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보내는 멈춤의 신호

prologue 2025년 07월호 영혼이 보내는 멈춤의 신호 글 서진아

일본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바닥에 적힌 ‘止まれ’(토마레, 멈춤)라는 글자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이라도 길이 교차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 글자가 보입니다. 보행자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닌, 자동차에게 보내는 경고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보행자가 있을 수 있으니 일단 멈추고 주위를 살피라는 뜻이죠. 자동차를 향한 신호이지만, 저는 그 글자 보는 걸 좋아합니다. 같은 공간, 익숙한 얼굴들,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마치 “백만 스물둘, 백만 스물셋…”을 숨 가쁘게 외치는 건전지 인형 같은 나에게 ‘止まれ’는 따끔하지만 절실한 일침이 되어 주니까요. 멈추어 숨 고르기가 필요한 순간 저는 골목마다 새겨진 그 글자를 보러 나섭니다. 그러고는 말하죠. “아, 이걸 보려고 비행기 타고 이곳까지 날아왔구나!”

 

학창 시절, 공부만 하던 아이도 아니었는데, 왜 우리 엄마는 내가 공부 좀 하려 치면 그만하고 자라고 하셨을까요? 평소엔 설렁설렁 하다가 시험 기간만 되면 작정하고 밤을 새우곤 했는데, (어쩐지 지금도 마감 때마다 분주해지는 모습에 기시감이 든다 싶었네요.)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엄마는 방해꾼마냥 “이제 그만하고 자”라는 속 편한 말씀만 하셨지요. 그땐 야속했지만, 지금은 그 말씀이 너무 그립습니다. 살아 보니 버둥거려 얻은 성취와 성공이 생각만큼 대단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럼에도 두려움과 염려로 여전히 멈추지 못하는 나에게 “그만하고 쉬어”라고 말해 줄 엄마가 안 계시다는 것이 못내 쓸쓸하고 허전합니다.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하며 얻은 놀라운 열매에 들떠 있을 때, 예수님은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막 6:31)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취와 성공에 취해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것은 더 큰 사명이 아니라 ‘멈춤’이었습니다. 분주하고 복잡한 일상을 살아내느라 멈출 엄두조차 못 내는 독자들에게 「빛과소금」 7월호가 하나의 ‘멈춤’ 표지로 다가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는 멈추어야 할 이유를, 누군가는 다시 걸어야 할 용기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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