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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의 소중한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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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다이어리에 묵상을 작성해보세요!
11:21
유덕선
2026년 11월 3일 화요일 <부르짖음으로 경고하시는 하나님> 아모스 1장 1절-8절 <감사> 1. 11월 영적으로 깰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십자가 앞에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묵상> 2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아모스로 말미암아 외치는 하나님의 위협은 사자가 울부짖음으로 말미암아 목자와 양 떼들이 두려워하는 것만큼 두려웠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말려 버리는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이 생각만으로도 두렵고 떨립습니다. 반복적으로 습관처럼 저지르는 죄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며 회개합니다. 기회를 주실 때 잘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실 때 죄에서 돌이키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한 자녀답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의 자녀 됨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적용> 주님 안에서 바로 기도하고 바로 회개하는 하루 되겠습니다. <기도> 제가 자주 삶의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문득문득 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0:41
PARK MEAE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가 선포한 심판. 하나님은 주변 이방 나라인 다메섹(잔인한 학대 죄)과 블레셋(인신매매 죄)의 거듭된 죄악(서너 가지 죄)에 대해 반드시 불의 심판을 내리실 것임을 선언
09:53
박기병
징계 받지 않도록 죄를 빨리 회계하며 살아야 겠다.
09:26
박영찬
아람(다메섹)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괴롭혔고 가사와 아스돗은 전쟁 포로들을 노예시장에 파는 잔혹함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이미 경고하셨고 이제 아모스를 불러 다메섹과 가사와 아스돗에 임할 벌에 대해 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더디하시고 참으시지만 그 진노하심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를 돌아보며 알고도 지은 죄 모르고도 지은죄에 대하여 자복하고 회개하며 죄에 대하여 멀어지도록 저의 몸과 마음을 지키주시길 원합니다. 저의 마음은 그렇더라도 세상의 즐거움과 유혹으로 흔들리며 가치관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악한 자가 잘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내려놓아야 할 마음이 많은 것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자꾸 저의 생각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며 사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08:31
박도형
[시작기도] 주님의 심판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죄악에서 돌이키는 삶 살게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말씀] 아모스를 부르심 1:1~2 1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해 이상으로 받은 말씀입니다. 그때 유다 왕은 웃시야였고 이스라엘 왕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었으며 지진이 있기 2년 전입니다. 2 아모스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크게 소리치시고 예루살렘에서 그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풀밭이 시들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를 것이다.” 다메섹과 가사에 임하는 벌 1:3~8 3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메섹이 지은 서너 가지 죄 때문에 내가 그들을 처벌하는 일을 돌이키지 않겠다.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제했기 때문이다. 4 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서 벤하닷의 성채들을 불사르겠다. 5 내가 다메섹 성문 빗장을 부수고 아웬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을 없애고 벧에덴에서 규를 잡고 있는 왕을 없애겠다. 아람 사람은 사로잡혀 길로 끌려갈 것이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다. 6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사의 서너 가지 죄 때문에 내가 그들을 처벌하는 것을 돌이키지 않겠다. 그들이 사로잡은 사람을 끌어다가 모두 에돔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7 내가 가사의 성에 불을 보내 성채들을 불사르겠다. 8 내가 또 아스돗에 사는 사람들을 없애 버리고 아스글론에서 규를 잡고 있는 왕을 없애 버리겠다. 내가 또 손을 돌려 에그론을 쳐 블레셋의 남은 사람들을 없애 버리겠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묵상] 주님의 엄중한 심판의 예고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훈육하듯이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말씀에 합당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엄중한 경고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속히 돌이키는 삶 살게 하소서.
08:15
김경애
● 암 1:1~8 <내가 가사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하나님 심판은 바로 내려질 수 있다. 하지만 기다리신다. 왜? 예수님이 그리 하신다. 아무리 사탄이 온갖 수를 써서 우리 죄를 낱낱이 참소하더라도 예수님이 "그래서"... 더 말이 필요없다. 부끄럽고 낯을 들기 어렵지만 예수님이 사탄의 말을 못하게 하신다. 그렇다. 말도 표현할 수 없는 은혜가 넘친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 때문에 하루 더 살아본다. 나와 함께 하시는 충만한 은혜를 알기에~ 하나님. 예수님의 은혜로 자녀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누리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08:15
김정남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불러서 당시 북이스라엘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게 하신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의 모습은 북이스라엘이 가장 왕성하게 번창하던 시기였다. 남유다도 웃시야 왕이 통치하던 시대로 블레셋을 제압하고 암몬으로부터는 조공을 받으며 애굽 변방까지 이름을 떨치는 강성함을 보였다.( 이렇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강성하여 나라가 부강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는 모습을 가지게 된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는 말할 것도 없고 웃시야는 나라가 강성해지자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까지 간섭하다가 나병을 얻고 죽음에 이르는 모습이 되기도 했다. 또한 북이스라엘은 아모스 선지자가 심판을 선포한 후 2년 되에 회개하지 않아서 큰 지진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당하는 일도 일어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을 세우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멀리하게 됨으로써 더 악한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가지게 된다. 인생에게 있어 부요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나타나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 부요함의 근원인 하나님에 대한 망각은 부요함 자체가 죄악의 고리가 되어 사람을 부패하고 넘어지게 한다. 그래서 부요함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부요함은 하나님을 망각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기에 매우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는 고도의 문화사회가 되어 많은 부요함을 누리고 생활의 편의를 누리면서 하나님에 대한 망각의 사회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하는 사회가 되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물질에 기초하여 평가하고 구분하며 분류하는 모습은 일반화되어버렸음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이 교회에서 나타나면서 교회가 하나님을 버리고 물질을 택했다는 말들도 회자된다. 과거 한 영화에서 교회가 미국에서는 기업이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면 오늘날 한국의 교회가 얼마나 물질 중심의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지를 보게 된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타락의 상황을 바라보던 하나님은 목자로 살아가고 있던 아모스를 불러서 북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나라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게 하신다. 북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타락하게 만든, 그리고 고통을 가했던 민족들을 하나씩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아람과 블레셋과 두로, 에돔, 암몬, 모압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시고 이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까지 심판을 선포하신다. 북이스라엘 입장에서 아모스가 아람을 시작으로 유다까지 갔을 때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내심 기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선포되었을 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죄와 허물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이 되었다는 것은 심판의 결과로 증명되었다. 다른 이들의 심판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결국 심판에 이르게 만든다. 그런 관점에서 당시 수많은 제사장이 있었고 지도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자였던 아모스가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심판의 이유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진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요한 환경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을 망각하게 한다. 그래서 진정한 신앙은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상황과 환경에 대한 중립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땅의 것에서 눈을 들어 하늘의 진리를 보고 깨닫는 과정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사람이 타락하는 이유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순종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은 다른 곳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찾으시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에 대한 선포와 함께 여인이 메시야를 언급하고 그 결론은 사마리아 여인이 교제하고 있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 깨닫는 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오늘도 성령으로 예배하는 자, 그리스도를 통해 진리를 깨닫는 자의 모습이 복음을 통해 주님 앞에 나아가는 성도에게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된다. 이 고백이 오늘을 사는 나의 삶에, 그리고 지체들의 삶에 동일하게 나타나고 상황과 환경이 아닌 영과 진리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으로 설 수 있기
08:13
이광순
261103 - 한 줄 큐티 아모스 1:1-8 ‘여호와께서 부르짖으시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마르리로다… 마르고 마르리로다… 고통이 밀려 오는 시간이다. 더 이상 기쁨을 얻기 힘든 시간이 다가온다. 평안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었는지… 우리가 어떤 악을 행했었는지를… 감사한 것은,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죄값을 치를 시간이지만 돌이킬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부르짖으시는 이유도, 우리가 고통을 받게되는 이유도, 돌이키라는 그분의 사랑 메세지다.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은혜요 축복이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절망이고, 기회가 없다는 것이 영원한 죽음이다. 돌아갈 수 있다는 것, 회복할 수 있다는 것, 그분의 품에 다시 안길 수 있다는 것, 아버지의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고 은혜이다. 여호와께서 부르짖을 때, 나는 나의 잘못을 시인하고, 그분의 집을 향해 내 발걸음을 돌이킬 것입나다. 고통이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아버지의 집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심장이 멎을 듯한,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이 밀려 올 때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볼 것입니다. 내 손을 붙잡으시고 이끄시는 아버지를 따라갈 것입니다. 아멘 아멘
07:51
윤동호
하나님은 죄를 자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다면 죄를 품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한 나라를 넘어 한 개인 에게 까지 광범위하게 적용이 됩니다. 한 나라와 한 민족과 한 개인의 흥망성쇠 와 역사의 심판은 하나님의 주재하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가나 이방 민족과 그들의 죄를 용납 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으로 더불어 그죄에 빠지게 한 모든 주변국가들 또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 될 수 없었습니다. 한개인 으로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죄에 대해서 민감이 반응 하며 회개하며 죄를 짓고 깨달을 때마다 회개하고 주님께 다시 돌아와 죄에서 점점 멀어진 거룩하고 경건한 삶으로 나아가게 되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07:44
박해동
지난 주일은 왠종일 비가 내렸는데 어제 월요일 아침 날씨가 화창해져서 이내 밭으로 나가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에 시간이 부족하여 다 캐지 못하고 남겨진 고구마를 캐냈다. 땅을 깊이 파고 흙을 부드럽게 해준 이 두둑에서는 굵은 고구마가 제법 나왔는데 땅을 깊이 파지 못하고 대강 두둑 을 만둔 곳에서는 굵은 고구마가 거의 나오지 않았고 잔챙이들만 많이 나오기에 중간에 그만 포기했는데 지난봄에 두 번째로 고구마를 심을 때 제대로 파고 두둑을 만들어주지 않고 적당히 심은 것이 생각났다. 이런 허드렛 농사 일을 해보면서도 깨닫는 것이 있으니 신앙생활에서도 열매를 굵게 그리고 많이 맺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주초를 깊이 파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눅6:43) 열매를 맺는 식물의 토양을 깊고 부드럽게 만들어주듯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의 밭을 정직함과 은혜로 부드럽게 해주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교훈을 마음에 새겼다 오늘 11월 3일 빌레몬에서 아모스 묵상으로 들어왔는데 아모스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기대하며 첫 장을 편다. 아모스의 첫장 첫 단락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산중의 왕 호랑이가 포효하며 부르짖을 때 산중의 모든 동물들이 숨죽이며 납작 엎드려지듯이 지금 온 열방과 민족들이 시온에서 포효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앞에서 납작 엎드려서 이 심판 경고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심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함부로 대우하는 나라들을 겨낭하고 있으며 이것을 오늘 우리 시대로 가져온다면 하나님의 나라요 백성이 된 교회들을 함부로 상대하는 세상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것으로 적용하게 된다. -----[아모스 말씀의 역사적 배경]----- 이스라엘이 남북 왕조로 나뉘어진 후 특별히 북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의 길로 나갈 때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며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걸출한 선지자들을 보내어 계속해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지만 받아드리지 않자 왕조가 자주 바뀌는 정치적 불안정성 가운데 두시고 또 주변 국가들이 그들의 가시가 되게 하심으로 그들의 곤고가 심하게 되었다 [왕하 14:26] 그러나 여로보암 II세 때 이르러 주변 열강들의 각축으로 그들이 힘을 못쓰는 틈새를 이용해 북이스라엘이 다시 한번 흥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왕하 14:26-27) 이는 요나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처럼 [왕하 14:25] 제13대 왕 여로보암 II세의 손을 빌려 구원하시며 일시적 번영을 허락하셨고 이 번영의 기간에 이스라엘이 더욱 타락하자 호세아 선지자와 남왕국 드고아 출신 아모스를 보내 백성들을 깨우치신다 아모스는 본래 남 유다 사람으로 선지자도 아니고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며 양을 치면서 뽕나무(돌감람나무)를 재배하는 평민이었는데 [암7:14]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상을 보이시고 그를 북이스라엘로 보내시며 말씀을 대언하게 하신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기 전에 먼저 주변 국가 아람(수도: 다메섹)으로 부터 시작하여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블레셋과 두로로 이어지고 암몬과 모압에 이어 마침내 이스라엘과 유다를 겨냥하여 심판의 말씀으로 경고하시는데 오늘의 말씀은 주변 국가 아람(다메섹)과 블레셋에 대한 그 죄상이 무엇이며 어떻게 벌할 것인지 심판의 말씀이다. 1. 아람의 죄상: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북이스라엘 길르앗을 압박함 아람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괴롭힐 것에 대해서는 이미 선지자 엘리사 시대에 예고되었다. 엘리사가 다메섹을 방문하였을 때 당시 아람 왕 벤하닷이 병들어 있던 차에 부하 하사엘을 보내 병 낫기를 구하였는데 그때 엘리사는 자신을 찾아온 하사엘이 장차 아람의 왕이 될 것이며 이 사람 하사엘과 그 왕조가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을 내다보고 눈물을 흘렸는데 (왕하 8:7-15) 엘리사의 예언대로 하사엘은 왕이 된 후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되며 특히 아람에서 가까운 길르앗 사람들이 많은 해를 입었다. 이 아람의 죄악상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전쟁 포로들을 타작하듯 때리고 채찍질하며 가혹하게 취급한 인권 유린의 죄를 지적하심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람이 이스라엘에게 가혹하게 행함같이 그들 역시 전쟁에 패하여 다메셋의 빗장이 꺾어지며 그들 역시 포로로 잡혀갈 날이 있음을 경고하신다(1:5)
07:39
한수혁
* 오늘부 <생명의 삶> 묵상 본문은 아모스서다. 아모스 선지자는 남유다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다. * 아모스는 목자였으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정의와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여로보암 2세가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주전 760~750년 무렵이다. * 아모스는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전했다. 다메섹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제하는 등 서너 가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처벌받게 될 것이다. 성은 불타고 왕도 없어지고 사람들은 끌려갈 것이다. * 여호와께서는 또 가사의 서너 가지 죄 때문에 그들을 처벌하는 것을 돌이키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들이 사로잡은 사람들을 끌어다가 에돔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가사의 성은 불타고 왕도 없어지고 블레셋의 남은 사람들도 없어질 것이다.
07:36
서재학
"만연해진 죄와 외침" 본문 속 북이스라엘은 번영하고 번성하여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하지만 이에 비해 영적 상태는 형편 없었나보다. 우상숭배와 잘못된 가치관 등으로 죄가 만연해졌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있던 아모스 선지자를 북이스라엘로까지 보내며 외치게 하신다. 이런 사건이 우리에게도 있는지 되돌아보자. 요즘 우리도 북이스라엘처럼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처럼 복음화율이 낮아지고 있고, 세상의 가치관은 더이상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입시 지옥에 내던져져, 생각할 힘을 잃게 됐다. 하나님 나라를 꿈꿀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이에 우리는 경각심을 갖고 아모스 선지자가 외쳤던 것처럼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만연해진 죄엔 반드시 외침이 있을 것이다. 이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다음세대가 되길 소망한다. 지난주 어린이 제자훈련에 대한 설명회에 다녀왔다. 우리 아이들에게 다른 교육을 계획하기에 앞서 제대로 된 신앙교육과 교회 공동체를 가르치길 다짐한다. 말씀 위에 바로선 아이들은 결국 이 시대를 향한 외침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07:21
고하람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다 다메섹은 공격할만한 힘을 가지고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힘을 본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보신다. 사람들이 어떻게 짖밟혔는가를 보셨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된다. 삶의 터전을 빼앗고 노예로 팔고 그런 악행들을 심판하셨다. 이스라엘 원수였기에 심판 하신것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이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셨기 때문에 심판하셨다. 하나님은 결과가아닌 과정을 주목하신다. 나의 목적을위해 다른사람들을 덜 챙기지는 않았는가? 내 이익을 위해 죄악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아모스가 받은 말씀은 북이스라엘에 관한 말이었다. 이스라엘의 원수를 갚아주려는 것 처럼 볼수있다. 하지만 이후 이스라엘 원수 다메섹 뿐만아니라 이스라엘도 심판하였다. 우리는 너무나 쉽개 다른사람을 판단한다. 다메섹과 가사의 심판에 ‘그래 너네는 심판을 받아야해’ 라는판단을 하게한다. 남의 실수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있으나 내잘못된 선택은 ‘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사람이 잘못해서 그런거야’ 라고 말하게 된다. 심판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하나님말씀앞에 우리는 우리삶을 비춰볼줄 알아야한다. 내 가치관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줄 알아야한다. 내가 주변에 견디기 힘든 사람들 그들의 탓을하며 내가 더 못되게 굴고있지는 않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내가 더 베풀어야한다. 그들에게 나쁜 마음을 가지고 질책하고 차갑게 구는것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게 그리스도인인가..? 내가 하기힘들다면 하나님께 구하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라
07:01
김영득
생명의삶QT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암1:2) 풍요로움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오니 항상 감사하고 주안에서 나눔과 성도들과 연합하고 복음으로 나가야 함은 우리의 소명이다. 하나님이 부르짖음을 모르고 살면 그 풍요가 우상이된다. 주님이 얼마나 애타는 마음으로 경고를 하는지를 깨달아야한다. 내 자아가 살아나면 주님의 말씀을 외면 한다. 주님 나를 내려놓는 매일 아침 묵상이 오늘 하루를 주님께 거룩하게 하소서. 아멘
06:32
오철
아모스 1:1?8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 편에 서서 살아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의 풍요로움과 성공만을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정의와 회복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내가 가진 것이 있다면 나누며,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입니다. 때로는 약한 자들을 약탈하고 억압하는 불의 앞에서 두려워하며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불의에 맞서고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는 삶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열방의 잔혹함과 악을 고발하시며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세상의 악이 그저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공의로운 심판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으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 백성인지를 드러내야 합니다. 주님, 풍요로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잊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저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제 자신을 부인하고 낮아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06:25
하수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마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죄의 크고 작음이 있을까? 죄의 갯수가 많으면 하나님이 응징하시고 작으면 봐주시는 그런 기준이 있을까? 없다. 하나님은 신이고 그걸 인간인 우리가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의 죄는 어떨까? 하나님 이정도는 봐주시겠지? 나를 이해해주시겠지? 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근데 하나님이 그마저도 회개하라고 하시는거같다.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쓰는게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과연 나는 한치의 거짓도 없었을까. 모든걸 아시는 주님이시다. 그냥 낱낱이 나의 죄를 다 고하고 그냥 하나님앞에 벌거숭이로 나아가자. 그냥 털어놓자.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나 너무 쓰레기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자. 세속적인 나의 모습도 , 계산적인 모습도, 이기적인 모습도 그냥 하나님앞에 선포하자. 어떻게 해야 하나님앞에 더 합당한 자녀로 살수 있는지 계속 묻자. 거룩하게 살기를 소망한다고 말하자. 하나님 길을 알려주시겠지.
05:52
장상인
Amos/阿摩司?/アモス書/아모스1:1-2(1-8) The words of Amos, one of the shepherds of Tekoa?the vision he saw concerning Israel two years before the earthquake, when Uzziah was king of Judah and Jeroboam son of Jehoash was king of Israel.?He said:“ The Lord roars from Zion?and thunders from Jerusalem; the pastures of the shepherds dry up,?and the top of Carmel withers.” ?是?大王?西雅在位??阿施的?子以色列王耶?波安在位的?候,大地震前二年,?提哥??的牧人阿摩司所?的?他的??到以色列。他?:“耶和?必??安吼叫,?耶路撒冷出?;牧人的草?哀?,迦密的山?枯干。” テコアの牧者のひとりであったアモスのことば。これはユダの王ウジヤの時代、イスラエルの王、ヨアシュの子ヤロブアムの時代、地震の二年前に、イスラエルについて彼が見たものである。彼は言った。「主はシオンから叫び、エルサレムから?を出される。羊飼いの牧場はかわき、カルメルの頂は枯れる。」
05:35
오현
*위태로운 평온을 찢다* 아모스서는 구약의 선지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정의와 공의를 선포하는 책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당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1. 평온을 찢는 사자의 포효 아모스가 활동하던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의 시대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전례 없는 황금기였습니다. 사람들은 풍요 속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거짓된 평안을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화려한 무대 위로 목자이자 뽕나무를 돌보던 남유다의 촌부 아모스를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로 보내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겉보기에 완벽한 안정과 번영을 누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의 영적 무감각과 부패를 향해 날 선 경고의 포효를 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진실을 일깨워 줍니다. 2. 넘쳐버린 잔, 멈춰선 기다림 다메섹과 가사를 향한 심판의 선언에는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라는 공통된 수사법이 등장합니다. 서너 가지라는 표현은 죄의 횟수를 기계적으로 세는 것이 아닙니다. "셋"은 꽉 찬 숫자이며, "넷"은 그 임계점을 기어이 넘어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이 말씀의 이면에는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 참고 또 참으시며 인간이 돌이키기를 기다리신 하나님의 애끓는 인내가 숨어 있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급한 성정이 아니라,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하나님의 길고 긴 기다림을 마침내 소진시켰을 때 임합니다. 2. 이웃의 눈물에 응답하는 하늘 아모스의 예언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심판의 첫 타깃이 언약 백성이 아닌 이방 나라들(다메섹과 가사)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은 철 타작기로 길르앗을 긁듯 잔인하게 이웃을 짓밟았고, 가사는 사람들을 물건처럼 사로잡아 에돔에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이들의 종교적 불신앙을 먼저 묻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대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이웃에게 가한 폭력과 반인륜적 범죄를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울타리에 갇힌 부족 신이 아니라, 억울하게 짓밟힌 모든 생명의 눈물과 인권 유린에 응답하시는 온 땅의 통치자이심을 보여줍니다. 3. 영혼을 흔드는 거룩한 지진 아모스의 메시지는 지진이 일어나기 이 년 전에 선포되었습니다. 땅이 실제로 갈라지고 흔들리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영적 지진이 되어 시대의 심장을 강타한 것입니다. 이는 물리적인 지진이 오기 전, 말씀의 지진에 먼저 반응하는 자만이 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의지하는 안전장치와 성공의 담벽은 과연 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잣대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만큼 정결한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05:01
차동길
아모스 1장은 하나님께서 주변 열국들의 죄를 심판하신다는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이방 나라들까지도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힘없는 길르앗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한 다메섹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학대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지만,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가사는 사람들을 사로잡아, 에돔에 노예로 넘겼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상품 취급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나는 힘이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불의와 폭력에 무감각해져 있지는 않은가? 반복되는 죄를 합리화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고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 오늘도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여 주시사 숨어 들어오는 사탄, 마귀를 물리쳐 주시고 오고 가는 소식과 만남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4:38
박상형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일은 모두 당연하다(아모스1장1-8) 하나님께서는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등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이 지은 서너 가지 죄로 인해 그들에게 내릴 벌을 결코 돌이키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포하신다.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다"는 구절처럼, 이방 나라들을 향해 쏟아내시는 하나님의 불같은 분노와 엄중한 심판 의지 속에는 그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얼마나 잔혹하고 극심했는지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신앙인의 가슴을 짓누르는 뼈아픈 의문이 피어오른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신다면, 이 참혹한 침략과 고통의 세월을 겪기 전에 미리 막아주실 수는 없었을까? 하는 것이다. 아모스서의 매서운 경고는 바로 이 고통스러운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어떻게 하나의 완벽한 궤적으로 작동하는지 알려준다. 1. 공의와 사랑은 단 한 번도 갈라진 적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늘 기분 좋은 오해에 빠지곤 한다. 나를 향한 공의의 잣대는 한없이 낮추며 내가 지은 죄와 치러야 할 책임은 슬그머니 은폐하고, 당장 내 고통이 해결되고 구원받는 "사랑"의 크기만 온통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에서 공의와 사랑은 단 한 번도 따로 떨어진 적이 없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늘 동행하며, 서로가 서로를 증명하고 완성한다. 공의 속에 사랑이 있고 사랑 속에 공의가 있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가 겪는 삶의 정황 속에서 공의를 배제한 채 감상적인 사랑만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을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단 하나의 역동으로 단단하게 결합되어 움직이고 있다. 2. 미리 막아주지 않으신 이유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백성이 참혹한 고통에 신음할 때 이를 미리 막아주지 않으셨을까? 자식이 버릇이 나빠질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부모의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 고난을 헤쳐 나가며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교육적 의도였을까? 물론 어린아이처럼 언제까지나 모든 것을 대신 떠먹여 줄 수는 없기에 이는 일리 있는 설명일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의 현장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당사자에게 "너의 성장을 위해서"라는 말은 지나치게 차갑게 들린다. 자칫 하나님이 "사랑을 빙자해 고통을 방임하는 죄"를 지으시는 차디찬 방관자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아모스서가 말하는 진실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은 결코 고통을 방치하지 않으셨다.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백성들이 지은 죄에 대해 고난이라는 징벌을 허락하시지만,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이 겪는 고통의 과정 한가운데 깊이 개입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개입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완전히 망하지는 않게 지켜내시는 것"이다. 징벌의 용광로 속에서도 사멸하지 않고 보존되도록 한계를 설정하시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통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가장 역동적인 사랑의 개입이다. 3. 역사적·지리적 메타포: "목자의 초장"과 "갈멜산 꼭대기"의 숨은 의미 아모스 선지자는 본래 남 유다 시골 마을 출신의 평범한 목자였다. 그가 부름받았던 시대는 외형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부강과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여호와를 버리고 가나안의 우상 숭배를 서슴없이 들여왔으며,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압제가 일상화되어 돌이킬 수 없이 타락했던 때였다. 아모스는 이처럼 무너져 내린 북이스라엘(수도 사마리아, 종교 중심지 벧엘)과 남유다 전체를 향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대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타국들의 죄를 묻기 전, 먼저 "예루살렘의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산 꼭대기가 마를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이 메타포 속에는 세 가지 차원의 입체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1) 지리적 측면: "목자의 초장"은 이스라엘의 낮게 펼쳐진 평원과 목초 지대를 의미하며, "갈멜산"은 높고 울창한 산악 지대를 상징한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지형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땅의 모든 영역에 임할 것임을 보여준다. 2) 사회·직업적 측면: 평지의 "목자의 초장"이 목축업을 생계로 삼는 이들의 터전이라면, 높은 "갈멜산 꼭대기"는 산지에서 올리브나 포도를 재배하거나 울창한 삼림에서 각종 농산물을 생산하여 살아가는 농업 및 삼림업 종사자들의 터전이다. 즉, 어떤 직업과 신분을 가졌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나타낸다.
04:11
정기용
♤ 아모스가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해외에서 3일 째 묵상일기를 써본다. 본문 7장14절에 아모스는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아모스는 자발적으로 환상을 본 것도 아닌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북이스라엘은 경제적 군사적 번영하고 안정적이었으나 영적상태는 타락하였고 우상숭배가 만연했고 불의가 가득한 그들에게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고 공의와 정의를 위해 말해야 할 자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하셨다.(눅19:40) 주님, 오늘도 말씀 묵상으로 세미한 주의 음성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듣기를 원합니다.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고도보지 못하며 회개하지 않을 때 여호와 로 인해 무서운 심판이 시온에서 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 부터 소리를 내시겠다 하십니다. 먼저 믿는 우리들의 죄와 책임을 먼저 묻겠다 하십니다. 먼저 깨닫고 믿는 저희들이 돌이 말하고 나귀가 말하기 전에 세상을 향해 외치기를 원합니다. 은밀히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며, 때가 차면 심판의 주로 오실 그분을 기다리며, 성결과 거룩으로 참된 예배자로 죽어가는 세상과 영혼들을 향해 날마다 외치는 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03:13
유홍열
비 온 뒤 기온이급격히 떨어져 이번 주는 영하로 내려간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서늘한 가을의 막바지에서 마음 깊이 다가오는 아모스의 정갈한 포효와 말씀은, 오늘날 전쟁도 잊은 채 평화와 자유 속에 방황하는 이 시대의 전 세대를 향해 경종을 울립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평범한 목자였던 아모스를 찾으셔서, 제발 참고 살고 바르게 살라고 호소하십니다. 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신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 주인을 까맣게 잊은 채 깊은 영적 무감각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차가운 불신 사람이 사람을 소중한 생명으로 보지 않는 인간 이하의 무자비함,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 끝없는 분노를 다듬어 품으며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는 비참한 모습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사건과 사고들이 넘쳐나고, 나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 속에 잔혹한 일들이 펼쳐집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참된 사랑이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여전히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2800년 전 다메섹과 가사 그리고 에돔이 걸었던 그 길을 오늘 현대 사회가 똑같이 걸어가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도록 서럽게 다가옵니다. 아모스의 묵상을 깊이 우려 낼수록 내 영혼을 찌르는 진짜 아픔이 느껴집니다. 주님.. 이 시대의 완악함을 긍휼히 여기소서 당신의 자비로운 손길로 십자가의 긍휼을 얻게하소서 남들의 악함과 세상의 타락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혀를 차던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떠했는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매너 좋고 친절한 사람이라 평가받으면서도 정작 내 곁에 계신 주님을 향해서는 그리고 나를 가장 믿고 의지하는 가장 가까운 지체와 가족을 향해서는 얼마나 야박하고 차가웠던가? 내 뜻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이익과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그 인격을 짓밟았던 자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사람을 사랑의 목적으로 보지 않고 나의 편의를 위한 수단으로 여겼던 그 지독한 이기심.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토록 아파하시며 사자처럼 부르짖으 시던 무자비함의 본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심판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닌, 사랑하는 백성을 향한.. 애타는 눈물의 부르짖음입니다. 더 늦기 전에 네 손의 철 타작기를 버리고 나의 긍휼을 회복하라 는 애통한 초대의 종소리입니다. 나의 힘과 의로움으로는 이 서늘한 공의의 저울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받아야 할 그 무서운 심판의 불을 십자가에서 온몸으로 대신 받아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눈물로 붙듭니다. 이제 내 안에 곪아있는 분노와 교만, 이기심을 주님의 십자가 밑에 완전히 내려놓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내 입술의 가시를 거두고, 상처 입은 지체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며,. 주님의 긍휼을 조용히 실천하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00:29
양선일
(하트)오늘하루도 하나님과 함께 말씀묵상(하트) 2026년11월3일 화요일 1842일차 ●묵상본문[아모스 1:1~8] [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4 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리니 벤하닷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5 내가 다메섹의 빗장을 꺾으며 아웬 골짜기에서 그 주민들을 끊으며 벧에덴에서 규 잡은 자를 끊으리니 아람 백성이 사로잡혀 기르에 이르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넘겼음이라 7 내가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8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주민들과 아스글론에서 규를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묵상제목[나는 어떠한 일을 행하고 있는가?]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많은 사람들과 살아가면 갈등이 생기게 된다. 나는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며 희생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00:00
임현호
십일월의 아침 창문을 열면 찬 공기가 먼저 들어옵니다. 마당의 마지막 단풍이 한 잎씩 떨어지는 것을 보며 겨울이 오는구나 싶습니다. 신앙에도 그런 때가 있습니다. 마음의 열기가 조금씩 식고 기도의 말수가 줄어들고 예배는 자리를 지키는데 마음은 멀찍이 서 있는 듯한 때입니다. 그런 날이면 듣기 편한 말씀을 찾게 됩니다. 위로가 되는 구절, 힘이 되는 구절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마음에 잠시 멈추어 서게 합니다. 아모스가 받은 첫 소리가 위로가 아니라 사자의 부르짖음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아모스는 드고아의 목자였습니다. 남유다의 황량한 목초지에서 양을 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말씀을 받아 북이스라엘로 걸어갑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그의 목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사자의 울음은 목자에게 익숙한 소리입니다. 밤에 그 소리를 들으면 양 떼가 먼저 움직입니다. 어쩌면 아모스도 그 소리에 몸이 굳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르짖음이 들리는 곳이 시온입니다. 광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굶주린 짐승의 소리가 아니라 목자의 마음에서 나는 울음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아모스도 망설였을 것입니다. 번영하던 낯선 땅에서 환영받지 못할 소식을 전해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입을 다물지 않았습니다. 자기 양 떼가 아니어도 그는 그 길을 걸었습니다. 본문에는 같은 표현이 두 번 나옵니다.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다메섹과 가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표현은 죄가 넘치도록 쌓였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동시에 세 번의 경고 끝에 네 번째가 이르렀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쉽게 끝내지 않으신 분의 오래 참으심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들이 지은 죄는 한결같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철로 된 타작기로 사람을 곡식처럼 밟았고 포로를 값으로 셈하여 이웃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폭력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모양만 다를 뿐입니다. 불편한 사람을 마음에서 먼저 지워 버리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나중에''라는 말로 넘겨두지 않습니까. 기도 가운데 불편해지는 구절을 만나면 조용히 눈을 감고 다음 장으로 넘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두려운 것은 사자의 울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조용해지시는 것입니다. 부르짖으시는 동안은 아직 듣고 계시다는 뜻이고 아직 돌이킬 자리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심판의 예고는 버리심의 선언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불러 주시는 사랑의 목소리입니다. 목자는 양을 잃지 않으려고 가장 크게 소리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작은 두 가지를 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한 번, 마음이 불편해지는 말씀 앞에 잠시 머물러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미뤄 둔 한 사람에게 먼저 안부를 전해 보는 것입니다. 큰일이 아니어도 됩니다. 조용한 순종 한 걸음이면 충분합니다. 부르짖으시는 그 음성을 도망칠 소리로만 듣지 않게 하시고 돌아설 자리를 알려 주시는 목자의 음성으로 듣게 하소서. 제 안에 쌓인 서너 가지를 숨기지 않게 하시고 작은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게 하소서. 오늘 하루 불편한 말씀 앞에 잠시 머무는 용기를 주시고 미뤄 둔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아직 부르짖고 계신 동안 돌이킬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time | name | title | Device |
|---|---|---|---|
| 11:21 | 유덕선 | 2026년 11월 3일 화요 | mobile |
| 10:41 | PARK MEAE | 사자처럼 부르짖는 심판의 예고 | pc |
| 09:53 | 박기병 | 징계하실 때는 자비가 없으신 하나님 | mobile |
| 09:26 | 박영찬 | 내려놓을 것이 참 많다 | pc |
| 08:31 | 박도형 | 사자처럼 부르짖는 심판의 예고 | pc |
| 08:15 | 김경애 | 내가 가사성에 불을 보내리니 | pc |
| 08:15 | 김정남 | 아모스를 부르심.... | pc |
| 08:13 | 이광순 | 고통과 고난의 의미를 붙잡으며… | pc |
| 07:51 | 윤동호 |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죄에서 멀어지길 소망합니다 | pc |
| 07:44 | 박해동 | 하나님의 심판은 왜,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 pc |
| 07:39 | 한수혁 | 심판을 선포하는 아모스 선지자 | pc |
| 07:36 | 서재학 | "만연해진 죄와 외침" | mobile |
| 07:21 | 고하람 |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어가지 | mobile |
| 07:01 | 김영득 | 생명의삶QT 2 그가 이르 | mobile |
| 06:32 | 오철 | 아모스 1:1?8 | mobile |
| 06:25 | 하수지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 | mobile |
| 05:52 | 장상인 | 獅子처럼 부르짖는 審判의 豫告. | pc |
| 05:35 | 오현 | 위태로운 평온을 찢다 | pc |
| 05:01 | 차동길 | 하나님은 인간 존엄성을 짓밟는 죄를 심판하십니다. | pc |
| 04:38 | 박상형 |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일은 모두 당연하다 | pc |
| 04:11 | 정기용 | 아모스가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 pc |
| 03:13 | 유홍열 | 십자가의 긍휼을 묻다 | pc |
| 00:29 | 양선일 | 나는 어떠한 일을 행하고 있는가? | pc |
| 00:00 | 임현호 | 십일월의 아침 창문을 열면 | mobi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