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을 바라보는 지혜

prologue 2025년 01월호 ‘언더독’을 바라보는 지혜 글 서진아

해마다 일본 효고현에서는 일본 고교야구 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고시엔[甲子園] 대회가 열린다. 고교야구 대회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매 경기마다 4만 7,000석에 달하는 거대한 구장이 꽉 들어차고 대회 시청률은 무려 20%에 육박한다. 일본인들의 여름을 상징하는 국민적 대축제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엄청나다. 명성답게 고시엔의 우승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다. 일본 전역에서 참가한 3천여 개 학교가 예선을 거쳐 최종 49개 팀이 본선에 진출하는데, 예선부터 본선까지 최소 10번을 싸우는 동안 한 번이라도 지면 거기서 끝이다.

 

2024년 고시엔 대회에서는 그야말로 돌풍이 일어났다. 우승을 거머쥔 교토국제고는 총 학생이 160명에 달하는 소규모 한국계 학교다. 재일교포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1947년 설립했으며, 2003년이 되어서야 일본에서 정식 학교로 인정받았다.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다른 명문고에 비해 역사도 짧고 부원 수도 적다. 훈련 환경도 매우 열악하여 아무도 우승을 예견하지 않았다. 오로지 투지와 영리한 작전으로 우승 후보 팀을 하나씩 물리치고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냈다. 이 정도에서 끝났다면 흔한 언더독의 반란 정도로 남았을지 모른다. 굳이 지난여름에 있었던 일본 고교야구 대회 얘기를 꺼낸 건 한국어로 된 교가가 일본 전역에 생중계되는 진귀한 장면까지 담겼기 때문이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야마토·일본)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야구에 대해 잘 모르는 나조차 그 장면에서는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말이 서툰 일본 야구 소년들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동해 바다…‘라니. (현재 교토국제고는 일본인 학생 비율이 높다.) 언더독의 반란에 여지없이 빠져든 것이다.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뿐이라는 힘의 이분법적 논리를 전제로 짜릿한 언더독 스토리가 수없이 생산된다. 감동이라는 이름을 입고 도파민을 촉구하기에 너무 좋은 재료가 아닌가.

 

스위스 내과의사이자 정신의학자인 폴 투르니에는 그의 책 『강자와 약자』를 통해 말한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강함과 약함에 가려진, 우리 내면 깊은 곳의 고통에 응답하신다”고. 더하여 강자의 불안과 약자의 절망을 넘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을 선택하도록 권한다. 어떤 사회 현상이든 빛과 어둠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언더독의 승리가 약자들의 소망이 됨은 바람직하나, 언더독 자체가 권리와 무기가 될 수 없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지혜롭게 바라보는 「빛과소금」 독자님들 되시길 바라며 1월호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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