진 인간 존엄의 잔에 담긴 외침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05:23
박해동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장 마음 깊은 교훈으로 남는 내용은 이스라엘 12 지파의 땅 분배에서 본래 하나님께서 정해주지 않은 요단 강 동편 땅으로 간 지파들이 당하는 시련에 대한 것인데 그중에서도 므낫세의 자손 중 마길이 낳은 길르앗과 그의 후손들이 정착하여 살게 된 땅 길르앗에 대한 교훈이다[민26:29] 앞선 말씀에서는 그들이 다메섹[아람]의 침공을 받아서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고통을 받았는데[1:3. 왕하10:32-33.13:3] 오늘의 말씀에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지경을 넓히려는 암몬의 침공을 받아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르는 것 같은 위협과 고통을 당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점이다.[1:13] 왜 그들 길르앗 사람들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가(?) 그들 므낫세 반 지파의 사람들은 요단강 건너 서편에서 분배받은 땅에 만족하지 못하고 요단강 동편 땅 곧 롯이 소돔 성을 에덴동산같이 바라본 것처럼 그 땅을 탐하여 그곳으로 옮겨간 결과로써 동쪽으로는 암몬을 동북쪽으로는 아람과 경계를 이루다 보니 자연히 이런 피해를 보게 된 것 같다. 모세가 생존했던 당시 길르앗의 아비 마길의 시대에는 이러한 이족들을 얼마든지 쳐부술 수 있는 용맹과 능력이 있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민32:39] 그 후손의 시대에까지 이어지지는 못한 것 같은데 그들은 이족들의 경계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갔지만 그 경계를 지켜낼 만한 힘을 갖지 못했다. 이렇듯 길르앗 사람들이 당한 고통과 시련은 오늘 내가 내 눈에 좋게 보이는 대로만 따라가면 그것을 탐하는 또 다른 세력들로부터 내가 견제와 시련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며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족들의 세계 곧 이 세상 속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아야 함을 배운다. 더불어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암몬의 죄악으로써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른다거나 바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모압이 이웃 나라를 침공해 무덤에서 죽은 자의 시체까지 꺼내어 뼈를 사르는 것 같은 잔혹함으로 상징된 이런 죄악들은 사람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사람의 마음은 심히 부패하여 그 마음이 완악해지면 못 할 짓도 없다는 것을 보게 됨과 동시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혹시 말로나 행동으로도 폭력성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게 되기를 기도하게 된다. 주님!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사람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은혜에서 떨어져 마음이 완악해져서 내 말과 행동들이 폭력적이 되지 않도록 늘 나의 마음을 은혜로써 아름답게 하기를 힘쓰겠습니다. 더불어 길르앗 사람들이 이족들의 세계로 너무 깊이 들어가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과 시련을 보면서 오늘 내가 세상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내게 세워주신 신앙의 자리를 족히 여기고 내게 붙여주신 신앙 공동체 안에서 교류하며 자족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
05:07
차동길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두로와 에돔, 암몬을 심판하겠다고 선포하시는 내용입니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민족 국가이고 암몬은 롯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민족 국가이며 두로는 여러 식민지를 거느린 해상 도시 국가였습니다. 두로는 사람들을 에돔에 팔아 넘기는 죄를 범하였고 에돔은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미움과 증오는 결국 자신을 파괴합니다. 암몬은 영토를 넓히기 위해 길르앗 임신부들의 배를 가르는 극악한 행동을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익 때문에, 사람을 이용하거나 배신하는 것도 죄악입니다. 상처를 오래 붙들고 있으면 죄가 자랍니다. 권력과 이익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도 죄악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은 관계를 파괴하는 배신과 마음속 미움, 그리고 약자를 향한 폭력을 반드시 심판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은 신의와 사랑과 정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오늘도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여 주시사 숨어 들어오는 사탄, 마귀를 물리쳐 주시고 오고 가는 소식과 만남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4:54
장상인
Amos/阿摩司?/アモス書/아모스1:11(9-15) This is what the Lord says: “For three sins of Edom,?even for four, I will not relent. Because he pursued his brother with a sword?and slaughtered the women of the land, because his anger raged continually?and his fury flamed unchecked,” 耶和?如此?:“以?三番四次犯罪,怒?不停?作,永??着?怒,拿刀追?兄弟,?毫不存怜?,我必不撤???的??。” 主はこう仰せられる。「エドムの犯した三つのそむきの罪、四つのそむきの罪のために、わたしはその刑罰を取り消さない。彼が?で自分の兄弟を追い、肉親の情をそこない、怒り?けていつまでも激しい怒りを保っていたからだ。
04:50
박상형
언제까지 접시물에서 허우적거릴 수는 없다(아모스1장9-15) 1. 신앙이라는 거울 앞에서 던지는 정직한 질문 "예수를 믿으면 내 삶의 죄와 세상적 책임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는가?" 신앙의 여정을 걷는 이들이 은연중에 빠져드는 위험한 오해 중 하나는, 구원의 은혜를 세상에서의 도덕적·윤리적 의무를 면제받는 카드처럼 여기는 자기합리화이다. 하나님만 잘 섬기면 세상에서의 삶에 다소 허물이 있고 윤리적인 실책이 있어도 용서받고 면제된다는 생각은 은혜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자신의 태만을 포장하는 신앙적 착각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법과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면죄부를 얻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세상의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 하늘의 더 높은 기준을 내 삶의 중심에 두는 일이다. 믿음은 타인의 작은 한마디나 세속의 소소한 가치라는 "얕은 접시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왜소한 삶을 넘어서, 더 깊고 견고한 내면의 신앙으로 나아가게 한다. 2. 면죄부가 아닌 더 높은 기준 아모스서에서 하나님은 이방 나라들의 죄뿐만 아니라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를 엄히 살피시며 그 벌을 돌이키지 않겠다고 선언하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죄의 본질적인 성격이다. 이방 나라들의 죄가 주로 인간관계에서의 도덕과 윤리에 관한 것이었다면, 하나님을 섬기던 유다의 죄는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고 주의 율례를 지키지 않으며 선조들이 따르던 거짓 것에 미혹된 "하나님과의 관계적 죄"였다 (아모스 2:4). 그렇다면 진리를 아는 이들은 세상의 도덕적·윤리적 죄에 대해 면죄부를 받아야 마땅할까?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세상의 법 아래서 지켜야 할 기초적인 도덕마저 경시해도 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해서 육체가 짓는 죄에 대해 면제받는 사사로운 자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신앙인에게 적용되는 하늘의 법은 세상의 법을 무시하는 법이 아니라, 세상의 법을 품고 뛰어넘는 더 높은 차원의 법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이 증언하듯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는 성령의 열매는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지니고 있다. 이는 세상의 땅의 법을 능히 지키고도 남아야 하는 거룩한 기준이다. 하나님이 진리를 아는 자들에게 물으시는 책임의 본질은 알만한 사람들이 그래선 안 된다는 거룩한 부담감이다. 3. 소유의 확장이 아닌 내면의 견딤 세속적 가치관은 남들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슬프게도 많은 이들이 신앙조차 소유를 확장하고 세속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탈바꿈시키곤 한다. 그러나 믿음의 본질은 소유의 확장에 있지 않다. 참된 믿음이란 이미 하나님께 받은 소망이 내면에 있기에, 남들보다 더 참고 견딜 수 있는 묵직한 내면의 힘이 생기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는 영원한 소망을 품고 있기에, 자잘한 일에 삶 전체가 흔들리거나 전전긍긍하지 않는 태도가 바로 믿음의 진면목이다. "삶의 시간이 생각보다 길면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서 기쁘고, 혹여 삶의 시간이 짧다면 주님과 가까워질 날이 날마다 가까워지므로 기뻐할 것이다." 라는 누군가의 이 깊은 고백은 타인의 멋진 문장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이제 나의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한다. 삶의 길이가 길든 짧든 상관없이 주님과 함께함 자체로 기뻐할 수 있는 중심을 갖는 것, 남들보다 더 갖기를 바라는 욕망을 넘어 남들보다 더 깊이 견뎌내는 힘을 갖는 것,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 가진 경탄할 만한 아름다움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저들보다 더 행복해야 하는 것, 저들보다 더 가져야 되는 것이 아니라 저들보다 더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04:25
정기용
♤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내가 긍휼을 저버리는 자에게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을 세번이나 반복하여 말씀 하신다. 두로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에돔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다. 암몬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그래서 그들에게 14절 내가 랍바 성에 불을 놓아 그 궁궐들을 사르되 전쟁의 날에 외침과 회오리바람의 날에 폭풍으로 할 것이며, 15절 그들의 왕은 그 지도자들과 함께 사로잡혀 가리라고 말씀하신다. 주님, 동맹을 맺은 두로, 형제의 나라인 에돔과 암몬은 이스라엘을 향해 긍휼을 베풀기보다 미움과 분노와 적대시하는 그들을 행해 책망하시고 분노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들을 용서하시고 용납하여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랑과 긍휼함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00:08
유홍열
하루종일 바람이 많이불어 거리마다 낙옆이 날립니다 풍경의 정광은 이리좋은데 받아든 말씀은... 참혹하리 만큼 처절합니다 내 이익을 넓히겠다고 가장 약한 생명까지 짓밟은 암몬의 이기적인 욕망. 손해 보지 않으려고 오래된 형제의 약속을 가볍게 저버린 두로의 셈법.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마음 깊은 곳에 칼을 품고 끝내 긍휼을 버렸던 에돔의 지독한 분노. 성경 속 핏빛 문장들이 남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아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역사의 어둠 속에서 가장 아픈 피눈물을 흘렸던 그 시절의 비극들처럼,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의 아픈 무지가 오늘 제 삶의 거울에도 그대로 비쳐 들기 때문입니다. 너는 오늘 무엇을 위해 네 삶의 지경을 넓히려 하느냐? 네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불쌍히 여기는 긍휼이냐, 아니면 남을 찌르는 칼날이냐? 주님의 이 나지막한 음성이 어두운 내 양심의 문을 세차게 두드립니다. 내 자존심 한 뼘을 더 지키고 높여보겠다고, 가장 가까운 이들의 가슴에 아픈 말의 비수를 꽂았던 제 지나온 날들이 떠오릅니다. 내 안위와 이득을 위해 슬그머니 외면해 버렸던 손해 보는 신의와 약속들. 용서하지 못해 밤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오랜 서운함과 분노의 앙금들. 세상은 그것을 당연한 자기보호라 부르고 지혜라 말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긍휼이 마른 그 완악한 성읍 위에 심판의 불을 놓으신다 선포하십니다. 참으로 두려운 것은 지은 죄의 크기가 아니라, 이웃의 아픔과 눈물 앞에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했던 제 마비된 양심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차갑고 굳어버린 마음을 깰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려 십자가에서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신 그 핏빛 긍휼의 사랑뿐입니다. 그 십자가 아래 엎드릴 때 비로소 내 고집의 칼을 쥐었던 손에 조용히 힘이 풀리기 시작 하며 그 사랑의 눈물 속에서야 남의 아픔과 눈물이 비로소 내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이 깊은 가을날, 내 삶을 빽빽하게 채웠던 탐욕의 지경을 내려놓고 십자가 아래 다시 무릎을 꿇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 쌓았던 높은 마음의 궁전을 허물고, 주님이 보시는 그 한 영혼을 가슴에 안고 기도하는 작은 긍휼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 내 마음에 숨겨둔 오랜 미움의 칼을 내려놓고 먼저 따뜻한 사랑의 안부를 이웃에게 건네겠습니다. 말없이 스며드는 이 가을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굳어버린 심령을,ㅡ,... 촉촉하게 적셔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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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일
(하트)오늘하루도 하나님과 함께 말씀묵상(하트) 2026년11월4일 수요일 1843일차 ●묵상본문[아모스 1:9~15]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10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12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14 내가 랍바 성에 불을 놓아 그 궁궐들을 사르되 전쟁의 날에 외침과 회오리바람의 날에 폭풍으로 할 것이며 15 그들의 왕은 그 지도자들과 함께 사로잡혀 가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묵상제목[나의 삶의 결과는 어떠한가?] [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나의 행동으로 어떤 사람은 올바른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나쁜 길로 가기도 한다. 지난 시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어린 친구들을 양육하며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양육하셨는지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성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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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호
요즘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갑습니다. 길가에 낙엽이 쌓이고 옷깃을 여미는 걸음이 빨라집니다. 그런데 날씨보다 더 쉽게 식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 사이의 마음입니다. 한 번 서운했던 일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녹지 않습니다. 먼저 손 내밀기가 자존심 상해서 모른 척 지나친 날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사실 저도 그런 날이 적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두로와 에돔, 암몬을 차례로 책망하십니다. 모두 이스라엘 곁에 있던 이웃 나라들입니다. 두로는 사로잡은 사람들을 에돔에 넘겨주며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장사의 이익 앞에서 어쩌면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거래를 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이니 이스라엘과는 형제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에돔이 칼로 형제를 쫓으며 긍휼을 버렸고, 분을 끝없이 품었다고 말합니다. 오래 품은 분노도 처음에는 작은 서운함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하고 품고만 있을 때 마음은 조금씩 굳어 갔을 것입니다. 암몬은 영토를 넓히려고 길르앗의 임신한 여인들까지 해쳤습니다. 욕심이 커지면 약한 사람이 먼저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보고 계셨고 벌을 돌이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상처받은 마음이 분노로 기우는 것은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본문이 책망하는 것은 상처 입은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을 붙들고 긍휼을 버린 선택입니다. 아픔을 느끼는 것과 긍휼을 버리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저는 이 본문에서 긍휼이라는 단어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긍휼은 상대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 베푸는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바로 그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라고 권면합니다. 서리가 내린 땅은 단단하지만 한낮의 볕이 닿으면 다시 부드러워집니다. 굳은 마음도 하나님의 긍휼이 닿을 때 조금씩 풀어집니다. 용서를 서둘러 강요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아직 아프다면 그 아픔을 그대로 하나님께 가져가면 됩니다. 오늘 마음이 가장 차갑게 굳은 사람의 이름을 하나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짧게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화해가 아직 어렵다면 기도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입니다. 마음이 허락될 때 안부 한 줄을 먼저 건네 보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저 역시 말씀 앞에서 제 마음의 굳은 곳을 돌아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함께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찬 바람 부는 이 계절에 제 마음까지 식어 가지 않게 하옵소서. 분을 품고 긍휼을 버렸던 에돔처럼 되지 않게 하시고 먼저 받은 주님의 긍휼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약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하게 손 내미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굳은 마음 위에 주님의 은혜가 한낮의 볕처럼 닿게 하옵소서. 오늘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먼저 안부를 건네는 용기를 주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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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0 | 임현호 | 요즘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 mobil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