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배경을 잘 알지 못하고 어렸을 때 욥기를 읽었을 땐 욥의 세 친구의 말이 다 옳은 것인 줄 알았고, 마지막 장에서 하나님이 그의 세 친구에게 진노하시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 후에 세 친구가 어떤 면에서 잘못한 건지 알게 되었고, 오늘 QT 본문을 통해 다시 보니 엘리바스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가 펼친 주장에는 허점이 있었다.
가끔 내 주변을 봐도 엘리바스처럼 모든 고통을 죄의 결과로 해석하려는 분들이 많다. 사람이 힘든데 내가 고통받는 이유는 ‘죄’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말을 들으면, 그리고 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더 힘이 빠진다. 물론 말씀 곳곳을 보면 의인은 복을 받고 장수하며 악인은 심판받는다는 내용이 아주 자주 나온다.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할 때 이런 오류가 난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물질적인 복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복을 말한다. 악인이 심판받는다는 내용은, 당연히 반은 이 땅에서의 고통이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반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갔을 때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고통은 무조건 죄로 인한 것이고, 번영은 무조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우리를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내가 하나님도 아니면서 결과만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모든 판단과 결정의 주권은 하나님께만 있음을 기억하자. 정죄는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정죄를 끊으신 분이다. 저 사람의 고통이 죄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따로 있는 것인지, 마귀의 공격인지 분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오히려 고통받는 그 사람에게 격려와 위로를 해주자. 고통받는 그 사람이 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자꾸 판단하고 가르치고 훈계하고 정죄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도와주세요.
판단은 오직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니, 자꾸 저희 스스로가 하나님이라 착각하여 남을 함부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해주셔서 절대 남을 실족시키지 않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남을 욕하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하자
-힘들어하는 사람을 볼 때, ‘그러니깐 똑바로 했어야지’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