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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소중한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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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다이어리에 묵상을 작성해보세요!
06:55
김영득
생명의삶QT 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암4:4) 날씨도 예보를하여 그것을 토대로 미리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게한다.그러면 거의 맞아들어간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뿐 만 아니라 미래도 예측하여 경고하고 신호를주신다. 예보에 감각도없이 살면 낭패이듯 하나님의 경고에 무감각한자는 화를 입고 고통이 따른다. 예배에 감각없는 형식을하나님은 증오하고 기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곁에서 끊임없이 경고하신다. 회개없는 예배는 받지않으시고 징계의 결과를 낳는다. 주님 진정한 예배로 항상주님께 존귀와 영광드리게 하소서. 아멘
06:53
장상인
Amos/阿摩司?/アモス書/아모스4:1(1-13) Hear this word, you cows of Bashan on Mount Samaria,?you women who oppress the poor and crush the needy?and say to your husbands, “Bring us some drinks!” ???些撒?利?山上的巴珊母牛?,????!??欺??寒人,?碎??人,?主人?:"拿酒?,我?喝?!" 聞け。このことばを。サマリヤの山にいるバシャンの雌牛ども。彼女らは弱い者たちをしいたげ、貧しい者たちを迫害し、自分の主人たちに、「何か持って?て、?ませよ。」と言う。
06:32
하수지
12.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엄마들이 자식이 나쁜행동을 할떄 ‘엄마가 세번말한다. 세번째 말안들으면 혼나는거야 ’ 라는 말처럼 오늘 말씀도 그런류인거같다. 엄마가 아이에게 그렇게 행하는 이유가 그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함임을 생각하면 그안에 핵심을 또 사랑이다. 나는 항상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하나님을 부모라고 생각한다. 절대 나를 포기할이 없고 내가 항상 잘되기만을 바라며 나의 성공에 유일하게 가장 기뻐할 사람이라는것. 그리고 언제나 나를 사랑한다는 것. 하나님은 부모와 다를 바가 없으시다.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 나 너무 힘들어요 ㅠㅠ 앞이 안보여요 ㅠㅠ 하나님 진짜 저좀 도와주세요 ㅠ엉엉 ㅠㅠ‘ 이렇게 기도를 한다. 하나님이 날 싫어하시거나 미워하셔서 이런 고난을 주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전에 하나님이 나에게 경고생 멘트를 , 엄마가 마지막이야! 셋! 이렇게 말하기전에 내가 먼저 돌이켜 회개하는 신앙을 너무 갖고싶다. 그럴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안에 답은 항상 성령충만하여라 인거같다. 성령이 충만해서 성령님이 이끄시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과 반대급부에 서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항상 하나님안에서 기뻐하고 평화롭게 사는것도 은사중에 하나라고 했다. 그럴러면 정말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오늘도 성령충만을 달라고 기도해야지.
05:49
서재학
교회생활만 하는 사람들에겐 경건의 모양만 있다. 신앙생활에 이르는 사람이 되어야 경건으로 가득차게 살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선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한다. 첫번째론 상류층의 포악함이다. 학대와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을 죄의 결과로 꼬집는다. 두번째론 종교의식을 비판한다. 겉보기엔 매우 열심히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은 모습을 지적한다. 오늘은 두번째 비판에 집중하여 회개로 묵상하길 소망한다. 참된 경건의 모양을 위해선 두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참된 믿음이다. 하나님은 나의 구주시며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생명을 이른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이르는 믿음이다. 이를 위해선 우리의 자연스러운 죄성에 대한 회개가 필요하다. 말과 행동을 항상 주의하고 하루하루 말씀앞에 서서 지난날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야 한다. 이런 모습이 바로 참된 경건의 모양이다. 경건의 모양을 갖추면서 살길 바란다. 마치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죄에 대해 둔감해지지 않길 바란다. 생생하게 회복되어 참된 마음을 품고 회개로 나아가길 기도한다. 말씀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살길 기도한다. 그렇게 경건의 모습을 지키고 갈고 닦아, 하나님 나라에 갈 때에 흠없이 내 영혼을 드릴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05:27
오현
*갈고리에 꿰인 풍요의 민낯* 아모스 4장은 풍요로운 시대가 품고 있는 위선과 영적 무감각을 해부하는 본문입니다. 1. 우아함을 가장한 폭력 아모스는 사마리아 산의 부유한 여인들을 ‘바산의 암소들’이라 부르며 말씀을 시작합니다. 이들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궁핍한 자를 짓밟으면서도, 남편들에게는 그저 마실 것을 가져오라며 우아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던 사람들입니다. 가장 잔혹한 폭력은 종종 평범하고 안락한 일상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의 눈물을 쥐어짜는 구조적 악에 눈감은 결과,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짐승처럼 낚시꾼의 "갈고리"에 꿰어 끌려가는 비참한 최후입니다. 2. 하나님을 소비하는 제단 이어서 하나님은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라"는 매우 역설적이고 조소 섞인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벧엘과 길갈은 이스라엘의 가장 거룩하고 전통 있는 성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희생을 드리고 십일조를 바치며 넘치는 종교적 열심을 과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예배가 오히려 죄를 더하는 행위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예배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기뻐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자기 위안의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의가 결여된 종교적 열심은 하나님을 소비하여 자신의 탐욕을 교묘하게 포장하는 우상숭배에 불과합니다. 3. 재앙에 숨겨진 애타는 초대 6절부터 11절에는 기근, 가뭄, 병충해, 전염병, 전쟁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국가적 재난 목록이 등장합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이는 심판의 연속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락마다 반복되는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탄식에 진정한 핵심이 숨어 있습니다. 이 재앙들은 멸망을 위한 채찍이 아니라, 제발 잠든 영혼을 깨우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애타는 경고등이었던 것입니다. 이 본문이 보여주는 진짜 비극은 땅이 메마르고 양식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토록 간절한 하나님의 두드림 앞에서도 끝내 귀를 막아버린 영적 무감각입니다. 4. 피할 수 없는 만남 모든 경고와 기다림이 무위로 돌아간 후, 하나님은 마침내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는 최후의 선언을 던지셨습니다. 이 만남은 더 이상 자비로운 아버지가 아니라, 온 우주의 통치자요 창조주이신 심판관과의 대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성소에서 가볍게 소비하고 조종하려 했던 분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 분이신지를 보여주십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만물의 주관자이신 창조주 앞에 단독자로 서야 할 날이 반드시 오게 됩니다.
05:09
차동길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성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회적 불의와 약자 억압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자 약자에 대해 무관심한 자 물질적 풍요만 추구하는 자들을 미워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순종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예배 참석, 헌금, 봉사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벧엘과 길갈에서 열심히 제사를 드렸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변화가 없었기에 하나님은 기근, 가뭄, 농작물 피해, 전염병, 전쟁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파멸이 아닌 회복을 위해 징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를 묻기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운 일은 하나님을 만날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통은 또 다른 방법의 축복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 오늘도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여 주시사 숨어 들어오는 사탄, 마귀를 물리쳐 주시고 오고 가는 소식과 만남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4:58
정기용
♤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본문4.5절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배인가 쇼인가"저자 A.W 토저는 예배가 변질되면 교회가 변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딤전6:16)라고 말하고 하나님은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33:20)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속성은 거룩하시고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주권적이시며 수 많은 속성을 갖고 계신다. 그 분 앞에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은 어떤가? 예배의 주인은 누군지, 예배의 대상은, 사람의 자랑과 영광은 있는데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은 없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안에 강력하게 역사하려면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조화를 이루고 여호와 신이 우리를 감동시킬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예배 속에 정직한 영성이 없는 자가 자신은 믿지도 확신도 없으며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고 찬양을 한다. 장엄하고 화려하게 잘 짜여진 순서에 따라 예배를 드리지만 사람의 기쁨이 될지언정 하나님의 마음과는 상관없는 예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 교회는 성경에서, 성령 하나님께, 복음에서, 배우려 하지 않고 세상에서 배우려 하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의 방법으로 영적인 일을 배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지 않고 믿지 않는다. 성령의 체험도 복음에 대한 능력과 영적으로 둔감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성령의 하는 소리를 들으려하지 않는다. 기장 큰 문제는 AI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그에게 배우려 하고 그를 믿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알려고 하는 방법이 같고 그의 답이 같게 나오니 모두가 혹하여 그를 찬양하고 숭배하고 믿고 따른다. 성경은 미리 보여 주었다. 이스라엘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를 만나는 동안에,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가지고 온 가장 좋은 금.은을 가지고 금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며 이것이 우리를 인도할 신이라 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성령을 무시하거나 거부할 때 그들의 자신의 지혜를 따르고 마음대로 행동 하거나 아니면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의 뜻이라며 자신들의 가치를 만들어 우상이 되어 섬기게 된다. 주님, 사람들은 세상에 귀하게 여기는 것 즉 최상의 과학과 지식의 산물인 AI라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화석화 되고 영적 진리의 수용성을 잃어 버리고 현재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이 조롱당하며 옥에 갇히고 쫒겨나기도 하고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주여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행하고 있습니다. 성령이여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여 주시고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04:39
박상형
풍요의 진짜 의미(아모스4장1-13) 1. 우리는 정말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겉보기에 제법 부족함 없는 일상을 누리곤 한다. 아침이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퇴근 후에는 개인의 취향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 그러나 스스로 "부족함이 없다"며 안도하는 이 풍요로움이, 삶의 본질과 영적인 잣대 앞에서 과연 하나님께 진정으로 인정받는 부유함일까? 세상의 눈에는 여유롭고 풍족해 보일지라도, 정작 그 모든 겉치레를 걷어낸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께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수천 년 전, 풍요로움에 취해 정작 삶의 본질을 잃어버렸던 이스라엘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비추는 선명한 거울이다. 무심코 지나쳐왔던 본래의 "풍요의 정의"를 다시금 잔잔하게 탐구해보고자 한다. 2. "내가 잘해서 누리는 풍요"라는 착각 당시 이스라엘은 풍성한 목축지로 이름난 "바산의 살진 가축"에 비유될 만큼 물질적인 풍요의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누리던 부유함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셨다. 성경이 전달하는 하나님의 어조는 사랑하는 자녀를 품는 따스한 목소리가 아니라, 서슬 퍼런 경고와 엄중한 심판의 메시지였다. (1)사마리아 언덕에 사는 너희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어라.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빈궁한 사람들을 짓밟는 자들아, 저희 남편들에게 마실 술을 가져 오라고 조르는 자들아" 부유함 한가운데 있던 그들이 이토록 서늘한 경고를 받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누리는 풍성함의 원인이 오롯이 "자기 자신"의 능력과 공로에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단을 쌓고 제물을 바치며 스스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소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5)또 누룩 넣은 빵을 감사제물로 불살라 바치고, 큰소리로 알리면서 자원예물을 드려 보아라. 이스라엘 자손아, 바로 이런 것들이 너희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 자신들이 풍요로워진 것이 하나님께 바치는 정성스러운 제물과 열심 있는 행위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라 믿고 즐겼던 태도, 그것은 풍요의 근원을 자기 공로에 두는 철저한 기복신앙에 불과했다. 성스러운 종교적 행위조차 결국 자신의 욕망과 풍요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3. 풍요의 진짜 목적은 "소유"가 아닌 "나눔"이다 성경이 나지막이 건네는 풍요의 본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곳을 향한다. 삶에 주어진 모든 풍성함은 개인의 성실함이나 탁월함으로 획득한 전리품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어진 선물이다. 따라서 그 어떤 순간에도 내 자격이나 공로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풍요를 허락하신 진짜 목적 역시 명확하다. 그것은 단지 내 울타리를 견고히 하고 자기만족과 소유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풍요가 간절히 필요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은혜로 획득한 자원을 이웃과 나누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빈궁한 자를 짓밟으며 오직 자신들의 쾌락만을 위해 독점했다. 은혜로 받은 선물을 독점하고 나눔이라는 목적을 왜곡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삶을 갉아먹는 독이자 엄중한 경고의 대상이 되고 만다.
02:11
오철
아모스4:1-13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갈 때 가만히 두지 않으시고, 오늘 본문에서도 기근과 가뭄과 재앙을 통해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다섯 번이나 반복되는 "그래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한마디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풍요를 누렸고(1절) 형식적인 제사로 스스로 만족했으며(4-5절), 어려움이 와도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고난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고난을 겪고도 돌이키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12절)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위협이기 전에 아직 돌이킬 기회가 남아 있다는 간절한 초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은 눈에 보이는 풍요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잘못된 방향을 깨달아 주께로 돌이키는 지혜이며, 그 지혜는 성령님께서 주십니다. 최근 내게 찾아온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이 돌이키라고 하시는 음성을 흘려보낸 부분은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원하는 길을 먼저 정해 놓고 그 길을 허락해 달라고만 구하지 않게 하옵소서. 어려움이 올 때 불평하기 전에 주님의 음성을 먼저 듣게 하시고, 돌이키라 하실 때 미루지 않게 하옵소서. 제 풍요 때문에 곁에 있는 약한 이웃을 보지 못하거나 형식만 남은 신앙으로 스스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며 오늘 하루를 살게 하시고, 돌이켜 걸어가는 그 길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기쁨이 제 삶의 간증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00:48
유홍열
겨울 초입의 찬 바람에 벌써 도톰한 패딩과 장갑, 목도리가 등장 했습니다. 한양엔 유난히 이른 첫눈이 쏟아졌다지요. 벌써부터 이 겨울을 어찌 보낼까 걱정이 앞섭니다. 차가운 바람 앞에 자연은 군더더기를 버리고 자신의 모습을 내려놓을 줄 알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수십 년을 살아도 고집은 여전히 단단하고,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버리지 못한 욕심 하나, 풀지 못한 미움 하나를 훈장처럼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사랑으로 용서하고 내게로 다시 돌아오라 아무리 불러보아도 마이동풍(馬耳東風)입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암 4:6) 하나님께서는 이 애타는 말씀을 본문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지나가는 강아지도,.., 몇 번 부르면 돌아보는데, 인간의 망부석 같은 마음은 굽힐 줄을 모릅니다. 겸손은커녕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무엇이 잘못 이냐는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우셨으면 차마 매를 드시면서까지 같은 말씀을 거듭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먹을 것이 부족해도 하늘이 말라 비가 내리지 않아도 병충해와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징계와 깨우침 앞에서도 그들의 마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옛날의 이스라엘이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나 어쩌면 그리도 닮았는지요.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리면 잠시 반성하는 척하다가도 예배당 문을 나서 며칠 지나면 다시 고집스러운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진 않았습니까?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고집했고, 용서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끝내.,., 먼저 손 내밀지 못했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세상 걱정을 먼저 챙겼고, 사랑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내 입맛에 맞는 사람만 골라 사랑했습니다. 어쩌면 내 신앙의 문에도, 하나님께서 수없이 두드리셨지만 끝내 열어 드리지 않은 빗장이 걸려있는지 모릅니다. 보라 내가,.!! 문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주님은 소리치고 문을 흔드시는데 우리는 그 간절한 소리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로 여겨버리진 않았나요. 불과 몇십년전 자신이 닫아 말씀을 깨닫지 못했던 일들로,. 늘 무감각했었는데 말씀은 그 무감각을 초토화 시켰지요 대부분 사람들이.. 말씀을 잘들어도.. 난 잘알아 하면서도 지키지도 못하면서 그것이 무지인걸 모르니 다 막고 살며.. 입만 열어놓았으니.. 어찌., 무슨 소리를 듣겠는지요?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아니라,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무감각한 마음으로,. 태연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절기를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며 열심히 종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화려한 겉모습보다 상하고 통회하는 삶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예배당에서는 천사처럼 거룩한 척하면서도, 세상에서는 사랑을 잃어 버리고 입술로는.,., 주여 주여 부르면서 이웃의 눈물에는 무관심했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연수가 믿음의 전부는 아닙니다. 직분이 높아진 것이 신앙이 깊어졌다는 증거도 아닙니다.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보다 오늘 지금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닮아가고 있는 지가 더 중요합니다. 나무는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자신의 잎을 내려놓습니다. 붙잡고 있다고 해서 영원히 간직할 수 없다는 것을 자연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그토록 움켜쥐고 있을까요? 갈퀴로 긁어모은 오래된 상처 풀리지 않는 앙금 같은 서운함, 그리맞아도 아프지않는 강심장...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 내 생각만 옳다는 교만까지 이제는 정말 내려놓아야 합니다. 두 손을 비워야. 새로운 은혜가 들어오고 마음을 비워야 하나님의 생명 말씀으로 채워집니다. 오늘도 미움에서 사랑으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불평에서 감사로,. 형식적인 신앙에서 살아있는 믿음으로 ., 돌아갑시다. 인생에서 가장 늦은 후회는 돌아갈 수 있을 때 돌아가지 않은 후회 일 것입니다. 핑계 대지 말고,,,, 내 마음의 빗장을 열고 주님을 다시 모셔 들입시다. 가을 낙엽은 떨어져 흙이 되어도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지지 않습니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가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도 그 변함없는 사랑을 붙들고 하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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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일
(하트)오늘하루도 하나님과 함께 말씀묵상(하트) 2026년11월9일 월요일 1848일차 ●묵상본문[아모스 4:1~13] [1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3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5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8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13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묵상제목[심판하시는 하나님] [9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 가운데 심판을 내리신다. 내가 착한 일을 하였으면 선한 일로 나쁜 일을 하였으면 나쁜 것으로 나에게 심판하신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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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호
날이 추워지면서 아침마다 이불 속이 더 포근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알람이 울리면 일단 끄고, 또 울리면 다시 끄며 5분만 더 하고 눕습니다. 알람은 나를 괴롭히려는 소리가 아니라 일어나 하루를 맞게 하려는 배려인데도 말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이렇게 여러 번 울려 온 소리가 있지 않을까요? 아모스 4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동안 겪게 하신 일들을 하나씩 돌아보게 하십니다. 양식이 떨어지는 날이 있었고 (6절), 추수 석 달 전에 비가 그친 해도 있었습니다 (7절). 곡식이 마르고 메뚜기가 덮치고 전염병이 돌았으며 (9~10절),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토막 같은 때도 있었습니다(11절). 그리고 본문은 다섯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 "그래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6절). 이 반복에서 저는 하나님의 탄식을 듣습니다. 벌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기회를 거듭 주셨다는 아픔이 묻어납니다. 물론 오늘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이 곧 징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말합니다. 흔들림 속에서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말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헤아려 보면, 이스라엘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벧엘과 길갈에서 아침마다 제사를 드리고 삼 일마다 십일조를 드렸으니까요 (4~5절).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이 너희가 좋아하는 바니라" (5절)고 하십니다. 예배의 모양은 열심이었지만 마음은 돌이키지 않았고, 사마리아의 부유한 이들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자기 잔만 채우고 있었습니다 (1절). 하나님이 바라신 것은 많은 제물이 아니라 돌아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12절). 이 말씀은 두려운 선고이기 전에, 만남으로의 초대입니다. 산을 짓고 바람을 창조하며 새벽을 어둠으로 바꾸시는 분이 우리를 만나자고 하십니다(13절). 저는 오늘 이 질문 앞에 섭니다. 내가 몇 번이나 누른 하나님의 알람이 있었을까. 알람을 끄면 잠은 잠시 달콤하지만, 알람에 일어나면 하루가 열립니다. 오늘은 마음에 반복해서 걸리던 한 가지에 짧게 "네" 하고 대답해 보면 어떨까요. 사과 한마디, 미뤄 둔 기도, 외면했던 이웃에게 건네는 안부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하루 5분만 조용히 하나님 앞에 앉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여러 번 부르셨는데도 돌아앉기만 했던 저를 고백합니다. 흔들림 속에서도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소서. 예배의 모양에 머물지 않고 마음까지 주님께 돌이키는 용기를 주옵소서. 오늘 주님의 음성에 "네" 하고 일어서게 하여 주소서. 우리 공동체가 서로를 돌아보며 함께 주님께 돌아오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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