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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의 소중한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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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다이어리에 묵상을 작성해보세요!
07:39
박도형
[시작기도] 복음안에서 나의 가족 동역자 이웃을 사랑하는 형제 자매로 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말씀] 종 이상으로 사랑받는 형제 1:15~22 15 그가 잠시 그대 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은 이 일로 인해 그대가 그를 영원히 얻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 이제부터는 그가 더 이상 종과 같지 않고 종 이상, 곧 사랑받는 형제 같은 사람입니다. 특히 내게 그렇다면 그대에게는 육신으로나 주 안에서나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17 그러니 그대가 나를 동역자로 생각한다면 내게 대하듯 그를 받아 주십시오. 18 만일 그가 그대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거나 빚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내게로 돌리십시오. 19 나 바울이 이렇게 친필로 씁니다. 내가 그것을 갚아 주겠습니다. 그대도 내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대에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20 형제여, 진실로 나는 주 안에서 그대로 인해 기쁨을 얻고 싶습니다.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힘을 얻게 해 주십시오. 21 나는 그대의 순종을 확신하며 그대에게 씁니다. 나는 그대가 내가 부탁한 것보다도 더 행할 줄 압니다. 22 또한 그대는 나를 위해 방을 하나 준비해 주십시오. 나는 여러분의 기도로 여러분에게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문안과 축복 1:23~25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사람이 된 에바브라가 그대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24 그리고 내 동역자들인 마가와 아리스다고와 데마와 누가도 안부를 전합니다.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묵상] 그리스도의 복음안에 하나된 형제 자매는 친 혈육 이상으로 깊은 교제를 나눌수있습니다. 얼마전 일본 러브소나타에서도 이와테 지역교회를 방문하였을때 채 한시간도 되지않아 서로 눈물을 흘리며 포옹하고 그들을 위해 뜨겁게 기도해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는데에 매우 보수적인 일본사람들까지도 복음안에서는 가족과 같은 친밀감으로 대합니다. 복음안에서 우리의 형제 자매의 개념은 전 세계로 확장될수있습니다.
07:00
David Kim
그리스도를 보증서고 있는 자들의 줄 끝에 나도 서보는 것 복음 안에서는 모두가 사랑받는 형제입니다 빌레몬서 1:15-25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몬1:18) 내 앞으로... 1.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좋다는 미국을 보고싶은 가족과 손녀들을 뒤로 하고 내 삶의 시간을 따로 드리고 비용을 드리고 마음과 정열을 드리고 있는 것일까. 그건 내 삶 속에서 일대일로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그 사랑 때문에 도저히 가만히 주저앉을 수 없기에 말이다. 그 일대일로 경험하는 사랑... 오늘의 말씀에서도 "내 앞으로"(몬1:18) 빚을 달아 놓으라는 바울을 통해 볼 수 있다. 바울이 일대일로 하는 간청(몬1:15)이다. 오네시모는 그의 주인인 그리스도인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친 노예였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사역을 통해 믿음을 갖게 되었는데 이제 바울은 그의 마음과 함께 그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고 있다(몬1:15-16). 오네시모가 노예 신분을 벗어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님을 믿는 그의 새로운 믿음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인 주인과의 관계가 변화되었다. 그도 역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일대일로 한 번에 한사람씩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2. 복음의 힘은 이렇듯 일대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오천명을 다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셨듯이 일대일로 한사람씩 변화시키는 능력이고 일대일을 통해 그 능력은 전달된다고 하신다. 이 일대일은 종을 형제로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는 복음의 힘이라고 말이다. 오네시모같이 물건이나 훔쳐서 도망해야 했던 종을... 세상에서의 내것이 아닌 성공과 재물을 움켜쥐려 했던 나같은 오네시모를 하나님 만나게 해서 이제 바울이 형제라고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는 자리까지 인도하게 하는 힘이라고 말씀하신다. 3. 근데 ‘보증을 서지 말라’(잠22:26)고 하면서 정작 바울도 빚은 "내 앞으로"(몬1:18) 달아 놓으라고 보증을 서고 있다. 근데 나를 위해 "내 앞으로"(몬1:18) 달아 놓으라고 보증을 서신 또 한 분이 계신다.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그 죄 값을 물을 때 전혀 할 말을 가지지 못한 나를 위해 "그 빚 내가 다 갚을께요. 다 "내 앞으로"(몬1:18) 계산하세요. 내게 달아 놓으세요."라고 하나님께 일대일로 담판지며 외치셨던 예수님이심을 고백한다. 하나님 앞에선 내가 오네시모였고 예수님은 내 보증인 되셨음을 말이다. 이젠 내가 주님의 보증인 되어 내 삶을 드리며 보내는 내 삶의 시간이 감사하다. 보증인의 삶 말이다. 근데여... 주님. ‘보증을 서지 말라’(잠22:26) 하셨던 하나님이 정작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그 죄 값을 물을 때 전혀 할 말을 가지지 못한 저를 위해 하나님께 일대일로 담판지며 보증 서셨던 주님 감사해요. 저를 뭘 아신다고 절 위해 자신의 생명으로 보증서신 분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요. 이젠 제가 주님을 보증을 설거예요. "주님. 복음 전해주고 싶은 데가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 앞에 계산해 놓으세요. 제 앞에 달아 놓으세요." 골로새 출신으로서(골4:12) 함께 갇힌 자된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골1:7) 에바브라(몬1:23)처럼 저도 그리스도 때문이고 복음 때문이라면 괜찮아요. 왜냐하면 절 위해 보증서신 그리스도를 위해 이제 바울이 보증을 서고 에바브라가 보증을 서고 있는 모습이잖아요. 바울처럼 에바브리처럼 함께 갇힌 자... ‘그리스도를 보증서고 있는 자들의 줄 끝에 나도 서보는 것’이 소명이었음을 고백해요. 섬기는 땅들 사람들도 제 뒤로 ‘그리스도를 보증서고 있는 자들의 줄 끝에 나도 서보는 것’이라고 일대일로 손들게 해주세요. 전쟁과 추위와 단전 단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팽팽하게 당겨진 위로의 줄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가 언제 될 거죠? 주님… 전쟁 끝내 주실래요?
06:48
하수지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어제부터 생각났다. 이웃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이신데 가까운 가족은 어떠하겠는가, 나는 그랬나. 가족을 이웃만큼 사랑했나. 아니었던거 같다. 오히려 이웃을 더 사랑한거 같다. 나랑 가까워서 오히려 사랑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오히려 남처럼 대했다. 조카의 일도 그렇다. 언니의 딸이면 정말 나와 가까운 가족인데 남처럼 생각했다. 내가 키워줄꺼 아니자나. 내 자식이 아니지. 내 자식이나 잘키우자. 이런생각으로 함구했다. 기도하지 않았다. 이웃을 위해서는 기도했으면서, 심지어 거의 십년간 연락을 하지 않은 친구를 위해서는 기도했으면서 내 가족들을 위해서는 진심으로 기도한적이 없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조카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정말로 마음이 아프다. 내 조카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기를, 믿음으로 단단해 지기를, 그 아이의 인생의 주인되시는 주님께서 모든것을 책임져주시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모든것을 주님께는 쏟아내길. 진심으로 기도해야지.
06:45
김영득
생명의삶QT 16 이제부터는 그가 더 이상 종과 같지 않고 종 이상, 곧 사랑받는 형제 같은 사람입니다. 특히 내게 그렇다면 그대에게는 육신으로나 주 안에서나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몬1:16) 가장가까운사람과의 나의 상태를 점검해보자. 종의 관계를 주안에서 형제로 바꾸는 것은 사랑의 원동력이다. 주님의 관점에서 모든것을 보고 판단하라고 한다. 주님은 그 자체가 사랑이기에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한다.사랑을 받아야 베풀어간다. 주님 오늘도 주님의 사랑 아래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만들어 가도록 인도 하소서.
06:15
오철
빌레몬서 1:15~25 오늘 바울은 빌레몬에게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이제는 사랑하는 형제이자 동역자로 받아 주기를 권면합니다. 사실 마음에 상처와 앙금이 남아 있는 사람을 다시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하나님께 용서받고 새 생명을 얻은 은혜의 빚진 자임을 기억한다면, 다른 사람의 허물도 용서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서와 화해는 인간적인 결심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내 생각과 원망과 의심을 내려놓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또한 화해는 단순히 과거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한마음으로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직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와 원망, 그리고 서로를 향한 불신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용서할 수 없을 때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먼저 용서받은 사람임을 기억하며, 다른 사람을 형제로 품고 화해의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관계와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옵소서. 아멘.
05:48
박해동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빌레몬 집의 종이었다가 값난 물건을 훔쳐 로마로 도망치고 노예 사냥꾼들에게 체포된 오네시모가 옥중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인생 역전을 이룬 이야기가 여기 성경에 써 있는 것은 어느 누구, 어떤 죄인이라도 복음으로 변화되지 못할 자 없으며 복음 안에서 나누는 형제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예 입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변화된 오네시모를 자기 곁에 두고싶지만 본래 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내며 어쩌면 노예 사냥꾼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현상금이나 기타 오네시모가 빌레몬 집에 끼친 물질적 손상에 대해서까지 모두 자신이 변상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바울의 심리 속에는 사람이 사랑하면 못할 것이 없는 진실한 사랑의 속성을 읽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나오는 한 구절인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는 이 말씀은 또한 예수님이 들려주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눅10장)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며 그가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며 이 사람을 돌봐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고 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도 연결됩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들어간 비용을 내가 계산하겠다고 하는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은 실제 예수님 자신을 지칭하신 것이며 이것은 또한 예수에게 빠져서 예수께 향한 열병으로 살아가며 예수의 노예가 된 바울이 오네시모가 끼친 손상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는 마음이며 이것은 또한 한 걸음 더 나가 갈 2:20절을 인생 모토로 삼아 나는 죽고 예수로만 사는 이들이 여기 세상에서 가져야 할 성경적 휴머니티로써 복음에 빚진 자의 자세가 되야함을 이 아침 내게 주시는 교훈으로 마음 깊이 받아드립니다 주님!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떤 손익계산도 초월할 수 있는 복음에 빚진 자의 심리로 "이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를 실천 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05:33
오현
*기꺼운 떠안음* 오늘 본문은 한 편의 짧은 서신이 어떻게 복음의 축소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교리와 신학이 삶의 구체적인 문제, 즉 "돈과 관계의 얽힘" 속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1. 상실이 빚어낸 영원 바울은 오네시모가 도망친 사건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합니다.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당신이 그를 영원히 곁에 두게 하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눈에는 주인을 속이고 재산을 축낸 배신과 상실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에서 그것은 한 노예를 그리스도 안의 형제로 빚어내기 위한 섭리의 과정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뼈아픈 상실과 억울한 이별이 종종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잃어버린 것을 영원한 가치로 되돌려 주시려는 하나님의 숨은 펜 끝이 움직이고 있음을 믿습니다. 2. 사랑이 서명한 계산서 본문에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장면은 바울이 오네시모의 빚을 떠안는 대목입니다. "그가 당신에게 빚진 것이 있다면 내 앞으로 계산하십시오. 나 바울이 친필로 씁니다. 내가 갚겠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고 감정적으로만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용서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과 대가 지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이 직접 채무의 보증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빚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즉 십자가 사랑을 삶으로 재현한, 아름다운 실물 모형입니다 3. 요구를 뛰어넘는 선의 바울은 빌레몬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그가 자신이 말한 것보다 "더 행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참된 은혜는 율법의 최소치를 채우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억지로 용서하는 시늉만 내는 것이 아니라, 기대했던 것보다 더 깊이 품어내고 더 넓게 안아주는 넘침으로 나아갑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내면에 심겨진 복음의 능력을 신뢰했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품어야 할 때,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의무적인 타협이 아니라 요구를 뛰어넘는 선의입니다. 4. 은혜를 담아낼 빈방 마지막으로 바울은 빌레몬에게 나를 위해 숙소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는 바울이 직접 방문하여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형제로 연합한 그 은혜의 현장을 보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깨달은 용서와 사랑은 결국 우리의 거실과 식탁, 즉 우리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원수 같던 자를 위해 내 일상 한편에 "빈방"을 내어주는 물리적인 환대가 동반될 때, 비로소 묵상은 삶이 됩니다. ---------------------------- 누군가를 용서하고 품어내는 일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영적 파산을 자처하신 주님의 그 붉은 계산서를 세상에 꺼내어 보여주는 증명서입니다. 오늘 나의 삶에 누구를 위해 내어줄 "빈방"이 준비되어 있는지 돌아봅니다. 이렇게 용서받고 사랑받는 오네시모는 후일 에베소 교회의 감독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의 수장으로 소아시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바울의 편지들을 모아 최초의 "바울 서신 모음집"을 출판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가 지금 바울 서신서를 묵상할 수 있는데는 오네시모의 역할이 컸음을 의미합니다.
04:48
장상인
Philemon/?利??/ピレモンへの手紙/빌레몬서1:16(15-25) No longer as a slave, but better than a slave, as a dear brother. He is very dear to me but even dearer to you, both as a fellow man and as a brother in the Lord. 不再是奴?,而是高?奴?,是??的弟兄;?我??如此,何????!无?在肉身或在主里更是如此。 もはや奴隷としてではなく、奴隷以上の者、すなわち、愛する兄弟としてです。特に私にとってそうですが、あなたにとってはなおさらのこと、肉においても主にあっても、そうではありませんか。
04:46
차동길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서 도망쳤던 종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고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들일 것을 권면합니다. 이제 빌레몬은 그를 용서할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서 전체를 읽어 보아도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받아들였는지 그를 용서했는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줍니다. 복음은 사람이나 사물을 보는 관점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사람을 사랑과 용서로 받아들이게 하며 모든 관계를 형제의 관계로 회복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가? 나는 누군가를 과거의 모습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 오늘도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여 주시사 숨어 들어오는 사탄, 마귀를 물리쳐 주시고 오고 가는 소식과 만남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4:37
박상형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몬1장15-25) 1. 거창한 꿈의 배신과 예상치 못한 전환 열심히 노력했지만 열망하던 꿈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마치 좁은 공간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거창한 비전을 품고 열정적으로 달려왔지만 현실이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 우리는 깊은 좌절과 혼란을 경험하곤 한다. 성경 속 인물인 바울의 삶 역시 이러한 거창한 꿈과 초라한 현실의 강렬한 대비를 보여준다. 바울은 "세계 복음화"라는 대담한 비전을 품고 로마를 거쳐 당시 땅끝이라 여겨지던 스페인까지 나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인생 말년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무대는 뜨거운 함성이 가득한 로마 원형경기장의 마이크 앞도, 스페인의 땅끝마을도 아니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감옥 바닥, 시끄러운 세상의 환호와 대조되는 칠흑 같은 침묵만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을 뿐이다. 위대한 사명자의 꿈이 꺾인 듯한 이 초라한 상황은 과연 실패한 것일까? 2. 거창한 비전과 갇힌 현실의 강렬한 대비 바울이 품었던 큰 꿈은 다름 아닌 "세계 복음화"였다. 이 꿈은 개인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비전이었다. 바울은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무릅쓰고 터키와 그리스 지역으로 3차례에 걸쳐 전도여행을 다녀왔으며, 로마를 거쳐 당시 땅끝으로 여겨지던 스페인까지 가는 것을 자신의 비전의 피날레로 삼았다. (롬15:23) 그러나 이제는 이 지역에서, 내가 일해야 할 곳이 더 없습니다. 여러 해 전부터 여러분에게로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므로, 내가 스페인으로 갈 때에, (롬1:28) 그러므로 나는 이 일을 마치고, 그들에게 이 열매를 확실하게 전해 준 뒤에, 여러분에게 들렀다가 스페인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금쪽같은 대사도 바울이 인생 말년에 실제로 서 있게 된 곳은 수많은 인파가 모인 로마의 광장이 아니었다. 그는 로마에서 한참 떨어진 에베소 감옥(빌레몬서 22절의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는 구절을 볼 때, 만약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었다면 스페인행을 준비했을 것이지 골로새로 돌아가려 숙소를 부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에베소 감옥으로 추정됨, 다른 몇가지 이유도 있음)에 갇혀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성령님이 모른 척하실 리 없는데, 바울이 인생 말년에 감옥에 갇혀 있다는 상황은 지극히 이상하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땅끝까지 나아가야 할 사명자가 좁은 감옥 아래 갇혀 버린 이 현실을 과연 영적 실패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3. 거대한 사명자가 ‘단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걸다 온 세계를 복음화하고 수많은 무리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가진 바울이 감옥 안에서 온 마음과 정성을 쏟은 대상은 놀랍게도 "단 한 사람"이었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고 도망쳐, 발견되면 사형을 면하기 어려웠던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였다. 바울은 마치 자신의 삶과 사명의 모든 목적이 오직 이 보잘것없는 노예 한 사람의 구원에 있는 것처럼, 간곡함을 넘어 사도적 권위와 약간의 거룩한 압박까지 보태며 편지를 써 내려간다. (17)그러니 그대가 나를 동역자로 생각한다면 내게 대하듯 그를 받아 주십시오. (18)만일 그가 그대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거나 빚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내게로 돌리십시오. (19)나 바울이 이렇게 친필로 씁니다. 내가 그것을 갚아 주겠습니다. 그대도 내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대에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시 로마 사회는 신분과 계급에 의해 인간의 가치가 철저히 판가름 나던 냉혹한 세상이었다. 도망친 노예는 재산상의 손실이자 처형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지위와 재정적 책임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사회의 가장 비천한 밑바닥에 있는 노예 한 사람의 생명과 인격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다. 이는 인간을 기능이나 사회적 신분으로 평가하던 당대 세속 사회의 견고한 신분 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파격이었으며,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거대한 역사보다 "한 영혼의 절대적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이 존귀함을 묵직하게 입증해 준다.
04:21
정기용
♤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또 신앙인을 판단할 때 무엇으로 가늠하는지 생각해 본다. 그리스도인의 판단 기준은 교회 활동에 많이 참여 하는가, 성경 지식이 풍부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척도다. 영성은 그리스도를 닮은 정도를 보고 판단한다.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가늠해 보고 싶다면 오래 교제를 해보면 알게 된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며 말씀을 듣는 마음이 없는 사람, 남몰래 품고 있는 은밀한 죄악들, 하나님 보다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세상의 가치를 하나님보다 우선순위에 둔 사람, 주를 부르며 열심히 활동했더라도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없었던 그들은 종의 신분에서 사랑받는 형제로 동지로 교제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이다. 잘못된 만남과 좋은 만남을 재미있게 표현한 글을 소개한다. 인상과 진상의 차이는 인상은 집에 들어 오면 분위기 밝아짐, 진상은 나가면 어두워지는 것이다. 인상은 화장이나 가면으로 안됨 내면의 미와 영적 능력이다. 잘못된 만남은 만날수록 냄새가 찐하게 나는 생선 같은 만남, 시들면 버리는 꽃 같은 만남, 소멸 되면 여지없이 버리는 건전지(배터리) 같은 만남, 헤어지면 지워지는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좋은 만남은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만남이다. 더러우면 씻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바울과 오네시모의 만남은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만남을 만들었다. 바울은 한때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이제부터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나의 동지로 생각하면서 빌레몬에게 나를 맞이하는 것과 같이, 그를 맞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거든, 그것을 내 앞으로 달아놓고, 나는 그대의 순종을 확신하고, 그대가, 내가 말한 것 이상으로 해주리라는 것을 믿는다라고 말한다. 주님, 죄희들은 죄와 율법의 종으로 만날수록 진상이요 냄새나는 인간으로 살아온 저희들에게, 눈물을 닦아주며, 더러우면 씻어주고, 잘못하면 기억하지 않고 지워 회복케 하시고, 첫사랑이 식어지면 다시 충전하여 주님 앞으로 불러서 어여쁘고 어여쁜 자라 하시는 주님의 그 사랑에 감사합니다. 이제는 진상이 아니라 인상이 좋은 사람으로 이웃들을 위해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순수건 같은 만남으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며 그 사랑 나누며 살아가게 하소서.
03:00
유홍열
가을이 깊어갑니다. 비 까지 오니 더욱 스산해져 겨울의 긴 대열들이... 물밀듯 밀려 오는것 같습니다 나무는 한 해 동안 알뜰히 붙들고 있던 초록 잎을 미련 없이 하나둘 내려놓고, 찬 바람은 떨어진 낙엽을 말없이 길 위에 떨어지니.. 인생지사 아무리 발버둥쳐도 언젠가는 이 낙엽처럼.. 이 땅을 떠나지 않을지요 그러기전에.,. 오늘 사도바울은.. 그 큰 심장을 가지고.. 이 땅의 아주 작은 심장을 가진 우리들에게... 용납하고 또 용서하고 그를 품으라 하십니다 인생의 길목을 걸어오며 저는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마음의 짐들이 참 많습니다. 나에게 억울한 상처를 준 사람, 내 진심을 몰라주고 떠난 사람, 한번 크게 실수했다 하여 내 기억 속에서 아예 지워 버린 그 사람... 세월은 야속하게 흐르고 인생의 가을이 깊어만 가는데, 제 마음속 미움과 섭섭함은 여전히 그날 그 자리에 돌처럼 굳게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 빌레몬서를 읽으며 제 찌든 양심을 사정없이 찌르는 주님의 음성을 만납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주인의 재산을 훔쳐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며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빌 1:16,18] 오네시모의 과거와 죄를 더 이상 상관하지 않고, 예수 안에서 새롭게 될 그 사람의 내일을 바라보는 사도 바울의 이 대속적 사랑... 그 위대한 말씀 앞에서 나 같은 졸부가 어찌,. 감히,. 얼굴을 들 수 있으며 명함이나 내밀 수 있겠습니까. 주님, 당신같은 인간을 사랑하는 자비도 없고 인간적인 생각과 사상많이 가득하고,,, 날선 심령과 가시같은 마음으로 바라보니 도무지 사랑을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지요 내게,.!! 상처 준 그 사람을 어떻게 형제로 품으란 말입니까? 어찌,.? 주님의 심장을 닮으란 말씀입니까. 제 힘으로 용서하려 하니 억울하여 가슴이 찢어지고, 제 의지로 사랑하려 하니 인간의 한계에 부딪혀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저처럼 부족한 모든 이들을 향해 제어와 용서가 결합된 주님의 크신 사랑을 나지막이 선포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굳은 심장으로는 토해내듯 미워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이제 네 힘을 빼거라! 내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내 심장을 네 가슴에 이식해 주마. 바울이 오네시모의 빚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품 물론 뛰어나지만 주님의 사랑은 막혔던 뚝을 허물듯 저 같은 막혀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주님의 세계를 보게하십니다 자신도 죄인 중에 괴수였으나 십자가의 대속으로 건짐 받은 후, 주님의 피 젖은 심장이 그의 가슴속에서 뜨겁게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위해.. 독생자의 생명을 내어주시며 모든 빚을 탕감해 주셨는데,.. 저는 푼돈 같은 사람들의 헛점을 쥐고 왜,.,.? 그토록 용서에 인색했던가요! 하나님은 저에게 수없이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셨는데 저는 왜 다른 사람에게 그 작은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 했던가요! 제가 포기하고 손가락질하던 그 사람을 하나님은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으니,.,. 천하보다 천하의 한 영혼이 그리도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든, 원수이든 대적이든, 좋고 나쁘고를 떠나 다 하나님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아니겠습니까 ? 이 엄연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는 사람을 함부로 단정하거나 과거의 틀에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 수많은 인생의 이별과 만남의 자리를 지나오며 가슴 깊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세상 부귀영화도, 남을 향해 품었던 원망과 미움도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제 남은 생애는 미워하는 데 쓰기보다 사랑하는 데 쓰고 싶습니다. 원망하는 데 허비하기보다 감사하는 데 쓰고,,.,. 사람을 밀어내고 판단하기보다 주님이 이식해 주신 예수의 심장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품는 데 쓰고 싶습니다. 언젠가 제가 이 세상을 조용히 떠나는 날, 나 때문에 위로받았던 사람,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섰던 이들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참 감사한 인생이 아니 겠는지요 ? 이제,., 마음에 오래묵은 미움의 이름들을 주님의 십자가 밑에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주님! 제 안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주님의 심장을 제게 부어주사,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주님이 나를 안아주셨듯,. 온전히 형제로 품게 하옵소서. 오늘도 제 굳은 마음에서 오래된 미움 하나가 툭 떨어져 나가고, 그 빈자리에 주님의 생명 심장이 뜨겁게 고동 치기를 소망하나이다. 깊어가는 이 가을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며, 내가 먼저 은혜를 흘려보내는 그런 복된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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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호
오래 서운했던 사람이 다시 내 앞에 선다면 어떤 얼굴로 맞아야 할까요. 교회 안에서도 마음을 다친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마음은 좀처럼 따라 주지 않습니다. 빌레몬도 그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종 오네시모가 주인의 곁을 떠났다가 바울의 편지와 함께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손해와 서운함이 먼저 떠올랐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영원히 네게 있게 하려 함인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아픈 일을 하나님의 더 큰 섭리 안에서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이제는 종과 같이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받으라고 권합니다. 신분의 구분보다 복음이 맺어 준 관계가 더 크다는 뜻입니다. 우리 곁에도 직분과 나이, 오래된 서운함이 울타리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는 모두가 같은 은혜로 살아가는 형제입니다. 바울은 말로만 권하지 않았습니다. 불의한 일이나 빚진 것이 있으면 내 앞으로 계산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친필로 쓰며 내가 갚겠다고 약속합니다. 자신이 먼저 빚을 지겠다는 그 모습에서 십자가가 보입니다. 우리도 아무 공로 없이 주님의 값으로 용서받은 형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감정이 다 풀린 뒤에 하는 일이 아닙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내리는 결단입니다. 은혜를 잊으면 용서는 손해로 보이지만 은혜를 기억하면 용서는 흘려보냄이 됩니다. 바울은 명령하지 않고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네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하리라는 것을 안다고 믿어 줍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정죄보다 신뢰에 있음을 배웁니다. 편지 끝에는 에바브라,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의 이름이 나옵니다. 한 사람의 용서 뒤에는 함께 수고하는 동역자들이 서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습니다. 마음에 걸린 이름 하나를 떠올리며 형제라고 불러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안부를 전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아직 마음이 다 풀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주님은 그 첫걸음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주님, 저도 빚진 자로 용서받은 형제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서운함보다 은혜를 먼저 기억하게 하시고 누군가를 사랑받는 형제로 맞이할 용기를 주소서. 우리 공동체 위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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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일
(하트)오늘하루도 하나님과 함께 말씀묵상(하트) 2026년11월2일 월요일 1841일차 ●묵상본문[빌레몬서 1:15~25]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20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22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2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묵상제목[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내 주위의 사람들에 어떤 사람은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어떤 사람은 도움이 아니라 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다. 이방 왕이었던 고레스를 나의 목자라고 칭하셨다. 애굽왕 바로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 때로는 악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진노의 도구가 될 수 있고 의로운 일에 쓰임 받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겸손함으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 time | name | title | Device |
|---|---|---|---|
| 07:39 | 박도형 | 복음안에서는 모두가 사랑받는 형제입니다 | pc |
| 07:00 | David Kim | 그리스도를 보증서고 있는 자들의 줄 끝에 나도 서보는 것 | pc |
| 06:48 | 하수지 |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 mobile |
| 06:45 | 김영득 | 생명의삶QT 16 이제부터 | mobile |
| 06:15 | 오철 | 빌레몬서 1:15~2 | mobile |
| 05:48 | 박해동 |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 pc |
| 05:33 | 오현 | 기꺼운 떠안음 | pc |
| 04:48 | 장상인 | 福音 안에서 모두가 사랑받는 兄弟입니다. | pc |
| 04:46 | 차동길 | 복음은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있다. | pc |
| 04:37 | 박상형 |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 pc |
| 04:21 | 정기용 | ♤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 pc |
| 03:00 | 유홍열 |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품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 pc |
| 00:01 | 임현호 | 오래 서운했던 사람이 다시 | mobile |
| 00:01 | 양선일 |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 p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