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난주간의 마지막 날이다. 고난주간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고난주간 QT를 통해 묵상한 예수님의 말씀들을 늘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며 잊지 않는 나와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지난번 요한복음에서 묵상했던, 반가운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또 어리석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먼저 요셉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짚어보자면,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이면서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자신이 제자인 것을 잘 드러내지 못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는, 그가 웬일로 당당하게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부탁했다. 시신을 받고 나서 요셉은 세마포로 시신을 쌌고, 새 무덤에 모신 다음 큰 돌로 무덤 입구를 막고 떠났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일에 니고데모도 참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셉이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십자가를 만났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교 지도자들은 똑같이 십자가를 보고도 변화되지 않았다. 그들의 완악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칭하며, 그분이 살아 있을 때 ‘내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여 무덤을 단단히 지켜달라고 빌라도에게 부탁했다.
그들은 똑같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더 악해졌으면 더 악해졌지, 이전보다 더 착해지진 않았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똑같이 주어진 말씀과 십자가 앞에서 나의 반응을 점검해 보았다.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속은 아직도 변화되지 않아서 완악한, 회칠한 무덤 같은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닌가.
오늘날도 똑같이 말씀과 십자가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나 변화되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완악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은, 겉으로 거룩해 보인다고 변화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칭찬과 박수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구제도, 기도도, 금식도 많이 하여 그 당시에 가장 거룩한 사람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까맣게 썩어들어간 속을 예수님께서는 책망하셨다.
십자가 앞에서 나의 반응은 어떠한가. 그 앞에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순종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전혀 변화되지 않은 채 겉으로만 착한 척하는 완악한 죄인인지, 어쩌면 그것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돌아봐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해 제물이 되어 돌아가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죽어도 변화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사랑에 감사하며 십자가를 붙잡고 회개할 때, 그리고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변화될 것이다.
오늘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종교 지도자들의 반응을 각각 묵상했다.
요셉과 같은 삶을 살 것인지, 종교 지도자들과 같은 삶을 살 것인지 말씀 앞에서 늘 점검하고 결단하는 우리가 되자!!
하나님 아버지, ‘두려움을 넘어선 믿음’으로 변화된 요셉과 같은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온전한 제자의 삶으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말씀을 기억하고도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악을 행하던 종교 지도자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게 도와주세요.
저희가 진짜로 변화되게 해주세요.. 요셉의 헌신을 본받게 하시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늘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죄를 회개하고, 말씀으로 내 삶을 점검하기!!
-말씀 앞에서 변화되지 않는, 아직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 한심스럽지만, 나도 그런 죄인임을 기억하여 그 사람들을 정죄하지 말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해달라고 간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