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바울이 말했듯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지식을 뛰어넘는다. 바울은 성도들이 그 사랑을 충만하게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몇 가지의 기도 제목을 두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속사람이 강건해지도록,
성도들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수 있도록,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를 깨달아 충만해질 수 있도록 기도한 것이다.
바울의 기도 내용을 들어보면, 이 기도는 ‘영적 성숙’을 위한 기도이다. 바울이 바랐던 성도들의 모습은 성숙한 모습이었다.
지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충만하게 되는 것,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 등 모두 우리가 지녀야 할 성숙한 모습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넓고, 길고, 높고, 깊은 위대한 사랑이다. 감히 이 사랑을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영적 성숙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세상의 것을 바라고, 육체적인 안정을 찾는 것은 별 쓸모없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영생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10대이면 10대에 알맞은 행동을 해야 하고, 40대는 40대에 알맞은 행동을, 60대는 60대에 알맞은 행동을 해야 하듯 사람은 자신의 나이에 알맞은 행동을 하여야 한다. 만약 어른이 어린이처럼 행동한다면, 정말 웃긴 일일 것이다.
이처럼 신앙도 성숙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점점 성숙해야 하는데, 계속 ‘어린 신앙’에만 머물러서 내가 세상에서 필요한 것만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마치 하나님을 ‘내 부탁 들어주는 분’ 정도로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은 성숙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물론 필요를 구하는 기도도 필요하다. 우리가 먹을 양식, 살아가며 필요한 것들 등 주님께 구하는 기도는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에만 초점을 둔 기도를 드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초점을 두어야 할 곳은 영적인 문제이다.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육체적 필요보다 영적 갈급함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세상에서 사랑받기를 바라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완전히 깨닫고 그 안에서 충만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경험하는 영적 성장을 하기 위해 오늘부터라도 우리의 기도의 초점을 바꾸자.
영적으로 더 성숙한 자녀, 계속 성장하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내가 될 수 있기로 결단한다!
예수님, 그리스도께 붙들려 사는, 성숙한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이 주님께로 향하고, 기도 제목의 초점이 영적 성숙함에 맞춰져 있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사랑 안에서 충만하게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
앞으로 기도할 때 사도 바울이 기도했던 것처럼,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