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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소중한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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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차동길
복음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오늘 빌레몬서 말씀은 복음이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빌레몬은 성도들을 기쁨으로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라는 사람은 어떤 문제로, 도망쳤던 사람입니다. 그는 바울을 만나 예수를 믿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와 빌레몬과의 관계 회복에 나섭니다. 나에겐 정말 존경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청년 장교 시절에 본 그 친구는 분명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십여 년이 지나 만났을 때 그는 거듭난 사람이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친구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었고, 세상 어떤 권력 앞에서도 하나님 자녀다움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알았던 제가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그 친구는 저에게 신앙인의 모델로 남아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오늘도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여 주시사 숨어 들어오는 사탄, 마귀를 물리쳐 주시고 오고 가는 소식과 만남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3:38
정기용
♤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 1절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자 되어 있지만 육적 심적인 자신의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어디에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갇힌자 되어 있는가? 잘못된 겸손과 사랑, 왜곡된 진리, 사람들로 일그러진 복음, 죄와 율법과, 거짓된 진리와 어두운 영들에게 갇힌 자 되어 있는 줄 모른다. 참 진리를 보고도 들어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 처럼 오직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자유함을 버리고 나를 쳐 죽이며 섬기는 자의 자리에 있는 바울을 본다. 오네시모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특히 영적 지도자들은 교인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내가 은혜 받은 사람으로 용서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 용납하며 사랑의 본을 보임으로써 호소하고 따르게 해야함을 알게 한다. 주님, 참다운 경건의 모습과 말씀과 진리 앞에 겸손과 사랑으로 주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왜곡된 진리, 사람들의 지식 도덕 철학으로, 일그러진 복음으로 부터, 십자가의 능력과 죄와 율법과, 거짓된 진리와 어두운 영들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00:47
유홍열
가을이 깊어갑니다. 나무는 한 해 동안 움켜쥐고 있던 잎을 말없이 내려놓고, 바람은 길 위에 쓸쓸한 낙엽을 쌓아 갑니다. 떨어지는 잎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돌아보니, 은혜도 보이지 않고 사랑도 보이지 않는 무심한 세월 속에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미움과 상처가 너무나 많습니다. 누군가 던졌던 서운한 말 한마디, 오래전에 입은 억울한 상처, 나를 실망시키고 손해 입힌 사람의 얼굴까지 고스란히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왔습니다. 직장생활 41년, 어찌 평탄하기만 했겠습니까? 어둡고 험한 계곡과 끝없는 광야 같은 길 위에서 미운털이 박히기도 하고, 속을 시커멓게 탄화시킨 사람들도 수없이 만났습니다. 세월은 까마득히 흘렀는데 내 마음의 시계는 여전히 그 억울했던 날에 멈춰 서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속 오네시모를 바라볼 때, 연약한 내 생각이 바울의 마음과 부딪치며 가슴 깊이 메아리를 칩니다. 누가 오네시모인가? 주인의 재산을 훔쳐 도망친 천하의 무익한 종, 세상의 잣대로는 십자가에 매달려 마땅한 범죄자가 오네시모였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나 역시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은혜를 등지고 도망쳤던 오네시모가 아니었던가? 세상의 허영 속에 엉켜 살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오네시모가 바로 나 자신 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도망자 오네시모를 향해 내 심장이라 부르며, 종이 아닌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주라 권면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요. 용서에도 한계가 있는 게 아닌지요? 가슴이 아파 눈물로 지낸 세월을 어떻게.,,.? 다 내려놓으라는 말입니까? 하지만 무수한 생각이 세상의 판단과 심판으로 흘러가도, 나는 믿는 자이며,,, 주님의 십자가가 내 심령에 박혀있다는 사실이 그 굳었던 마음을 눈 녹듯 녹여 내립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오죽하면 그랬을까?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양심으로 그 언젠가 그가 뉘우치고 화해의 팔을 벌리기를 기도하며, 그가 오네시모처럼 변화되기를 가만히 기도해 봅니다. 바울과 빌레몬의 아름다운 화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 동일한 용서와 사랑의 길이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변화한다는 것,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 주님이 아니면 어찌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전에는 무익했던 자가 복음 안에서 유익한 자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습니까?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잘못했다고 해서 영원히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셨듯이, 내가 미워하던 그 사람에게도 새로운 삶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나는 은혜로 구원받았으면서 왜 남에게는 은혜 없는 냉혹한 잣대를 대고 살아왔는지 양심이 시려 옵니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사람의 인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은 줄어들고 사랑은 깊어져야 합니다. 믿음의 연륜이 쌓일수록 사람을 품는 품도 넓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린 세대에게는 실수해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젊은 청년들에게는 넘어져도 끝이 아니라는 희망을, 장년들에게는 손해를 감수하는 넉넉한 용서를, 노년에는 지나온 삶을 은혜로 품어내는 깊은 지혜를 전하고 싶습니다. 낙엽이 나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새 봄을 위해 몸을 비우듯 내 마음속에 쌓아 둔 원망과 미움을하나씩 내려 놓습니다. 당장 모든 관계를 회복하진 못하더라도, 미움에 붙들린 내 마음부터 하나님 손에 온전히 맡겨드립니다. 사람의 과거가 그 사람의 마지막 이름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의 삶 위에 새로운 이름을 써 내려가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부터 달라지겠습니다.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으로, 오늘도 은혜로 살고 은혜로 용서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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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호
이미 용서했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면 마음이 굳어진 적이 있으십니까? 기도할 때는 내려놓았다고 믿었는데, 얼굴을 마주하면 다시 움켜쥐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용서가 쉽지 않은 까닭은 마음이 모질어서가 아니라, 상처가 실제로 아팠기 때문일 것입니다. 빌레몬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말씀 앞에 앉힙니다. 이 편지는 바울이 갇힌 몸으로 빌레몬에게 보낸 짧은 글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사랑받는 동역자라 부르고, 그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도 은혜와 평안을 전합니다. 한 사람의 사적인 일이 공동체가 함께 듣는 말씀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편지의 중심에는 오네시모가 있습니다. 본문은 그가 한때 빌레몬에게 쓸모없던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흔히 그를 빌레몬의 집을 떠난 종으로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빌레몬의 마음에는 손해와 배신감, 서운함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감정을 꾸짖지 않습니다. 먼저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을 감사하며 인정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명령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사도의 권위로 명령하면 일은 빨리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하는 용서는 순종은 될 수 있어도 사랑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 얻은 아들이라 부르고, 자기 마음과 같은 사람이라 소개합니다. 곁에 두고 도움받고 싶었지만 빌레몬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까닭이 이 말씀에 있습니다.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않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오래 머물게 됩니다. 용서는 잘못을 없던 일로 덮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을 아픔이라 인정하되, 그 위에 사랑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억지로 끌려가는 용서는 마음속에 다시 원망의 뿌리를 남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결단한 용서는 내가 먼저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데서 자라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강요가 아니라 사랑으로 받아 주셨음을 떠올릴 때, 움켜쥔 손이 조금씩 풀립니다. 혹시 지금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아직 용서가 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펼쳐 놓으십시오. 오늘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짧게 기도해 보십시오. 가능하다면 안부 한 줄을 먼저 건네 보십시오. 크지 않은 걸음이어도 사랑은 그 작은 걸음에서 시작됩니다. 용서는 내가 이긴 것이 아니라 은혜가 먼저 이긴 자리입니다. 주님, 저는 아직 용서 앞에서 머뭇거리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제 안의 서운함과 아픔을 숨기지 않고 주님께 드립니다. 명령이 아니라 사랑으로 저를 부르신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게 하여 주십시오. 억지가 아닌 자의로, 의무가 아닌 감사로 한 걸음을 내딛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사는 가정과 교회에서 상처를 덮는 사랑이 먼저 흘러가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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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20 | 차동길 | 복음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 pc |
| 03:38 | 정기용 | ♤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 | pc |
| 00:47 | 유홍열 | 상처를 은혜로 남기는 자 되게하소서 | pc |
| 00:00 | 임현호 | 이미 용서했다고 말하면서도 | mobi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