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버린 가이드

story 2019년 12월호 놓쳐버린 가이드 글/사진 나벽수

실행 파일이 없는 생각은 허깨비

 

정점을 지나는 순간, 숱한 것들과 작별합니다. 이젠 가쁜 숨을 몰아쉬지 않아도 됩니다. 등산 스틱에 기대 헐떡거리는 일 따위는 다신 없을 겁니다. 하루에도 수백 미터씩 고도가 낮아지므로 고산병 걱정도 썩 덜었습니다. 송곳 같던 바람 끝도 한결 무뎌집니다. 아침 기온도 갈수록 누그러져 이불을 박차고 나오기가 고역스럽지 않습니다. 두터운 옷들은 집어넣어 버리고 가벼운 옷 위주로 배낭을 꾸립니다. 너덜과 좁은 벼랑길은 줄어들고 평평하고 넓은 길이 잦아집니다. 몸이 덜 부대끼니 주위를 돌아볼 틈이 생깁니다. 

 

흙집, 돌집 한 채 한 채에, 가을걷이가 끝난 다랑논에, 길가에 늘어선 경판에 시선이 갑니다. 산골 어른들과는 어김없이 눈을 맞추고 아이들에게는 손을 흔들어 줍니다. 길을 거슬러 위로 올라가는 트래커들과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웃음이 하도 노골적이어서 “고되시겠구려, 난 다 끝냈는데”라는 속셈을 들키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지경입니다. 


생각의 범위와 갈래도 사뭇 달라집니다. 오르막에선 다음 코스, 기껏해야 정상을 염두에 둘 뿐입니다. 안나푸르나서킷을 할 때는 토롱라를 지나는 게,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향할 때는 칼라파타르에 서 보는 게 목표였고 그 이상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저녁이면 그날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고, 내일 여정을 계산하고, 난이도를 가늠하고, 다음 숙소와 식당의 상태를 상상하다 곯아떨어지는 게 고작입니다. 


하지만 한결 여유가 생기는 내리막에선 트래킹 전체를 헤아리고 완주 이후의 삶을 그려 봅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걱정이 살아나고, 온갖 미련들이 마음을 오갑니다. 이런 심사는 고도가 낮아질수록 더 진해지고 짙어지다 마지막 날 절정에 이릅니다.

 

몸과 마음의 재고를 확인해 보겠다는 일차적인 목표는 웬만큼 채운 듯합니다. 허덕거리고 휘청거리긴 했어도 5천 미터가 넘는 고개를 탈 없이 넘었습니다. 그만한 몸이면 건강 탓에 하고픈 일을 포기하는 사태는 면할 수 있을 겁니다. 산란하던 마음도 차분해졌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길에 집중하다 보니 지나온 아픈 사건과 관계들을 적잖이 잊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무얼 하며 살지에 대해서도 답을 얻었습니다. 이러저러한 벌이로 평생을 살아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진 않았지만 커다란 원칙은 섰습니다. 

 

앞날을 인도하시는 가이드를 믿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면, 한 세상 잘 지내기엔 어려움이 없을 성싶었습니다. 무거운 짐은 포터 노릇까지 겸해 주시는 그분께 맡기고 맨몸으로 할랑할랑 따라갈 요량입니다. 하루 먹고 묵을 수 있는 데 만족하고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심장에 독약이라는 스트레스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여태 툭 씨와 포터들을 따라 걸으며 그 연습을 하지 않았던가요? 조악한 잠자리와 부실한 끼닛거리에도 불만이 없이 지냈으니 그 기억만 잊지 않으면 자족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음은 그러한데, 몸의 반응은 조금 결이 다릅니다. 산 위에선 한 겹 접어 두었던 욕구들이 고도가 낮아질수록, 여정이 끝나갈수록 일제히 들고 일어나 요동을 칩니다. 감자 몇 알로 때우는 점심이 지겨워지고, 그 달던 라면에도 입맛이 돌지 않습니다. 뜨끈한 콩나물국에 김치 한 종지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김밥 한 줄에 떡볶이 한 접시와 오리털 파카를 바꾼다 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몇 바가지 미지근한 물로 온몸을 닦는 대신, 따듯한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푹 담그고 싶습니다. 하얀 시트가 덮인 침대에 누워 하루쯤 푹 자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겁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이제 몇 시간만 더 내려가면 당장 실현될 손에 잡히는 미래입니다. 자연히 발길이 빨라집니다. 비탈에선 내달리고, 계단은 두 칸씩 건너뜁니다. 나중에는 아예 달리다시피 언덕을 내려갑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었습니다. 


포터들은 물론이고 툭 씨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행의 존재를 한동안 새카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그이들을 의식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빨리 걷는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만 가지 생각과 감회에 깊이 젖다보면 발걸음이 더뎌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가이드와 포터들 역시 제각기 앞일을 생각하느라 이편을 놓쳤을 수도 있습니다. 빨리 여정을 마치고 수고비를 받아 모처럼 한 잔 기울일 꿈에 부풀었을지 모르죠. 산길을 가는 데 도가 튼 이들이니 얼마나 날래게 달려갔을까요? 우리가 이렇게 뒤처졌다는 걸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한편으로 야속하고 다른 한편으론 걱정이 됩니다. 무작정 이 길을 따라가야 하는 걸까요? 엇갈리기라도 하면 완전히 낭패입니다. 어디서 잘 곳을 구하고 밥은 어디서 먹죠? 한편으로는 헛웃음이 납니다. 가이드만 따라가겠다는 대원칙을 정한 걸 대견스럽게 여기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평생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장한 결심을 했는데, 그 결심을 하느라 가이드를 놓쳐버리다니, 천하에 이런 바보 멍청이가 또 있을까요? 툭 씨 없이 걷는 길은 자책과 당황함과 걱정스러움의 무한 반복이었습니다. 30분이 넘도록 그이를 다시 만나지 못했더라면 십중팔구 머리를 싸쥐고 길가에 주저앉았을 겁니다. 


툭 씨는 앞이 아니라 뒤에서 나타났습니다. 고향 사람을 만나 잠깐 인사하는 사이에 우리가 없어져서 깜짝 놀랐답니다. 뛰다시피 뒤를 쫓았는데 가도 가도 보이지 않아서 무척 걱정스러웠다는군요. 얼마나 내달렸으면 벌써 여기까지 왔느냐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차마 한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를 사 먹을 욕심에 그랬노라고 답할 순 없어서, 애매한 웃음으로 대신했습니다.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이도 마주 웃습니다. 


다시 그이의 뒤를 따라 걷습니다. 비상사태는 종료됐는데, 복잡한 심산은 통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열이틀을 걸으며 곱씹고, 다짐하고, 결기를 세운 게 다 헛짓이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 같아선 도로 산으로 기어 올라가기라도 하고 싶지만, 긴 트래킹의 마지막 공부를 되새김질하는 걸로 수습합니다. 


“이론은 됐고 실천이 답, 실행 파일이 없는 생각은 허깨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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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벽수는 전문 번역가이자 작가, 기자다. 「천로역정」, 「래디컬」, 「닉 부이치치의 허그」 ,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번역했으며, 「벽수 씨의 교회 원정기」, 「까칠한 벽수 씨, 목사에게 묻다」(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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