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애매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앙에 ‘타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에 눈먼 사람이었으나 이제 눈을 뜨게 된 사람은 신앙에 애매함도 없었고, 타협도 없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눈 뜬 사람을 심문하는 내용이다. 눈 뜬 사람은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고백하였으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며 죄인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죄인은 그런 표적을 보일 수 없다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대 사람들은 눈 뜬 사람의 부모를 불러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의 부모는 20절, 21절 말씀과 같이 대답하였다. 회당에서 내쫓김을 당할까 봐, 당당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눈 뜬 사람은,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았다. 애매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정확하고 명확하게, 담대하게 말하였다.
특히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절대로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이 한 마디는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이가 아니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이 말에 격분한 사람들은, 죄 가운데 태어난 자가 어떻게 감히 우리를 가르치려 드냐며 결국 그를 회당에서 내쫓아 버렸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 내용이다.
눈 뜬 사람의 부모는 자신들이 당할 불이익을 생각하여 담대하게 고백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눈 뜬 사람은 그것을 알면서도 담대하게 증언하였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라고 담대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회당에서 내쫓김을 당했지만, 그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알았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깨달았다면, 주님을 경험했다면 그것을 담대히 증언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얻어도, 그리스도를 얻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다’라는 오늘 QT 내용처럼, 나의 목숨까지 걸더라도 고백하며 전해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하자.
세상에서 이익을 받기 위해 타협하며, 예수님을 선뜻 전하지 못하는 삶이 아닌,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리스도께 속하기 위해 담대히 걸어가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자.
오늘 말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담대하지 못할 때가 있었음을 회개한다. 사람들이 무시하고, 듣지 않으려고 하고, 나를 나쁘게 쳐다봐도 내가 전해야 할 것은 전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이제는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내가 말씀을 통해 만난 하나님과 복음의 사실을 담대히 전파하며 살아가기로 결단한다.
사도행전 마지막 장의 마지막 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오늘 말씀 속 눈 뜬 사람처럼, 그리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과 일행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예수님의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전할 수 있는 나와 우리가 되기로 결단하자!!
하나님 아버지, 성경 속 인물들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기 원합니다. 세상에서 소외당하더라도, 하물며 죽임을 당하더라도 담대하게 사실을 전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해 주세요,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타협하는 가짜 믿음이 아닌, 내가 받은 은혜를 세상에 알리는 자녀가 되기 원합니다..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담대한 믿음을 달라고 늘 기도하기!
-어떤 위기를 맞아도 예수님은 구원자이시고, 그리스도이시라고 전파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