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반할 가룟 유다의 발마저 닦여 주실 수 있었을까? 오늘 1절 말씀처럼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것이다.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예수님은 죄투성이인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아니하셨던 만큼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분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정말, 끝없고 놀라운 것이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닦여 주시며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다. 자신을 배반할 가룟 유다에게도 차별 없이 똑같은 사랑을 주셨다. 지금도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과 죄 씻음의 은혜가 허락되어 있다. 우리도 이 사랑을 본받아 흘려보내야 한다.
가장 낮은 섬김의 자리에서, 자신을 죽음에 넘길 배반자에게까지 사랑을 베푸셨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자.
세상에는 원수들이 참 많다. 싸우는 사람도 많고, 바라만 보고 있어도 욕이 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경건한 척하며 산 깊은 곳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지 않는 이상 원수를 용서할 수 없다. 진정한 용서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만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며, 흉보며, 질투한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다. 그만큼 생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살인사건들도 일어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이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성도들도 똑같은 환경에 서있다. 똑같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과 달라야 하는 이유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원수보다도 악한 나를 용서하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경험한 사람은 결코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고, 정죄할 수 없다.
나도 그렇고 당연히 싫은 사람이 있다. 미워하는 사람? 거짓말 않고 진짜 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속상하고, 그 사람에 대해 욕하고 싶어진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면 더더욱 괴롭다.
누구나 원수가 있기 때문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은 정말 지키기 어려운 말씀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막연하게, 무조건 우리보고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아까 말했듯 그것을 먼저 보여주시고, 몸소 사랑을 베푸신 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것을 행할 수 있고,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갈 길이 없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나날 동안은 원수에게도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끝까지 섬길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사랑으로 섬기신 예수님의 자녀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 다.
예수님이 사랑의 사역을 하신 것처럼,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섬기자.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미운 원수들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충분히 끌어안을 수 있다.
나의 죄를 씻기시고, 죄인들도 사랑으로 섬기신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나와 우리 모두가 되기로 결단하자!!
하나님 아버지, 자신을 배반할 가룟 유다의 발도 닦이신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원수도 사랑으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해주세요.
죄인 중에 괴수인 저희들을 사랑으로 품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자기 전 기도할 때 미운 마음이 드는 사람을 위해 더 기도하기!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