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번역 선교사’라는 직업이 조금 생소한데요. 일반적인 선교 사역과는 차이가 있나요?

성경 번역 선교사는 성경 번역과 보급, 교육을 중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선교’와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선교라는 것이 꼭 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는 활동만을 말하지 않잖아요? 의료나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죠. 그런 의미에서 성경 번역 역시 선교의 여러 형태 가운데 하나라고 보시면 돼요. 저희 성경 번역 선교사들은 자기 모국어 성경이 없는 나라나 부족을 위해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 만들어주고, 또 번역된 성경을 활용해 복음을 가르치며 제자를 양육하는 등의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성경을 가진 것이 너무 당연해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모국어 성경이 없는 경우가 많은가요? 

전세계에 약 7,000개의 언어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중에 92% 가량이 공용어가 아닌 부족 고유의 언어들이고, 그 부족들 대부분은 자기 언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 살면서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거나, 성경을 한 구절도 읽어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선교사나 현지 사역자를 통해 복음을 들었더라도 직접 성경을 읽지 못하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고요. 그래서 저희는 성경이 필요한 곳에서 부족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 누구든지 직접 말씀을 읽고 복음을 알도록 사역하고 있어요. 현재 저희 ‘GBT 선교회’의 이름으로 214명의 선교사님들이 25개국에 파송되셔서, 300개 언어의 성경 번역본 만들기를 목표로 열심히 사역하고 계시죠. 

부족의 언어부터 배워야 한다니, 성경 번역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겠는데요? 

한 부족의 언어로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하는 데 평균 15년 정도가 걸리는데요. 이게 순수하게 번역만 하는 시간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먼저 파송될 나라가 정해지면, 1년 동안 그 나라의 공용어를 배워야 해요.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섬길 부족을 찾죠. 부족이 정해지면, 그 안에서 함께 지내며 부족의 언어를 배우고 생활과 문화를 익히며 그곳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시간을 보내요. 그런데 대부분의 소수 부족 언어들은 말은 있어도 철자나 문법이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대화하면서 파악한 대로 철자법을 만들어주고, 그에 맞는 사전도 만들고, 언어를 가르치면서 5~6년을 보내죠. 그러는 사이에 번역에 함께할 현지인 성도들을 양육해야 해요. 선교사가 언어를 배워서 번역하는 것보다는 현지인의 생생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성경 이해에 더 도움이 되니 현지인 성도들의 역할이 꼭 필요하죠.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번역 작업을 시작하는 거예요. 이 과정을 다 거치니 15~20년이 걸리는 거고요. 저는 현재 말레이시아 밀림지역의 ‘멜라나우’라는 부족 안에서 12년째 사역 중인데요. 본격적으로 번역 단계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 현재 마가복음 번역을 마치고 주석서를 번역하는 중이에요. 

말로만 존재하던 언어를 체계화 하는 것부터 하시려면 언어에 대한 감각이 필요할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면 좋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선교사로 파송되기 전에 훈련을 받는 과정이 있는데, 그때 어느 정도 개념을 익힐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속한 선교회 안에는 문해교육이나 언어학의 전문가 그룹이 있어서 협력하면서 사역을 하게 돼요. 뿐만 아니라 여러 방법으로 함께하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부족 언어 현황을 조사하시는 분들, 언어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시는 분들, 저희가 번역한 성경을 감수하고 교정하시는 분들, 번역된 성경으로 양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분들, 성경을 인쇄물이 아닌 영상이나 오디오로 제작하시는 분들, 종족에 맞는 음악이나 영상을 만드시는 분들, 심지어는 의사와 조종사, 정비사까지 이 모든 분들이 성경 번역 사역에 함께하는 ‘성경 번역 선교사들’이세요. 실제로 저는 성경을 번역하지만, 제 아내는 번역한 성경과 교재를 활용해 양육하는 사역을 함께 감당하고 있죠. 

무척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네요. 다른 책도 아닌 ‘성경’을 만드는 일이라는 점에서 큰 책임감도 있으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우리나라는 1800년대에 존 로스 선교사나 이수정 같은 분들에 의해 한국어 성경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읽는 성경의 기초가 되었잖아요? 지금 제가 번역하는 성경 역시 부족 안에서 100년 가까이 쭉 읽힐 거라 생각하면 감격스럽기도 해요. 동시에 제가 선택한 단어 하나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왜곡될 수도 있다는 거룩하고 엄중한 책임감도 있죠. 그래서 한 문장을 번역하기 위해서 여러 번역본들, 주석서들, 성경 원어까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공부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깜짝 놀라는 일들도 많아요. 한글 성경에서 무심코 읽던 단어 속에 엄청난 뜻이 숨어 있는 걸 발견하기도 하고, 문장 하나에 숨겨진 하나님의 질서를 깨닫고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흘리느라 일이 중단되기도 하죠. 저와 함께 성경 번역팀의 멤버가 된 현지인 분 중에는 작업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는 오랫동안 미워하던 남편을 용서해서 가정이 회복된 경험도 있어요. 이 일을 하면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역시 ‘말씀’뿐이라는 걸 느껴요.  

번역과 동시에 깊은 묵상을 하고 계시는 셈이네요. 앞으로도 이 사명을 계속 이어가실 텐데, 개인적으로 바람이 있으시다면 함께 나눠주세요.  

지금 제가 사역하는 멜라나우 부족은 인구가 13만 명 정도 되는 큰 부족인데, 그중 70%가 무슬림이고 20%가 가톨릭이에요. 개신교 교회는 단 두 곳뿐이어서 성도들은 항상 약자의 삶을 살죠.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는 하는데 무슬림 신앙 외에는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성경을 읽고 은혜는 받지만 실제로 누군가를 전도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전도했다는 이유 자체로 법정 싸움이 시작될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번역에 함께하시는 분들을 보면 계속 훈련되고 성장하고 담대해지는 걸 느껴요. 그래서 늘 그분들께 말해요. “이 사무실은 그저 공장일 뿐입니다. 성경을 만드는 데 만족하지 마시고 언제 어디서든 담대하게 가르치고 받은 은혜를 전하세요”라고요. 성경은 만드는 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활용되고 전해져야 하니까요. 물론 아직은 쉽지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꼭 그렇게 이루실 거라 믿어요.  

취재│한경진 기자 · 사진│정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