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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소중한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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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다이어리에 묵상을 작성해보세요!
05:21
오현
*상아궁에 내려앉은 밤* 1. 성벽 밖에서 온 증인 하나님은 아스돗의 궁궐들과 이집트 땅의 궁궐들을 사마리아 산 위로 초대하십니다. 이방의 대표 격인 블레셋과 이집트에게 ‘와서 보라’고 외치시는 이 장면은 성경 전체에서도 손꼽히게 역설적인 연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타락하고 잔혹하다고 여겨지던 이방 세력이 도리어 거룩한 언약 백성의 불의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증인으로 소환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민족보다 의롭다는 익숙한 구도를 뒤집는 장면입니다. 2. 무너진 집의 풍경 10절은 사마리아 귀족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른다”고 선언합니다. 불의가 일상화되어 무엇이 공의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바른 길을 밀어내고 불의를 저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궁궐 안에 채워 넣은 것은 부와 권력이 아니라 ‘포학과 겁탈’ 그 자체였습니다. 3. 무너진 예배 더 나아가 14절에서 하나님은 벧엘의 제단들을 벌하시며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겠다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제단 뿔은 죄인이 붙잡고 자비를 구하는 최후의 도피처이자 속죄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불의로 쌓아 올린 삶을 방패막이 삼으려는 종교적 알리바이는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삶이 동반되지 않는 종교적 의식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먼저 잘려 나갈 허상에 불과합니다. 4. 귀 한 조각의 구원 사자가 양을 물고 가면 목자는 다리 두 개나 귀 한 조각만 건져 냅니다. 이 이미지는 심판 속에 남을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립니다. 목자가 사자의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 같다는 12절의 비유는 흔히 ‘남은 자의 구원’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본래 의미는 훨씬 냉혹합니다. 고대 근동의 법률에 따르면 목자는 맹수에게 찢긴 양의 남은 신체 일부를 주인에게 증거물로 제출해야 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즉 여기서 건져낸 두 다리는 회복의 약속이라기보다 완전한 파멸의 확인서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흔적조차 목자가 찾아낸 증거라는 점에서, 심판의 장면에는 하나님의 진노뿐 아니라 남은 자를 향한 시선도 담겨 있습니다. 4. 제단의 뿔이 잘릴 때 벧엘의 제단은 죄를 씻는 표지가 아니라, 죄를 가리는 종교의 장식이 되었습니다. 제단 뿔이 잘린다는 것은 예배의 중심이 무너지는 일인 동시에, 그곳에 기대어 심판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예배가 삶의 폭력을 덮는 순간, 예배의 자리도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5. 겨울집과 여름집 상아로 꾸민 집과 계절마다 바꾸어 머무는 화려한 집이 무너집니다. 본문은 궁전들의 화려함 보다 이 궁전들이 폭력과 약탈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겨눕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집의 아름다움보다 그 집을 세운 삶의 방식이 먼저 드러나게 됩니다.
05:18
오철
아모스 3:9-15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과 단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스돗과 애굽의 궁궐에 사는 자들을 사마리아 산에 불러 모아 그곳의 큰 혼란과 학대를 보라고 하십니다(9절). 하나님의 백성이 저지른 죄가 이방 사람들의 눈에도 드러날 만큼 심각했다는 뜻입니다. 10절은 그들이 바르게 행할 줄을 알지 못하고, 궁궐에는 포악과 탈취로 얻은 것들을 쌓아 두었다고 말씀합니다. 제사는 드렸지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감각은 무뎌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안락함을 지키는 데 익숙해진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이 의지하던 제단과 사치스러운 집들을 향합니다. 물질적인 풍요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누리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자신의 만족만을 추구할 때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절제가 있는 것도 이러한 삶의 방향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넉넉함을 허락하셨다면 그것을 나만을 위해 쌓아 두기보다 부족한 이웃을 위해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청지기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물론 선한 일을 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선한 마음을 주시고,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게 하신다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그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신다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매주 예배드리는 것으로 나는 괜찮다고 안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편안함을 당연하게 여기며 곁에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에는 무뎌져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 제단 앞에서만 경건한 사람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바르게 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가 쌓아 둔 것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것을 이웃에게 기꺼이 흘려보내는 청지기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05:08
차동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폭력과 착취로 재물을 쌓았습니다. 신앙은 삶 속에서 정의와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겉모습보다 삶의 공의를 보십니다. 이스라엘은 경제적·군사적으로 안정된 시기였지만, 하나님은 원수가 그들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 재산, 권력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심판은 엄중하지만, 구원의 역사를 이어갈 자는 남깁니다. 벧엘의 제단은 북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였지만, 하나님은 그 제단의 뿔까지 꺾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예배당에 다니고 종교 활동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오늘도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여 주시사 숨어 들어오는 사탄, 마귀를 물리쳐 주시고 오고 가는 소식과 만남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4:39
박상형
나이트클럽 사장의 믿음이 더 좋다(아모스3장9-15) 1. 현대 종교와 믿음의 역설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는 "믿음"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을까? 거룩함을 표방하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정작 세속적 이기주의와 집단적 포악함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는 현상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아모스 3장 9-15절은 이러한 신앙의 모순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하나님께서는 수도 사마리아 궁궐에서 온갖 포학을 저지른 북이스라엘의 왕과 위정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신다.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부정한 이방 나라들을 증인으로 초청하여 선민의 죄악을 직접 목격하고 증언하게 하신 것이다. 선민의 윤리적 부패가 부정한 이방의 잣대보다 못해진 이 슬픈 역설은 오늘날 교회가 처한 현실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아모스서의 경고를 우리가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2. 부정한 이방인이 증언하는 선민의 죄악 3장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의 예언을 듣던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명령하신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부정한 땅인 아스돗과 이집트의 요새들로 찾아가, 그 이방 백성들을 선민의 수도인 사마리아로 직접 초청해 오라는 파격적인 지시였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과 위정자들이 저지른 포악한 죄악의 현장을 이방인들에게 직접 보여주어야 했던 치욕스러운 상황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선민의 윤리적 부패와 포악함이, 하나님을 모르는 부정한 이방 백성이 보기에도 참혹하고 충격적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고발하는 대목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도덕적 모범이 되기는커녕, 부정한 이방인의 지탄과 사법적 증언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공동체가 맞이할 치명적인 수치와 역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3. "나이트클럽 사장"의 예화로 본 가짜 믿음과 진짜 믿음 오늘날 교회가 세상 속에서 드러내는 신앙의 허구성을 재치 있게 꼬집는 유명한 법정 예화가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던 교회와 나이트클럽이 있었다. 교회 성도들은 눈앞의 나이트클럽이 보기 싫어 불이 나서 망하게 해달라고 집요하게 기도했고, 어느 날 실제로 그 나이트클럽에 불이 났다. 분노한 나이트클럽 사장은 불이 나도록 기도한 교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막상 고소를 당한 교회 측은 "기도한다고 정말 불이 나겠느냐"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 황당한 재판을 담당한 판사는 다음과 같은 명판결을 내렸다. "나이트 클럽 사장 믿음 있음, 교회 믿음 없음" 이 예화는 세상을 향한 사랑과 책임은 잊은 채 형식적 종교 행위만 남은 현대 교회의 씁쓸한 단면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기에 앞서 "사랑"을 먼저 실천하고 보여주어야 함에도, 오히려 불신자보다 못한 가짜 믿음으로 세상의 지적과 질타를 받는 모습은 과거 북이스라엘의 모순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4. "500억 알박기"와 맘몬주의, 그리고 다가오는 엄중한 심판 최근 한 교회가 국가의 정비 사업에 협조하지 않고 이른바 "알박기"를 통해 500억 원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고 성도들 앞에서 자랑하다가, 결국 정부의 정비 사업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이 사건은 교회의 포학함과 맘몬주의(돈을 숭배하는 태도)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랑을 실천해야 할 신앙 공동체가 세상의 공공 사업을 방해하고 탐욕을 자랑하다가 결국 사업에서 배제된 현실적 결과는 결코 단순한 재정적 해프닝이 아니다. 이는 신앙의 본질을 비껴간 맘몬주의적 타락에 대해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내리시는 공의로운 심판의 조짐이자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은 잃어버린 채 집단적 이기심과 돈만 밝히는 태도는 과거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불렀듯, 오늘날의 교회에도 동일한 파국을 초래할 것이다. 교회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타락한 탐욕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십자가의 본질을 바로 세우는 절박한 결단이 필요하다.
00:33
유홍열
진짜 겨울인가봅니다 주일 아침은 진짜 바쁜데.. 그래도 주시는 말씀이 무거워 옷깃을 여미면서도.. 오늘 예배로 회복 하여야지 하는생각에 심판의 말씀속에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세상 너무 잘살아도 안되고 믿음있어 잘살면 검소와 겸손은 달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요. 참 저들이 얼마나.. 풍요로웠으면,? 잊을건 잊어야하는데,.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은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 10 ] 주님, 평생을 정직하게 살아왔노라 자부하던 내 영혼의 깊은 바닥이 오늘 말씀의 빛 앞에 창피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남에게 돋보이려 지어 올린 삶의 궁궐과 편안함만을 좇았던 내 이기적인 비단 방석. 그 아래 가려져 있던 타인의 아픔에 대한 무관심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포학이요 겁탈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너무 오랜 세월 세상이 주는 안락함에 길들여져 무엇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직한 일인지 분별하는 영적 감각조차 마비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스쳐 지나가는 노년의 계절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쌓으며 살아왔던 것일까요? 하나님이 오죽 답답하셨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의 원수들을 불러다 사마리아 산 위에 세우시고 너희가 와서 보라 하셨을까요? [ 9 ] 자식이,.,. 너무나 망나니짓을 하고 양심을 완전히 버리니, 부모가 지나가는 이웃을 불러다 자식의 치부를 드러내며 가슴을 치는 그 비참한 심정. 너희가 봐라.? 내가 이 자식을 치는 것이 과연 너무한 일이냐? 이방인조차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일 만큼 무너져 버린 내 영적 부패를 보며.,., 아버지 하나님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셨을까 생각하니., 참.. 가슴이 먹먹하여집니다 사자 입에서 목자가 겨우 건져낸 양의 뜯긴 다리 뼈 두 조각과 너덜거리는 귀 조각 하나. 그것은,.,. 구원의 표징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는 참혹한 증거였습니다. 너희가 의지하던 그 푸른 비단 방석에서 너희는 겨우 그 찢겨 나간 귀 조각 하나 건져낼 뿐이다. [12 ] 내가 목숨처럼 아끼던 경험과 재물, 노후의 안식처, 그리고 나 장로이니까? 교회 오랫동안 다녔으니까? 괜찮겠지하며 ,.. 은혜를 값싼 면죄부로 삼았던 내 위선적인 직분의 껍데기가 오늘 비수처럼 찔려 옵니다. 인생의 겨울 궁과 여름 궁을 따로 지으며 어떤 시련도 내 힘으로 피할 수 있다고 믿었던 지독한 자만심을 깨뜨리십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화려한 상아 집을 허무시고 제단의 뿔을 꺾으시는 것은 나를 망하게 하려 하심이 아닙니다. 매를 치시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자식을 바라 보시는 그 아비의,. 아픈 눈시울처럼, 거짓된 안일함을 치우고 진짜 회개의 눈물로 당신의 품에 돌이키게 하시려는 우리를 향한 지독한 사랑 때문입니다. 바다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십자가의 그 뜨거운 은혜가 오늘 내 돌 같은 양심을 깨우고 가슴을 찌릅니다. 이제 안락했던 비단 방석에서 털고 일어나겠습니다. 내 이익만을 챙기던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길, 정직과 긍휼의 길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겠습니다. 오늘 내 주변의 소외되고 눈물짓는 이웃들을 위해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내밀며 삶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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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호
주일 아침, 두툼한 외투를 꺼내 입고 예배당으로 향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우리는 저마다 따뜻한 곳을 찾습니다. 난방을 점검하고 이불을 꺼내며 올겨울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내가 의지하는 이 따뜻함과 든든함이 정말 나를 지켜 줄 수 있을까요? 아모스 3장 후반부는 바로 그 질문 앞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하나님은 이웃 나라의 궁궐을 향해 사마리아 산에 모여 그 안의 큰 소란과 학대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9절). "그들은 바른 일 행할 줄을 알지 못하며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라" (10절). 쌓았다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한 번의 잘못이 아니라, 편안함 속에서 불의가 차곡차곡 쌓였다는 뜻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헤아려 보면, 그들도 처음부터 악하려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진 것이 늘어날수록 지켜야 할 것도 늘어나고, 지키려다 보니 이웃의 아픔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견고해 보이던 것들이 무너진다고 말합니다. 원수가 그 땅을 에워싸고 힘을 꺾으며 궁궐을 약탈하리라 하십니다(11절). 이어지는 말씀은 더욱 무겁습니다. "목자가 사자의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귓조각을 건져냄과 같이"(12절). 사자에게 삼켜진 양에서 겨우 남는 것이 두 다리와 귓조각이라는 그림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남는 것이 그만큼 적을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로 묵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침상 모서리와 비단 방석의 안락함, 겨울 집과 여름 집, 상아로 꾸민 집도 끝이 있다고 하십니다(15절). 벧엘 제단의 뿔마저 꺾여 땅에 떨어진다고 하십니다 (14절). 그렇다면 오래 믿어 온 것들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집과 재산도, 오랜 종교의 형식도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든든한 울타리로 삼고 있는가. 넉넉한 살림이든, 오래된 신앙의 이력이든, 그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쥐고 계신 분의 손이 나를 지키십니다. 쌓아 올린 것의 두께가 안전을 만들지는 않지만, 누구의 손 안에 있는지가 평안을 만듭니다. 오늘 예배 시간에는 내가 가장 의지해 온 것 한 가지를 조용히 하나님 앞에 올려 드려 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 겨울, 형편에 맞는 만큼 이웃의 안부를 먼저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따뜻한 전화 한 통도 충분히 귀한 나눔입니다. 주님, 제가 의지해 온 것들이 주님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여 주소서. 편안함에 익숙해져 이웃의 아픔을 놓치는 마음을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흔들리는 날에도 주님의 손 안에서 평안하게 하여 주소서. 오늘 한 사람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작은 걸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공동체가 서로의 겨울을 함께 건너는 따뜻한 울타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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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1 | 오현 | 상아궁에 내려앉은 밤 | pc |
| 05:18 | 오철 | 아모스 3:9 | mobile |
| 05:08 | 차동길 | 하나님께 선택 받은 자일수록 심판은 엄중하다. | pc |
| 04:39 | 박상형 | 나이트클럽 사장의 믿음이 더 좋다 | pc |
| 00:33 | 유홍열 | 호사스런 비단방석속에.. 아비의 눈물을 봅니다 | pc |
| 00:00 | 임현호 | 주일 아침, 두툼한 외투를 | mobil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