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현숙 수어통역사의 별명인 ‘웃는 여자(리브가)’를 상징하는 수어 동작

국가공인 수어통역사, 

JTBC 뉴스, CBS ‘새롭게하소서’, 

지구촌교회 예배 수어통역 등

수어통역사로 여러 곳에서 활약하고 계신데요. 어떤 활동들을 하시는지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현재 국가공인 수어통역사이고요. JTBC 방송국의 뉴스 프로그램, 국회의사당 소통관, 기독교 방송국인 CBS와 CTS의 방송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지구촌교회의 예배 수어통역을 담당하고 있어요. 아마도 여러분 중에 ‘새롭게 하소서’라는 간증 프로그램에서 수어통역을 하는 제 모습을 본 친구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 외에도 수어 강사로 여러 교육을 담당하거나 수어통역이 필요한 분들이 계시면 찾아가서 통역해 드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수어’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드려요. ‘수화’라고도 말하곤 하는데, ‘수어’와 ‘수화’는 다른 것인가요? 

수어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농인(청각장애인)들이 손동작과 표정을 사용해 의사소통하도록 만든 언어를 말해요. 그동안 손의 움직임으로 대화하는 것을 ‘수화’로 많이 알고들 계셨을 거예요. 그런데 2016년에 법적으로 ‘수어’라는 명칭으로 통일하게 되었어요. 수화는 손짓이나 몸짓처럼 소통을 보조하는 수신호의 개념이라면, 수어는 체계화 된 문법과 어순에 따라 동작을 표현하는 언어의 개념이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음성언어인 ‘한국어’에 이어 시각언어인 ‘수어’를 두 번째 공용어로 인정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수어는 나라마다 다른가요? 

완전히 달라요. 나라마다 언어가 다른 것처럼, 수어도 그 나라의 문화와 환경, 정서에 따라서 표현하는 방법도 어순도 다르죠. 물론, 국제회의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국제수어’가 있는데요. 특별히 공식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 나라의 수어를 사용해요. 그래도 전세계에서 공통어처럼 쓰이는 수어가 있어요. 그중 하나가 ‘사랑합니다’예요. 엄지, 검지, 새끼손가락을 펴면 ‘I love you’가 되는데요. 새끼손가락으로 표현한 I,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표현한 L, 엄지와 새끼손가락으로 표현한 Y가 합쳐진 동작이죠. 

아, 이렇게 표현하는 거군요! 요즘은 뉴스나 예능, 시사프로그램에서도 수어통역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통역사 분들의 활동 영역은 주로 어떻게 되나요? 

농인 분들이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저희는 어디든지 투입돼요. 법원이나 경찰서, 병원 진료에 동행하거나, 수업, 상담, 회의 같은 상황에서 농인과 청인의 의사소통을 돕는 일을 하죠. 특히, 요즘은 방송 분야에서 수어통역의 수요가 아주 많아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방송에서 수어통역이 ‘서비스’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농인 분들의 알권리를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그만큼 더 전문적이고 공식적인 통역 능력을 필요로 해요. 특히 방송 수어통역의 경우에는 농인 분들로 구성된 평가단의 평가가 늘 있어요. 적절한 단어를 사용했는지, 표현은 제대로 했는지, 맥락에 맞게 통역했는지 평가를 받죠. 그래서 방송 전에 대본이 나오면, 미리 내용을 파악하고 농인 분들의 자문을 얻어서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준비를 많이 하는데요. 그래도 갑자기 ‘알잘딱깔센’ 같은 신조어가 나오면 순간 당황해서 땀이 삐질 흐르기도 해요. 가장 어려운 건, 뉴스나 국회회의 같은 경우인데요. 미리 숙지할 겨를이 없는 데다, 치우치지 않은 표현과 절제된 표정을 유지해야 하고,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정치, 법률 용어들이 많아서, 평소에 여러 분야의 뉴스를 많이 보고 들으면서 알아둬야 해요.  

방송이나 회의 상의 통역을 주로 생각했는데, 농인 분들의 일상에도 깊숙하게 들어가 계시네요. 

맞아요. 그런데 제가 도움을 드린다기보다 오히려 도움을 받는다고 느낄 때가 더 많아요. 수어통역사는 농인 분들의 일상과 생각을 잘 파악해야만 더 잘 해낼 수 있는 직업인데, 실제로 농인 분들과 함께 다니며 일상을 보내다 보면 그분들이 사용하시는 수어들과 대화 방식을 알게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저를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실 때도 많거든요.  

수어통역사로서 보람된 일도 많으시겠죠? 

한 어르신이 생각나요. 농인인 할머님이신데, 한글을 배우지 못하셨어요. 그분은 이동수단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셨는데, 글을 모르시니 면허 시험을 볼 수 없어서 늘 무면허로 다니셨죠. 그러니 매번 경찰에게 걸려서 벌금을 낼 수밖에 없었어요. 이 할머님의 꿈이 면허를 갖고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어서, 제가 모시고 의정부에 가서 학원에 등록시켜 드리고, 교육 과정을 함께 다니면서 도와드렸는데, 결국 면허를 따내셨지 뭐예요. 제가 차로 모시고 면허증을 받으러 갔던 날, 할머님이 영상통화로 할아버지께 면허증을 보여드리면서 자랑하시는데, 두 분이 얼마나 펑펑 우시며 좋아하시던지…. 그 순간, 통역사가 되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교회 예배나 간증 프로그램을 통역하실 때에는 또 어떠세요? 색다른 기분이실 것 같아요. 

저는 예배를 통역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찬양의 기쁨이 있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이어서요. 그땐 목사님과 제가 하나가 된 듯한 기분도 들어요. 수어통역사는 자기 의견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해야 하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이 마치 나인 것처럼 이입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목사님을 특별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요. 그래야 그분의 말, 표현,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설교를 전달할 때 “아멘” 하시거나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감동스러운데, 반대로 제 표정이 굳어 있으면 설교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느껴져요. 그래서 더 책임감을 가지고 성령 충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수어통역사는 청인과 농인 사이에서 중요한 끈이 되어주는 존재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께 ‘수어’란 어떤 의미인가요? 

‘숨 쉬는 것’이에요. 가끔은 주일에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수어만 하는 날도 있어요. 농인들을 대상으로 하루 종일 지내니까요. 일상에서도 농인들을 만나고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은 수어보다 말로 표현하기가 더 힘들기도 해요. 그래서 ‘농인들이 없다면 나는 뭐가 될까?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제 주변에는 농인들이 때로는 선생님으로, 때로는 도와주어야 할 친구로 늘 함께 있죠. 그래서 농인들과의 시간, 그리고 수어로 소통하는 일상이 저에게는 그냥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삶이에요. 

글│한경진 기자 · 사진│정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