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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개의 소중한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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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다이어리에 묵상을 작성해보세요!
10:43
김명현
** 관찰(Observation)과 해석(Interpretation) 암몬이 아람 군대를 고용하여 전쟁을 준비하자, 다윗은 그의 조카인 요압과 그의 군대를 보낸다. 암몬은 성문 앞에 진을 치고, 멀리서 도우러 온 아람 군대는 따로 들에 진을 친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군대는 앞뒤에서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요압은 군대를 나누어 자신은 아람을 상대하고, 동생 아비새에게 나머지 군대를 맡겨 암몬을 상대하게 한다. 그리고 어느 한쪽이 밀리면 서로 돕자고 한다. 이어서 요압은 중요한 말을 한다.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요압이 공격하자 아람 군대가 도망하고, 이를 본 암몬 군대도 성안으로 도망간다. 패배한 아람 사람들은 아람 군대를 불러오고, 하닷에셀의 군대장관 소박이 그들을 지휘한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이번에는 직접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나가 아람 군대와 싸운다. 다윗은 아람의 전차병 7,000명과 보병 4만 명을 죽이고, 사령관 소박도 죽인다. 결국 하닷에셀에게 속한 아람 세력은 다윗에게 항복하고 그를 섬기게 된다. 이후 아람 사람들은 다시는 암몬을 돕지 않았다고 한다.
10:00
금신향
앞 뒤로 적에게 둘러싸인 위기 상황에 요합과 아비새는 역할을 분담 어는 한 쪽이 약해지면 설 돕기로 약속함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준비함 => 담대히 나아가자 대적들이 도망함 => 다윗이 맞서 싸워 승리함
09:51
윤동호
요압, 전쟁 사령관은 자신의 동생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선하시게 여기는 대로 행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남기고 전장으로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 여정에서도 눈앞에 위압과 압도당하는 어려움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선하게 여기시는 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권능을 힘입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09:21
박기병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간 요압이 승리했다.
09:06
이광순
261006 - 한 줄 큐티 역대상 19:8-19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전쟁의 한복판에서 하는 장수의 말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지혜도, 경험도… 다만 하나만 붙잡습니다. 여호와의 뜻입니다. 오직 하나만 붙잡습니다. 여호와의 이끄심을 따라 행동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삶은 전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는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요압의 믿음에서, 요압의 결단에서 우리는 삶의 지혜를 얻습니다. 여호와의 선하신 이끄심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릴 것과 같은 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이끄심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대하고 주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만 붙잡기를 원합니다. 하나만 알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하나만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만 온전히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결단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승리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아버지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가 영원한 승리를 얻게 가르쳐 주시고 이끄실 것입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따르는 순종이고 결단입니다. 나와 내 집은 오직 그분만을 믿고 따를 것입니다.
08:55
임상준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 길을 가는 그 영혼이길 원합니다. 여호와가 선히 여기시는대로 행하는 그 길을 가는 그 영혼이길 ... 입술의 고백이 부끄럽습니다.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놓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붙잡습니다. 그가 저를 붙잡고 가듯이 그를 붙잡고 의지하고 가는 그 믿음이길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그의 원대로 행하시기를 기도하고 행하는 그 믿음이길 .. 삶의 그 순간들에서 그 마지막에서 그리스도가 나의 하나님이었다는 그 믿음을 놓지 않는 그 영혼이길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동행하고 그와 동행하는 그 시간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08:54
박영찬
다윗의 조문 사절단을 희롱한 암몬은 돈으로 군사를 모아 이스라엘 공격을 대비합니다. 요압이 군사를 이끌때 적진에서는 많은 무리가 진을 치고 있었고 숫적으로 불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윗의 아우 아비새가 요압을 돕습니다. 아람은 요압앞에서 도망을 하였습니다. 강건너편 하닷에셀의 군대 사령관 소박이 아람군과 함께 다윗과 맞서나 칠천 대의 군사와 보병 사만 명이 죽게되어 패하자 다윗에게 화친을 하여 다윗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적군이 모여 큰 무리를 이루어도 아무 소용이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다면 결국 승리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상황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데 사실 그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 안의 욕심이 자꾸 세상 것을 탐내고 내 속에 있는 영적 게으름이 자꾸 합리화하며 변명을 하면서 하나님과 멀어지기 때문인 것같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처럼" 그리아니하실찌라도" 라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인생은 죽음이 끝입니다. 그 사람의 끝은 죽음뿐입니다. 돈은 다시 모으면 되고 병은 고치면 되고 다시 시작을 할 수 있겠지만 생명이 끝나면 이 세상에서 할 수있는 것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한 기회는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한 하나님은 도우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후에 심판이 있게 되고 믿음의 사람은 바라던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결코 실패의 끝이 없습니다. 해야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뵙는 그날 까지 믿음의 반석위에 서서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08:46
이희승
암몬과의 전면전이 치뤄진다. 암몬 왕 하눈은 아람 용병들을 고용해서 메드바 평지에 진 치게 하고 자신은 성 앞에 암몬 군대와 함께 주둔하여 대항하고자 한다. 은 1,000 달란트로 삯을 주고 고용된 용병들은 허허벌판에 있게 하고 자신과 자신의 군대는 언제든 성 안으로 숨어들어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니, 시작부터 이길 마음이 없는 기회주의자의 그것이 아니었나 싶다. 자기 나라를 위해 싸워 주려고 온 이들을 아무리 용병이라고 이렇게 찬 밥으로 두면 되겠는가? 이를 간파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여우 같은 요압은 이 둘로 나뉘어진 군대를 따로따로 치기로 작전을 세운다. 아우 아비새에게 암몬에 집중하도록 하고 자신은 아람 용병을 상대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상대를 제압하는 쪽이 나머지 아군을 도우면 될 일이었다 (8절~12절).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13절). 오늘 본문의 상동 구절인 [삼하10:7-19] 에서는 ‘너는 힘을 내라 be strong (13절)’ 대신에 ‘너는 담대하라 be of good courage’ 라고 쓰여 있다. 암몬과 아람 연합군을 물리칠 전략을 짜고 전쟁에 앞서 서로 힘을 북돋우기 위한 말이다. 암몬까지 먼 길 달려와 지치고 힘들지만 여러가지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지키기 위하여 힘을 내어 싸우자고 요압은 아비새와 다른 군사들을 격려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한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다음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니 반드시 승리를 주시리라.’ 하는 대신,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기를 원한다.’ 면서 전쟁의 결과 곧 승패를 주권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는 맡겨 드리는 기도를 드린다. 그런데 나는 왠지 이 부분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기 앞에서 자기 백성과 하나님의 성읍들을 지켜 내기 위함이라는 분명한 명분을 가지고 목숨을 건 원정 전쟁에 나섰으면서도, 넋 놓고 무조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나를 따르라.’ 라는 식의 선동부터 하지 않고, 전세를 파악하여 전략 전술을 기획하고 전열을 가다듬으며 군사들에게 힘을 북돋우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전쟁의 결과는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철저히 맡기는 그런 평가를 받으려는 태도…….. 감동이 아닐 수 없다.
08:09
김정남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이 침공하게 되자 군대장관이었던 요압은 당시 상황을 파악하고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이 정면과 후면에서 공격할 것을 예상하게 된다. 압적적인 군사의 숫자로 협공할 때 전면전으로 맞서게 되면 패배할 수밖에 없었기에 요압은 먼저 아람의 군대를 뛰어난 군사들을 뽑아 공략하게 된다. 아람의 군대는 용병이었기에 전세가 불리하면 쉽게 도망칠 수 있음을 알고 전쟁의 승기를 얻기 위해 먼저 뛰어난 군사들을 통해 공격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동생 아비새에게는 암몬과 맞서 싸우면서 상황을 주시했다가 불리한 쪽에 힘을 더해주도록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도록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요압의 예상대로 아람은 요압의 군대에게 패하여 쉽게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쳤고 이것을 바라보던 암몬의 군사들도 아비새에게 패하여 자신들의 성인 랍바로 돌아가게 된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신앙적인 권면을 전하는 요압의 모습은 전쟁에 있어서만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사실 요압은 시기심이 많았으며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불의를 행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아브넬과 군대장과 아마사를 무모하게 죽였으며 다윗의 악한 계획을 알고도 장수 우리아를 죽게 만들었다. 또한 후에는 솔로몬이 아닌 아도니야를 지지했다. 이러한 모습은 요압의 부정적인 측면이 드러나는 모습이었으나 다윗의 인구조사를 반대하기도 했고 전쟁의 노략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신앙적인 면모도 보여주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요압의 모습은 인생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신앙의 모습은 종교적인 행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함께 바른 관계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종교적 행위로만이 아니라 관계적 평안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요압을 믿음의 사람으로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모습에서 나타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종교적 행위에 있지 않고 관계적 평안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안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하며 마찬가지로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평안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삶의 양식이 성경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가르침임을 선포하셨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온전함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러나 인생의 연약함은 두 관계 모두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게 만든다.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는 죄를 양산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분쟁과 분열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른 모습이 되지 않았을 때 그는 밧세바를 탐했으며 우리아를 죽게 만들었고 그 결과는 자기 아들의 반역으로 관계의 파괴를 경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주의 말씀 앞에 나 자신의 모습은 온전한 관계를 세워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묵상이라는 종교적 행위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허물을 살피고 정결함을 얻으며 모든 관계에서 화평을 누리는 모습으로 이어지는지를 돌아보면 부끄러운 모습뿐이다. 온전한 관계를 위한 희생과 섬김은 부족하고 이해와 배려도 빈약한 모습을 볼 때가 많다. 결국 신앙의 이중성을 얼마나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기를 힘쓰는지 돌아보지 않으면 관계적 평안이 아닌 분열과 분쟁으로 나아가게 됨을 고백하게 하신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과의 바른 관계,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 힘쓰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주의 지체들도 다른 이들을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함께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희생과 섬김의 모습으로 반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07:52
서재학
"하나님을 위해" 공동체에게 과제가 주어지면 하나님께 영광을 위해 라며 참여를 독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은 때에따라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 마치 자기 의를 주장하면서 겉으론 하나님을 내세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군사들이 등장한다. 같은 말이라도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를 살펴보자.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대의가 어디에 있느냐 인것 같다. 자기의와 영광을 높이기 위함이라면 당연 거부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진짜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숭고한 마음이 전달된다면 동참하려고 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행실을 거룩하기 지키길 다짐한다. 필요에 따라서만 거룩한척 한다면 모두가 알아볼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삶은 한 순간이 아닌, 삶 전체가 되어야 한다.
07:48
박도형
[시작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길을 하나님의 선하신뜻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고 승리하게 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말씀] 하나님을 의지하는 요압 19:8~13 8 다윗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요압과 모든 용사를 보냈습니다. 9 암몬 사람은 나아와 자기들의 성문에 진을 쳤고 이미 와 있던 왕들은 따로 들판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10 요압은 앞뒤에 적이 진을 친 것을 보고 이스라엘에서 뛰어난 군사 가운데서 고르고 골라 아람 사람을 상대로 진을 쳤습니다. 11 나머지 군사들은 요압의 동생인 아비새의 지휘 아래 암몬 사람을 상대로 진을 쳤습니다. 12 요압이 말했습니다.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나를 도우러 와야 한다. 그러나 암몬 사람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러 가겠다. 13 마음을 굳게 먹어라. 우리 백성들과 우리 하나님의 성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자.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 19:14~19 14 그리고 요압과 그의 군대가 아람 사람과 싸우기 위해 나가자 아람의 군사들은 도망쳐 버렸습니다. 15 아람 사람이 도망치는 것을 본 암몬 사람은 요압의 동생 아비새 앞에서 도망쳐 성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16 아람 사람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에게 진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 아람 사람을 다시 강 건너로 불러냈습니다. 하닷에셀 군대의 사령관 소박이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17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온 이스라엘을 모아서 요단 강을 건너갔습니다. 그는 아람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 그 반대편에 진을 쳤습니다. 다윗은 그곳에서 아람 사람과 맞서 그들과 싸웠습니다. 18 그러나 아람 사람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쫓겨 도망쳤습니다. 다윗은 아람의 전차병 7,000명과 보병 4만 명을 죽이고 또 그 군대의 사령관 소박도 죽였습니다. 19 하닷에셀의 부하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에 진 것을 보고 다윗과 평화롭게 지내고 다윗을 섬기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 아람 사람은 암몬 사람을 도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묵상] 요압은 전쟁의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또한 백성과 하나님을 위해 싸운다는 분명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녀들의 삶을 승리로 이끌어주십니다.
07:47
박해동
전하!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나이다. - 이순신 - 왜군의 이간질과 유인 작전에 말려들어 원균이 조선의 수군을 이끌고 해전에 나섰다가 철저히 패하고 난 뒤 선조의 출정 명령을 따르지 않은 죄로 감옥에서 고초를 겪었던 이순신은 다시 조선의 수군 절도사로 임명되는데 그나마 남은 해군력이 너무 미미하여 선조는 해군을 육군에 편입시키라고 명한다 그 때 이순신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는 우리 조선을 지키는 장수의 최후 비장함이 담겨있다 이어서 우리 바다의 지형과 조류의 흐름을 잘 이용한 울독목 " 명랑해전"에서 이순신은 12척의 판옥선으로 왜선 300여척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리고 우리 민족의 수호신처럼 되어 세상을 떠난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문득 이순신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무릇 전투의 승패는 군사의 수효나 무기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투에 임하는 장수와 부하들의 심리전에 좌우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윗과 이스라엘을 모욕한 암논 왕 하눈은 곧 벌어질 전투를 예상하고 은 일천 달란트를 들여 세 개 국가의 용병들과 무기들로 연합전선을 펴게 되는데 다윗 왕의 출격 명령을 받은 총사령관 요압이 전선에 나왔을 때 앞뒤로 잔울 찬 적병들의 규모에 기가 질렸던 것 같다.[19:8-10]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싸움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자기를 이 전쟁터로 보낸 다윗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면서 담대함을 드러내며 자기 동생이자 또 다른 사령관인 아비새에게 작전 지시를 하게 된다[19:11-13] 그런데 암몬에 의해 용병으로 고용되어 온 외국의 병사들은 싸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는지 요압이 군대를 이끌고 아람 사람들 앞으로 다가가자 그들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을 가니 동생 아비새가 접전한 쪽의 용병들도 모두 도망하게 되어 싸움은 싱겁게 끝나는 것 같았다.[19:14-15]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악의 세력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어서 자신들의 자존심에 상철르 입었는지 이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강 건너 아람 (소) 국가들을 모아 더 큰 연합 세력을 형성하고 하닷에셀의 군대장관 소박의 지휘 아래 다시 침공하게 된다 이미 한 번 다윗의 군대에게 패전 경험이 있었던 이들은 복수의 일념으로 무장하고 전투에 나선 것 같은데 이번에는 다윗이 직접 앞장서서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임하여 아람 병거 칠천 대와 보명 사만 명을 죽이는 전과를 올리게 된다. 그런데 이 전투의 가장 큰 전과는 당시 고대 근동지방에서 강국으로 자처했던 하닷에셀 휘하의 부하들 곧 (소)아람 국들이 자신들이 살기 위하여 비로써 다윗의 발밑에 내려가는 화친 조약을 맺고 주-종 국가로 섬기기로 했다는 점이며 사실상의 정복 전쟁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19:17-19] [묵상적용 1-담대함]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가슴 깊이 닿아지는 것은 “담대함”이다. 요압과 그의 아우 아비새에게 그리고 최종적인 승리를 이끌어 낸 다윗에게 있었던 이 담대함은 요압의 고백처럼 그들이 자신들의 왕국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로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지금 전투를 치루고 있다는 믿음과 확신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을 위하여 힘을 내자[19:13 A] 요압의 신앙고백에서 나오는 이 담대함이야말로 오늘 세상과 마귀가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 세력처럼 제아무리 큰 세력으로 몰려온다고 하여도 우리[내]가 기죽거나 심리전에서 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요 백성 된 우리 교회들을 위하여 큰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고 나서야 할 이유이다. 부활 하심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도 그의 제자가 되고 추종자가 된 나 자신과 우리들의 신앙공동체를 향하여 친히 말씀하신다 (너의 믿음과 교회를 흔드는 음부의 권세가 아무리 크게 보여도)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20] 주님! 암몬과 세 개 연합군의 위세처럼 세상과 마귀의 세력이 우리의 교회를 무너뜨리며 나의 믿음을 무너뜨리려 위협적으로 몰려올 때 미리 마음에서부터 무너지지 않도록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용감했던 요압의 신앙고백과 영적 분별력으로 영적 지형 판세를 읽어내며 요단강을 건너 적진으로 나갔던 다윗의 답대함으로 여기 죄악 세상에서 담대한 영적 전쟁을 치룰 수 있게 하소서
07:47
강사라
위협이 다가올 때, 인간적인 계산은 조급함과 두려움을 낳습니다. 요압과 아비새는 치밀한 대형과 체계를 갖추었지만, 결코 승리를 자신들의 전략에 귀속시키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진중한 고백 속에는 인간으로서의 최선과, 그 결과를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맡기는 믿음이 공존합니다. 우리는 삶의 전선에서 수많은 아람과 암몬을 마주합니다. 앞뒤로 가로막힌 현실 앞에서 때로는 뛰어난 지략을 모으고 동역자와 손을 잡는 동안, 생존에 급급해 하나님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믿음은 무모한 방임도, 영적인 자만도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본분에서 치열하게 최선을 다하되, 승패의 주권은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마음과 태도입니다. 결국 다윗과 이스라엘이 거둔 승리는 그들의 막강함 때문이 아니라, 주권자의 뜻을 겸손히 기다린 믿음의 열매였습니다. 오늘 내가 안간힘을 쓰며 가로막고 있는 그 싸움의 현장에서, 나 역시 모든 인간적인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일하시도록 온전히 맡겨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길 소망합니다.
07:39
한수혁
* 암몬은 돈을 주고 아람의 군대를 고용해 이스라엘과 싸우려 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다윗은 요압과 모든 용사를 보냈다. * 요압은 이스라엘의 정예병을 뽑아 암몬을 상대하게 했고 그 통솔을 동생인 아비새에게 맡겼다. 요압 자신은 아람과 싸우기 위해 나섰다. 먼저 아람 군대가 도망을 치자 암몬 사람들도 아비새 앞에서 도망쳐 성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아람의 군대가 다시 쳐들어왔고, 이번에는 다윗이 군대를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가 아람 군대를 물리치고 군대 사령관까지 죽였다. * 전쟁에서 지자 아람 사람들은 다윗과 평화롭게 지내고 다윗을 섬기기로 했다. 그들은 그 후로 암몬 사람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 오늘 본문에서 장군 모압은 전략이나 믿음에서 모두 탁월함을 보였다. 그는 군대를 둘로 나눠 각각 암몬과 아람을 상대하게 하고, 어느 한 편이 불리해지면 서로 도와주게 했다. 믿음 면에서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실 것"이라고 하면서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아비새에게 말했다. * 세상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탄탄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용기와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07:14
David Kim
하나님 편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승리 역대상 19:8-19 “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대상19:12) 네가 나를... 내가 너를... 1. 세상에서 나 혼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힘들까. 그래서 하나님은 공동체를 주신 것 같다. 혼자서는 예배할 수 있고 은혜를 받을 수는 있지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내가 대적해야 하는 사탄은 생각보다 똑똑하고, 힘도 있고, 전략도 끝내주고, 리소스가 무한대이다. 그런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공동체를 통해서임을 보게 하는 본문이다. 그게 바로 공동체에 주신 공동체의 축복임을 말이다. "네가 나를... 내가 너를..."(대상19:12)같이 서로 약해 질 것 같은 사람을 돕고 영적으로 힘을 주어 영적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것이다. 때론 동생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또 형님같은 성도들을 만나는 이 땅... 그 공동체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음을 감사한다. 2. 그래서 영적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내가 어느 공동체 편인지 어느 편인가가 중요하고 하신다. 매일마다 영적 전쟁을 치루면서도 정작 중요한 내가 어느 편인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하신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아니면 지금 사탄의 편에 서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탄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고 사탄 편이라고 말씀하신다. 3. 당연히 "하나님 편에" 서기로 결단하였다면 그 다음은 할 것은 "너는 힘을 내라"(대상19:13)이다. 하나님 편에 서 있다면 하나님이 지실까? 그런데 자주 영적 전쟁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편에’ 서면서도 질 것을 염려하곤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 편에" 제대로 서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 편에 서나요?"하는데 말씀을 바로 주신다.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대상19:13) 이것이 바로 ‘하나님 편에’ 서는 기도임을 고백한다. 전쟁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승리는 하나님의 것임을 말이다. 다만 나는 ‘하나님 편에"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일하시고 싸우시는 모습을 바라보면 됨을 말이다. 말이 아니라 믿음의 삶으로 선포하는 자라는 말이다. 날마다 주위에서 암몬이 옆에 있는 아람을 꼬득여 하나님의 백성을 침범하는 것을 너무도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 있다면 "너는 힘을 내라"(대상19:13)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은 내가 내 힘으로, 내 생각대로, 내 분노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해 주세요"하며... "하나님 편에" 서는 순간 일하시고 행하심을 고백한다. 근데여... 주님. 그렇게 "하나님 편에" 서는 순간이 제가 비로소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시작하는 때이고 암몬과 아람은 도망할 때이네요. 결국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는 것은 삶에서의 암몬과 아람이 쳐들어 왔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암몬과 아람이 사탄에 휘둘려 영적 전쟁에서 사탄 편에 서 있었음을 깨닫고 ‘하나님 편에’ 선자와 함께 "화친하고 섬기는 존재"(대상19:19)가 되게 만들어야 함을 고백해요. 주님... 그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을 알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있는 이 땅의 암몬과 아람을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과 화친되게 해 주세요. 그래서 또 하나의 공동체가 되도록요. 섬기는 땅들 사람들도 과연 어느 편에 서 있는지 확인하는 삶으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을 알려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주세요. 전쟁과 단전 단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팽팽하게 당겨진 위로의 줄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가 언제 될 거죠? 주님… 전쟁 끝내 주실래요?
06:42
김영조
10.06 역대상 19:8~19 10.요압이 앞 뒤에 친 적진을 보고 13.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방의 막힐때 기도를 막을수는 없다 기도하자
06:33
서정대
암몬과 아람이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이상하다. 한편 요압의 전술인지 모르겠으나 임몬이 아닌 아람을 향해 선공을 한 요압의 시도가 핵심을 건드린듯 하다. 아람은 고용되어 전쟁에 참여하였으므로 상대적으로 적개심이나 승리에 대한 욕구가 암몬과 다를수 밖에 없다. 요압의 공격에 후퇴하는 선택은 일종의 눈치게임이다. 그런데, 암몬의 태도는 심각하다. 전쟁에 임하자 후퇴하여 수성전에 돌입한 것이다. 이 후에 아람이 다시 선공을 한 것은 거래에 따른 책임을 완수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람은 유리한 물량에도 불구하고 패배한다. 그런데, 이 전쟁에는 암몬이 나서지 않고 있다. 애초에 전쟁의 시작이 암몬으로부터 시작되었음에도 참여하지 않은 것을 볼 때 아람은 암몬에개 강한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제 아람은 패배 속에서 암몬을 믿을 수 없는 대상으로 결론 내리는 것은 타당히디. 국제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을 압박하던 양국의 신뢰가 무너졌으니 이스라엘의 국력우위가 높아지는 환경이 된 것이다. 아람을 향한 선공을 택한 결과가 국가적 질서를 재편하는 결과까지 낳은 것이다. 요압은 우직한 장수가 아니다. 때론 상관의 명을 거역할 정도로 정치적 계산이 빠른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불리한 전쟁에서 승리와 그 후의 국제관계까지 유도할 정도의 그릇은 아니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급한 상황에서 최선을 짜냈던 결과가 국제관계까지 움직이는 지렛대가 된 것은 하나님의 개입 외에는 설명될 수 없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세계가 과연 우연으로만 움직여질까? 암투와 전략으로 국제관계를 유도하려는 수많은 과정에도 쉽지 않다. 개인의 관계조차 수많은 불확실성 위에 부유하는데 국제관계가 그리 단순할리가 있을까? 하나님의 개입은 현대 역사 속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나는 이 큰 세계의 흐름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요압처럼 세계를 위해, 이웃을 위해 기도의 전쟁을 시작해야겠다.
06:32
오철
역대상 19:8-19 오늘 요압은 모압과 아람 군대와 싸우기 전에 자신의 동생 아비새와 함께 결단하기를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기도하며 나아간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고 하나님의 선하신 결과가 있기를 기도 하는 것은 이 전쟁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기억하므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셔서 적들에게 싸워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달라는 기도일 수도 있다. 기도 하지 않고 나아가는 사역과 계획은 마치 휴전선을 지키고 있지만 총탄이 없는 빈총으로 지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믿음의 공동체는 결코 영적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도우심은 바로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하신다는 일에 대한 믿음의 확신 속에서 기도 하는 것 뿐이다. 아멘.
06:31
김경애
● 대상 19:8~19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우리 또한 힘을 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물론 믿음의 행보에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 그러나 내가 온전히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고 믿음의 행보를 전혀 옮기지 않는다면 결코 아무것도 역사하지 않는다. 더욱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영원한 승리의 역사 속으로 인도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05:39
오현
*결과를 비워둔 발걸음* 1. 등을 맞댄 거룩한 연대 요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는 앞에는 암몬, 뒤에는 아람 용병이라는 양면 협공에 갇히고 말았다. 사방이 막힌 절망적인 포위망 속에서 요압이 선택한 전략은 형제 아비새와 군대를 나누어 등을 맞대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밀리면 네가 돕고, 네가 밀리면 내가 돕겠다”는 연대의 언약을 맺는다. 성도를 옭아매는 영적 고난 역시 앞뒤를 가리지 않고 협공해 온다. 이때 고립은 곧 패배를 의미한다. 위기의 한복판에서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완벽한 전술이 아니라, 나의 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기꺼이 서로의 구원투수가 되어주는 지체들과의 영적 연대이다. 2. 결과를 내려놓은 치열한 분투 죽음이 오가는 전장에서 요압이 던진 출사표는 신앙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다. 그는 승리를 장담하는 대신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한다"며 결과를 하나님께 맡긴다. 신앙이란 하나님이 무조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주실 것이라 믿는 맹신이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의 자리에서 피 흘리기까지 최선을 다하되, 최종적인 결재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위탁하는 담대한 항복이다. 3. 이익으로 엮인 동맹의 민낯 막대한 은을 받고 참전한 아람 용병들은 첫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기세에 눌려 도망쳤다. 그리고 자존심을 걸고 다시 모인 두 번째 전투에서도 다윗이 이끄는 본대 앞에 철저히 궤멸당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형제를 향한 언약으로 뭉친 반면, 암몬과 아람은 철저히 돈과 이익으로 엮인 모래성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람은 암몬을 배신하고 이스라엘과 평화를 맺는다. 물질과 탐욕으로 급조된 세상의 힘은, 십자가의 군사들 앞에서 그 초라한 한계를 드러내며 흩어지게 된다.
05:08
차동길
다윗은 암몬(요르단)과 그들의 동맹국 아람(시리아)과의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에 맞섰습니다. 암몬-아람 연합군은 전쟁에서 패배 후 동맹관계를 끊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위기와 싸움 속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히 나아갈 때 결국 승리와 평안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인간적인 계산이나 동맹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임을 일깨워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 오늘도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여 주시사 숨어 들어오는 사탄, 마귀를 물리쳐 주시고 오고 가는 소식과 만남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4:42
박상형
와~~~~~(대상19장8-19) 1. 겉보기엔 완벽해 보이는 연합이 무너지는 이유 수많은 자본이 투입되고 겉으로는 당당한 전력을 자랑하는 조직이나 인간관계가 작은 위기나 이해관계의 충돌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평소에는 탄탄한 연합처럼 보이지만, 정작 거친 풍랑이 불어오면 서로를 방패 삼아 각자도생하기 바쁜 모임은 외화내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역대상 19장에 기록된 이스라엘과 암몬·아람 연합군 사이의 전쟁은 단순한 군사력의 우열을 가리는 싸움이 아니었다. 이 전투는 위기의 순간 조직과 집단이 본색을 드러내는 방식, 즉 "공동체의 참된 본질"이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대조해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사건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속해 있는 일터, 교회, 그리고 여러 삶의 모임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위기가 찾아왔을 때 서로의 안위를 살피며 끝까지 지켜주는 진짜 공동체인가, 아니면 이익의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속절없이 분열하는 각자도생의 공동체 인가? 2."붙어있는 공동체"와 "각자도생하는 집단"의 결정적 차이 역대상 19장의 전장에서 이스라엘 군대와 암몬·아람 연합군은 전혀 다른 조직적 태도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전방을 맡은 요압과 후방을 맡은 아비새의 부대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붙어있는" 작전을 펼쳤다. 전방 부대가 수세에 몰리면 후방 부대가 즉시 지원하고, 후방이 위태로우면 전방이 돕는 구조였다. 이들은 서로의 상황을 세심하게 살피고 보호하는 생명체적 연합이었다. 반면, 암몬 자손과 용병으로 참전한 아람 군대는 철저히 "떨어져 있는" 집단이었다. 아람 용병들이 이스라엘의 기세에 눌려 도망치기 시작하자, 암몬은 그들을 돕기는커녕 아비새의 부대 앞에서 사기를 잃고 성 안으로 황급히 숨어버렸다. 단합과 사기 측면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로의 어려움을 즉각 알아채고 돕는 유기적 결속력이 이스라엘에게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의 한복판에서 요압이 동생 아비새에게 전한 결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단단히 묶인 공동체가 발휘하는 놀라운 기개의 본질을 보여준다. "(13)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3. "돈"으로 결속된 세상 vs "믿음"으로 묶인 공동체 이스라엘이 거대한 연합군을 상대로 거둔 승리의 결정적 요인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준 "매개체"에 있었다. 암몬과 아람은 "돈(용병 자금)"과 세속적 이익으로 결속된 집단이었던 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결합된 공동체였다. 계산과 자본으로 묶인 관계는 이익이 보장될 때만 유지되지만, 믿음으로 묶인 공동체는 위기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초대교회 형성과정에서 일어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돈과 이익이 개입될 때 공동체의 생명력이 어떻게 마비 되는지를 자시하게 보여준다. 밭을 판 돈의 일부를 은밀히 숨기고 전부라고 속였던 이 부부는 결국 한 날 한시 같은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여기서 영성적 의구심을 갖게 된다. 만약 그 공동체가 서로의 영혼을 깊이 살피는 진정한 유기체적 믿음의 공동체였다면 어떠했을까? 아나니아가 거짓말로 쓰러졌을 때, 누군가가 신속히 삽비라에게 달려가 그 엄숙한 소식을 전하고 그녀가 진심으로 회개하여 살 수 있도록 도왔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초대교회 안에서조차 돈의 탐욕이 침투했을 때 지체를 살려내는 유기적 기능이 작동하지 못했고, 결국 그 부부는 회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방치되어 죽어갔다. 진정한 믿음의 공동체는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나란히 서 있는 "따로국밥" 같은 집단이 아니다. 몸의 한 부분이 위험에 처하면, 머리보다 먼저 손이 자동으로 올려져 얼굴을 막아주는 것처럼, 지체의 위기 앞에 자신의 안위를 던져 서로를 살려내는 유기체여야 한다.
03:21
장상인
1Chronicles/?代志上/歷代志上/역대상19:12-13(8-19) Joab said, “If the Arameans are too strong for me, then you are to rescue me; but if the Ammonites are too strong for you, then I will rescue you. Be strong, and let us fight bravely for our people and the cities of our God. The Lord will do what is good in His sight.” ?押?:“??人若强?我,?就??助我;??人若强??,我就去?助?。?要?强,我?要?自己的百姓,?我? 神的城??勇。愿耶和?照他所看?好的去做!” ヨアブは言った。「もし、アラムが私より?ければ、おまえが私を救ってくれ。もし、アモン人がおまえより?かったら、私がおまえを救おう。?くあれ。われわれの民のため、われわれの神の町?のために全力を?くそう。主はみこころにかなうことをされる。」
02:11
양선일
(하트)오늘하루도 하나님과 함께 말씀묵상(하트) 2026년10월6일 화요일 1814일차 ●묵상본문[역대상 19:8~19] [8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냈더니 9암몬 자손은 나가서 성문 앞에 진을 치고 도우러 온 여러 왕은 따로 들에 있더라 10요압이 앞 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에서 뽑은 자 중에서 또 뽑아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을 치고 11그 남은 무리는 그의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맡겨 암몬 자손을 대하여 진을 치게 하고 12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13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14요압과 그 추종자가 싸우려고 아람 사람 앞에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고 15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요압의 아우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이에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16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사신을 보내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내니 하닷에셀의 군대사령관 소박이 그들을 거느린지라 17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전하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아람 사람에게 이르러 그들을 향하여 진을 치니라 다윗이 아람 사람을 향하여 진을 치매 그들이 다윗과 맞서 싸우더니 18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대의 군사와 보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군대 지휘관 소박을 죽이매 19하닷에셀의 부하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윗과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그 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더라] ●묵상제목[도움을 받을 것인가? 도움을 줄 것인가?] [12 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살아가는 동안 도움을 받을 때가 있고 도움을 줄 때도 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떠한 길을 선택하셨을까 기도하면서 결정하는 것이다. 나의 힘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01:17
유홍열
살다 보면 정말 앞뒤가 꽉 막혀 숨조차 쉬기 힘든 날을 만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은 보이지 않고 내 힘으로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환경을 탓합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배수진이 찾아왔을까? 그러나 오늘 말씀을 가만히 엎드려 묵상하다 마음 깊은 곳에 벼락처럼 내리치는 찔림이 있습니다. 내 삶의 앞뒤가 막혔다고 하늘까지 막힌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요압은 적들이 배수진을 치고 압박해 올 때 환경을 원망하며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며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 지기만 기다리는 게으른 만홀함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군대를 나누고 상황을 냉철하게 살피며 네가 힘들면 내가 돕고, 내가 힘들면 네가 오라 서로 연대하는 지혜를 모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완벽한 준비의 끝에서 마지막 결과는 자신의 손에 움켜쥐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한 마디가 오늘 내 안일한 신앙의 양심을 깊게 울립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기도한다는 핑계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피하진 않았는지.,. 반대로 내 경험과 능력을 과신하며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앞서가는 만용을 부리진 않았는지. 믿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더 지혜롭게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움직이며 내게 맡겨진 오늘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결과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에 온전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아람 군대는 한 번 패하고도 강 건너 대군을 끌어모아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당대 최고의 명장 소박을 앞세우고 더 큰 세력으로 총력전을 펼쳤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어제 기도로 한 고비를 넘었다 해서 오늘 내 삶의 모든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다시 찾아오는 건강의 문제, 자녀의 아픔, 가장의 무거운 책임감과 팍팍한 경제적 압박 앞에서 주님은 내 영혼에 날카롭게 물으십니다. 너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믿고 서 있느냐? 내 삶에 여유있는 소박입니까? 내가 쌓아온 경험과 스펙이라는 소박입니까? 내 곁의 사람과 자존심이라는소박입니까? 아니면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입니까? 세상의 소박은 인생의 거친 밤이 찾아올 때 나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고 싸움터에서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내가 숨겨둔 소박을 흔드시는 이유는 우상을 깨뜨리고 진짜 구원자이신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려는 사랑의 섭리입니다. 이 가을, 나뭇잎 하나도 자신의 힘으로 계절을 만들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손을 놓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자리를 비워줍니다. 어쩌면 진짜 믿음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땀 흘리되 결과를 움켜쥐지 않는 것. 내 뜻을 주장하기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믿는 것.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감사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 인생의 가장 위대한 성공은 내가 원하는 승리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 속 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신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도 환경을 탓하는 불평의 입술을 닫고 가로막힌 벽 뒤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내 안의 허망한 소박을 내려놓고,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땀 흘려 최선을 다하며 내가 할 수 없는 결과는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주님... 나의 최선보다 주님의 선하신 뜻을 더 믿게 하시고, 나의 짧은 지혜보다 주님의 도우심을 더 의지하게 하소서. 기도하면서 담대히 움직이게 하시고 움직이면서 겸손히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고 마지막 승패의 결과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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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호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가워진 요즘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은 마치 작고 큰 전쟁터와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뜻하지 않은 시련이 사방에서 몰려올 때, 우리는 어디서 용기를 얻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다윗과 요압은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에게 앞뒤로 둘러싸이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양쪽에서 압박해오는 절체절명의 순간, 장군 요압은 담대하게 담아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백성과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자신의 지략이나 군사력을 의지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모든 결과를 맡긴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위대한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살다 보면 앞뒤가 막힌 듯한 막막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갈등, 가정의 어려움, 건강의 문제들이 동시에 몰려와 나를 압박할 때지요. 얼마 전 만난 한 지인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가 예상치 못한 악재들로 큰 위기를 맞았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어느 날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맡기자." 그렇게 마음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속에 평안과 담대함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도움을 줄 귀한 인연들을 만나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결과를 주님께 맡길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담대히 나아갈 힘이 생깁니다. 참된 승리는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해서 조급해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나를 둘러싼 어려운 환경을 바라보며 지치기보다 주님의 선하심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내게 맡겨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승리의 첫걸음입니다. 우리가 담대히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승리의 길을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뒤로 가로막힌 듯한 위기 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심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마음의 두려움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뜻에 결과를 맡기는 담대함을 주옵소서. 내 삶의 모든 전쟁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고백하니, 날마다 주님의 손을 잡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낙심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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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43 | 김명현 |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결과를 주시리라 | pc |
| 10:00 | 금신향 |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 pc |
| 09:51 | 윤동호 |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여 능력을 힘입게 되길 소망합니다. | pc |
| 09:21 | 박기병 | 믿음 | mobile |
| 09:06 | 이광순 |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따를 것입니다. | pc |
| 08:55 | 임상준 |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 pc |
| 08:54 | 박영찬 | 최고의 것을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pc |
| 08:46 | 이희승 |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대로 | pc |
| 08:09 | 김정남 | 하나님을 의지하는 요압... | pc |
| 07:52 | 서재학 | "하나님을 위해" 공동체 | mobile |
| 07:48 | 박도형 |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승리 | pc |
| 07:47 | 박해동 | 다읫 왕국의 정복 전쟁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2) | pc |
| 07:47 | 강사라 | 위협이 다가올 때, 인간적인 | mobile |
| 07:39 | 한수혁 | 믿음의 토대 위에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자 | pc |
| 07:14 | David Kim | 하나님 편에 | pc |
| 06:42 | 김영조 | 10.06 역대상 19 | mobile |
| 06:33 | 서정대 | 암몬과 아람이 전쟁에 임하는 | mobile |
| 06:32 | 오철 | 역대상 19:8& | mobile |
| 06:31 | 김경애 | 너는 힘을 내라 | pc |
| 05:39 | 오현 | 결과를 비워둔 발걸음 | pc |
| 05:08 | 차동길 |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의지하라. | pc |
| 04:42 | 박상형 | 와~~~~~ | pc |
| 03:21 | 장상인 | 하나님의 善하신 뜻과 勝利. | pc |
| 02:11 | 양선일 | 도움을 받을 것인가? 도움을 줄 것인가? | pc |
| 01:17 | 유홍열 | 믿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 pc |
| 00:00 | 임현호 |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가워진 | mobi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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