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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소중한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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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다이어리에 묵상을 작성해보세요!
07:25
David Kim
삶에서의 작은 순교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 역대상 16:7-22 “그 때에 너희 사람 수가 적어서 보잘것없으며 그 땅에 객이 되어”(대상16:19) 그 때에... 1. "그 때에"(대상16:19)는 내 앞에 주어진 상황과 환경들은 No 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Yes 라고 하실 때이다. 그런 상황 앞에서 영원토록 성취되는 언약을 주시고 있는 하나님이시다. 그런 때이다. 그렇다면 그런 때는 과연 힘들고 어려워 저주의 때라고 할 것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언약과 보호가 있기에 축복의 때이다. "그 때에"(대상16:19)는 하나님의 개입이 있는 때이다. "그 때에"(대상16:19) 그 개입은 그저 "네가 하는 것을 도와줄께" 정도가 아니라... "너는 나의 기름부은자 이다. 너는 나를 전하는 선지자이다."(대상16:22)라고 하시면서... 척박하고 녹녹하지 않은 환경과 상황에 대해 No 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개입이시다. 2.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대상16:22) 이런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대상16:14)... “나의 하나님이신대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라는 고백을 기어이 받으시려고 마치 "그 때에"(대상16:19)가 오기를 기다리셨다고 하신다. 이런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즐거울 "그 때에"(대상16:19)를. 예배는 이런 하나님을 찾게 하는 "그 때에"(대상16:19)라고. 예배는 이런 하나님을 보게 하는 "그 때에"(대상16:19)라고. 에배는 이런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그 때에"(대상16:19)라고 말이다. 그래서 예배는 "그 때에"(대상16:19) 이런 하나님을 기대하게 하는 감동이라고 하신다. "그 때에"(대상16:19) 이런 하나님을 기대하게 하는 능력이라고 하신다. "그 때에"(대상16:19) 이런 하나님을 기대하게 하는 기적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늘 내 편이셨다고 하신다. 나만 버리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나만 비우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나만 준비하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3. 예배는 준비된 만큼 체험할 수 있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큰 준비임을 말이다. 그 담엔 예배에 대한 헐떡거림...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야 함을 고백한다. 그러면 저절로 하나님을 향한 포기와 결단, 그리고 순종이 이어지게 됨을 말이다. 그런 인정과 헐떡거림이 없으니까 교단도 교회도 목회자도 다른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에서 이런 하나님을 만나는 만남보다 더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만남은 없음을 고백한다.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에서 이런 하나님을 만나는 만남보다 더 의미있고 소중한 만남은 없음을 고백한다.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에서 이런 하나님을 만나는 만남보다 더 위대하고 자랑스런 만남은 없음을 말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간이 만나 살아나는 사건... 이것이 바로 예배임을 고백한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어떤 상황이든 이런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잘 드리는 예배임을 말이다. "전 하나님 사랑해서 순교할 수도 있어요"하는 나에게... "네가 지금 나 때문에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삶 속에서 참고 허용하고 인내하는 그것이 바로 순교란다. 이 땅에서 참고 허용하고 인내하는 그것이 바로 순교란다"고 하신다. 근데 그 작은 순교가 어렵긴 하다. 죽은 거 같은데 또 죽으라는 거 같은 게 ‘삶에서의 작은 순교’이기에. 근데여... 주님. 제게 "너는 나의 기름부은자 이다. 너는 나를 전하는 선지자이다."(대상16:22)라고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인 예배가 있게 하셔서 감사해요.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대상16:22) 이런 하나님을 찾고 보고 움직이게 하는 예배가 삶이기에 기적임을 고백해요. 바쁘고 힘든 이 땅의 시간들... 그것을 하나 하나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참고 허용하고 인내하는 것이 순교였네요. 주님을 위해서 이 땅에서 그렇게 순교자로 살아가는 제가 되게 해 주세요. ‘삶에서의 작은 순교’가 늘 반복되기에 어렵긴 하지만요. 섬기는 땅들 사람들도 예수 때문에 참고 허용하고 인내하는 ‘삶에서의 작은 순교"가 있게 해주세요. 전쟁과 단전 단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팽팽하게 당겨진 위로의 줄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가 언제 될 거죠? 주님… 전쟁 끝내 주실래요?
06:51
한수혁
* 언약궤를 옮긴 날에 다윗은 아삽과 그 형제들을 세워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다. *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찬양하고 그분의 얼굴을 항상 찾으라. * 그분이 하신 약속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맺으신 약속을 지키셨다. 이스라엘은 보잘것 없었고 떠돌아 다녔지만,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다. * 오늘 와 닿은 말씀은 두 가지다. 먼저 11절 말씀. "여호와를 바라보고 그분의 힘을 바라보라. 그분의 얼굴을 항상 찾으라." * 두번째 말씀은 15절이다. "그분이 그분의 약속, 곧 천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너희는 영원히 기억하라." *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셨고 나에게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 주셨다.
06:49
오현
*시간을 이긴 기억의 노래* 오늘 본문은 언약궤가 다윗의 장막에 안치된 후,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통해 불려진 첫 번째 감사 찬양이다. 이 찬양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흐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소환하는 신앙 고백이다. 다윗은 이 시를 통해 예배가 과거의 은혜를 현재의 능력으로 바꾸는 영적 통로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1. 망각을 거스르는 기억 본문 전반부는 "감사하라", "알게 할지어다", "노래하라", "기억할지어다"라는 명령어들로 채워져 있다. 다윗에게 있어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의지적으로 기억해내는 작업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받은 은혜는 쉽게 잊고 당면한 위기 앞에서는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망각의 존재이다. 따라서 참된 찬양은 잊혀져 가는 하나님의 역사를 현재의 시간으로 끌어당겨 영혼에 다시 새기는 거룩한 투쟁이다. 내 삶에 새겨진 그분의 행적을 입술로 선포할 때, 두려움은 물러가고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굳건히 자리 잡게 된다. 2. 미약함에 새겨진 영원 찬양의 중반부에서 다윗의 시선은 출애굽의 기적이 아니라, 작고 초라했던 족장 시대의 시작점,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향한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은 그들이 강대한 민족을 이루었을 때가 아니라, 무명의 나그네에 불과했을 때 주어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수효가 적고 보잘것없던 시절에 맺은 그 약속을 변치 않는 "영원한 언약"으로 삼으셨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세력이나 조건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3. 나그네를 덮은 거룩한 그늘 이 민족 저 나라로 유리하며 떠돌던 족장들의 삶은 겉보기에는 불안과 위협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연약한 이방인들을 향해 "나의 기름 부은 자", "나의 선지자"라 칭하시며 세상의 어떤 권력자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지키셨다. 그래서 비록 정착할 땅 한 평 없는 나그네였지만,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영적 정체성이 그들의 삶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었다.
06:33
김영조
9.28 역대상 16:7~22 21.여호와께서는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결국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그 상황으로 이끄셨고 그만큼만을 허락하신것이다 그 이유는 사랑이다 그를 찬양하자
06:16
서재학
"거룩한 선순환" 성경으로부터 받은 마음은 우리를 정결하게 한다. 이런 마음으로 삶을 살게 되고 감사와 찬양이 절로 나온다. 이 찬양은 다시금 우리를 말씀 앞에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우리는 다시 찬양하게 된다. 이런 선순환을 놓고 오늘 본문 해설에선 거룩한 선순환이라고 표현한다.오늘은 이 단어를 갖고 묵상해보려 한다. 본문속 다윗왕은 궤를 옮기고 감격의 예배를 드리기전에 찬양한다. 그동안 이끌어주신 것과 평안 주신 것에 대한 감사다. 이 감사의 찬양을 듣고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그리고 멈출 수 없는 마음을 갖고 또다시 예배한다. 우리의 예배도 이러하길 소망한다. 반복 속에서 익숙함이 아닌 거룩함을 찾자. 이 선순환 가운데 우리의 예배가 살아날 것이요, 우리의 생명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05:39
차동길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 레위 사람 아삽과 그의 형제들에게 하나님께 감사 찬송 임무를 부여합니다. 감사와 찬양의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신앙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분의 위대하심을 세상에 선포하고 언약을 붙들며 보호하심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이삭에게 하신 맹세, 야곱에게 세워주신 율례 곧 성경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의 말씀입니다. 아멘. 여호와 하나님! 오늘도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여 주시사 숨어 들어오는 사탄 마귀를 물리쳐 주시고 오고 가는 소식과 만남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5:39
오철
역대상 16:7-22 공동체 성경 읽기 오늘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모셔 놓은 후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세워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게 합니다. 이 찬양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계속 기억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며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에게도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말고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세상 가운데 복의 통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는 야곱의 사다리와 같은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뜻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주신 주님의 평강과 기쁨이 우리 안에만 머물지 않고 이웃에게 흘러가게 하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05:39
정기용
♤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그 날에 즉 언궤를 옮긴 날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먼저 여호와께 감사하게 한다. 먼저 주께서 행하신 기사와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법도를 기억하라고 한다. 그리고 다윗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법도가 온 땅에 있도다 라고 선포한다. 그리고 15절 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라 하며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다 라고 상기 시킨다. 성도의 신앙은 언약을 붙잡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하고 그들을 통해 행하신 기사와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법도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자들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다. 주님, 나의 열심 노력 열성적 신앙의 행위가 아닌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령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하신 언약의 말씀이 나를 보호하고 지키어 여기까지 인도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굳게 붙잡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04:43
박상형
기억 저장소에 소중히 간직하는 거룩한 정성(대상16장7-22) 1. 우리는 왜 감사를 잊는가?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감사는커녕 당장 눈앞에 놓인 막막한 현실을 버텨내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평범한 일상은 당연한 권리로 치부되고, 고난의 시간은 그저 빨리 지워버리고 싶은 망각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 영혼은 방향을 잃고 메마르기 시작한다. 역대상 16장에는 다윗이 오랜 기다림 끝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안치하고 기쁨으로 드린 찬송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왕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다윗은 이 찬송을 통해 감사가 어떻게 메마른 삶에서 다시 피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감사가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지탱하는 거대한 힘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다윗의 고백을 통해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억’과 ‘감사’의 메커니즘을 살펴보고자 한다. 2.감사는 "기억"의 산물이다 다윗은 찬송의 서두에서 "그의 기사를 전하라", "그의 행하신 일을 알릴지어다"라고 외친다. 다윗에게 감사는 단순히 일시적인 감정의 파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체적인 사건들을 의지적으로 되짚어보는 ‘기억의 행위’였다.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는 이유는 감사할 조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삶에 새겨두신 은혜의 흔적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이 결코 변치 않음을 확신했기에, 그 약속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감사의 본질임을 강조했다. 감사는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현재로 불러오는 가장 거룩한 응답이다. (15)"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3 "침묵의 시간"이 주는 역설적인 축복 다윗의 감사가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가 통과해온 모진 "연단"의 세월 때문이다. 다윗은 소년 시절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그 후의 삶은 왕궁이 아닌 광야에서의 도망자 신세였다. 사울왕에게 쫓기며 미친 체를 하여 치욕을 견뎌야 했고, 원수인 사울을 죽일 결정적인 기회 앞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칼을 거두었다. 그 과정에서 부하들의 신뢰를 잃을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도 그분의 신실함을 끝까지 붙들었다. 하나님은 왜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침묵하셨을까? 만약 다윗이 고난 없이 곧바로 왕이 되었다면, 그 역시 사울처럼 교만의 덫에 빠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지체됨은 다윗의 인격을 빚어가시는 세밀한 배려였으며, 그를 보호하시려는 "보호적 은총"이었다. 그렇기에 다윗은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최선이기에 더욱 감사할 수 있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 4.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 하나의 이름, "감사" 광야의 결핍 속에서 단련된 다윗의 이 깊은 감사는 오늘날 우리 신앙 공동체의 실천적 예배로 이어진다. 한 예로, 우리 교회는 모든 헌금의 명목을 ‘감사헌금’이라는 이름 하나로 통합하여 드린다. 십일조를 비롯한 모든 예물이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라는 하나의 본질로 귀결된다는 점에 온 회중이 마음을 모은 것이다. 이러한 실천은 형식이 본질을 압도하지 않도록 돕는다. 다윗의 삶을 관통했던 감사가 그의 모든 찬송과 행보를 하나로 묶었듯, 우리의 봉사와 헌신, 예배의 모든 파편이 ‘감사’라는 카테고리 안에 통합될 때 우리의 신앙은 비로소 의무를 넘어선 기쁨이 된다. 감사는 흩어진 삶의 조각들을 하나의 아름다운 서사로 꿰는 황금 실과 같다. 5. 말씀을 "먹는" 것이 감사의 시작이다 감사의 선순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의 영적 만찬이 필수적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듯,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먹는’ 행위를 통해 감사를 길어 올려야 한다. 말씀은 망각의 늪에 빠지기 쉬운 우리 기억을 정화하고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연료가 된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내 삶에 어떤 기사를 행하셨는지 매일 상기하면 삶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진다. 내 영혼이 말씀을 풍성히 누릴 때, 곁에 있는 이들이 그 말씀으로 인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 또한 배가된다. 주님의 말씀을 내면화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영적인 축제이자 감사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된다. 나는 주님을 더 기억하고 주님께 더 감사하기 위하여 오늘도 주의 말씀을 먹는다
01:45
장상인
1Chronicles/?代志上/歷代志上/역대상16:10(7-22) Glory in His holy name; let the hearts of those who seek the Lord rejoice. 要?耀他的?名!愿?求耶和?的人心中?喜! 主の聖なる名を誇りとせよ。主を慕い求める者の心を喜ばせよ。
00:33
박해동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들여와 안치하게 된 다윗은 너무나 기뻐서 춤추고 노래하며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린 후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 건 포도병 하나씩 나눠주며 기쁨을 함께 나누고 또 레위 사람들에게는 여호와의 궤 앞에 서서 어떻게 섬기며 찬양해야 하는지 그 제도를 세우는 가운데 오늘의 말씀으로써 찬양 시를 올리고 있다 [16:1-6] 다윗의 찬양 시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께 향한 8가지 신앙 행위 가운데 특별히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하라, 그 얼굴을 항상 구하라”는 말씀이 (16:11)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닿아진다. 그 얼굴을 구하라(Seek His face)는 것은 무슨 뜻일까 ?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의 얼굴을 어떻게 찾으라는 말일까? 아버지와 헤어져 이 땅에 와서 사셨던 예수님에게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면 그것은 아버지께 향한 끊임없는 정서적 유대감을 가지며 특별히 기도 생활 가운데서 경험되어지고, 사역 가운데서 의지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적어도 예수님의 경우 이 땅에 와 사시는 동안, 하나님의 얼굴을 찾음에 있어서 엄마의 얼굴을 찾는 아이 같은 심정이 항상 떠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 많은 반대 자들의 테클과 위협 속에서도 아버지와 함께 나누는 정서적 유대감이 있었기 때문에 꿋꿋이 이겨나갈 수 있었는데 단 한 번 십자가에서 매달린 그 시간 동안만큼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죄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도 얼굴을 돌리셔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얼굴을 구하는 그 절대절명의 시간에 찾을 수 없는 그 얼굴 때문에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셨다(막15:34) 그러니까 예수님은 땅 위에 와 사셨던 그 일생에 우리의 죄 때문에 단 한 번 그 얼굴을 놓치신 셈이다. 그때 단 한 번 놓치셨던 아버지의 얼굴이, 그때 단 한 번 아버지와 격리되었던 그 고통과 슬픔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었고 아버지와 격리되어야 하고 그 얼굴의 가리움을 받아야 하는 그 고통을 두려워하시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이 내게서 지나게 해달라고 그토록 기도하신 것 같다. [ 교훈과 적용 ] 어린아이들의 경우 영유아기 시절(0-2세) 심리적 발달 가운데 대상 영속성이 생기고 자신과 친밀함이 형성된 어머니에게 애착(愛着) 형성이 이뤄진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서적 유대감이라는 것이며 이것 때문에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할 때 분리불안 증세를 느끼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낯가림이 생기게 된다. 이 애착이 형성되어야 할 시기에 제대로 애착 형성이 되지 못하면 자폐증이 생기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내적 행동에만 열중하게 되는데 오늘의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것들이 나의 영적 생활에도 나타나고 있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어도 아무 반응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지만 아직 애착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이 없는데도 분리불안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만 골몰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 영적 자폐증에 빠진 것이 아닐까(?) 오늘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 곧 하나님께 대한 갈망과 목마름을 가지며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굶주려하는 영적 애착 관계가 절실하게 필요한 나를 본다. TV나 인터넷 앞에서는 몇 시간씩 보낼 수 있으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찾는 것은 단 몇 십분도 할 수 없어서 영적으로 황폐해지고 하나님께 향한 친밀감이나 정서적 유대감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하라(Seek His Face Always)는 이 말씀을 오늘 하루 되새김하며 더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고 싶다. "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 [16:10] - 아멘 - 주님! 이 땅에 계셨을 때 아버지께 향하여 가지셨던 그 애착과 정서적 유대감을 저도 갖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찾으시며 구하시고 거기에 목을 매시고 목숨을 거시며 사셨던 주님의 그 본을 내가 따를 수 있게 하소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갈망으로 말씀에 굶주리고 목마른 영성을 간직하게 하소서 예수님처럼 항상 아버지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내 삶의 존재 이유와 의미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00:15
유홍열
가을이 깊어갑니다. 나뭇잎은 하나둘 자신을 내려놓고 바람은 여름의 무거운 열기를 조용히 걷어냅니다. 이 가을, 말씀 앞에 앉으니 오늘 본문이 내 마음에 나지막이 묻습니다. 너는 오늘.,.,, 무엇을 감사하며 살고 있느냐? 감사가 몸에 벤 사람들은. 아주 작은일에도 감사이지만 불평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무조건이 더 많습니다 내 삶에,.,. 무엇을 감사 하겠는지요 다윗은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던 날 베옷을 입고 찬양대를 세워 하나님을 노래하게 합니다. 그 노래는 단순히 기뻐서 부른 감정의 탄성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가장 화려한 성공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가장 가난했던 시절을 끄집어내어 기억함으로 감사를 시작합니다. 그때에 너희 사람 수가 적어서 매우 보잘것없으며 그 땅에 객이 되어... (19절) 아이고.. 글쿠나. 사람들이 잘나가면 뒤도 안돌아 보는데,. 다윗은.. 무언가 난사람이야 돌아보면 나 역시 아무 힘도 없는 나그네에 불과했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내일의 불안에 밤잠을 설치며 세상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던 존재인데.... 그러나 내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은 세상의 거대한 위험을 향해 호통치시며 나를 지켜내셨습니다. 나의 기름 부은 자에게 손을 대지 말라! [22] 우리는., 오늘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좋은 일이 생겼을 때만 감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하는 감정의 표현일 뿐입니다. 성도의 감사는 하나님이 지금 까지 내 삶에 행하신 일, 그 세밀한 보호하심과 영원한 언약을 기억해 내는 거룩한 시선입니다. 돌아보니, 세상에 당연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따뜻한 밥을 먹고..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며.. 지친 몸으로나마 성전에 나와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는 이 모든 일... 위험이 없어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위험과 비바람 가운데서도 주님의 강한 손이 나를 꼭 붙들고 계셨기에., 누릴 수 있는 은혜의 산물 이었습니다. 기도가 응답될 때는 감사 하다가도 작은 가시 하나만 삶에 찔리면.. 왜 나에게 이러십니까 하며 서운해하던 나의 얕은 영성을 회개합니다. 수천 가지 은혜는 까맣게 잊고 단 한 가지 힘들고 서운한 일만 밤새도록 품던 불평의 습관을 이 가을날의 낙엽처럼 내려 놓습니다.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은혜를 발견해 내는 눈의 훈련 입니다. 오늘 내눈이 은혜를 감사로 보는 영적안목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감사라면 그 은혜를 행하신 하나님을 오늘도 신뢰함이 믿음이고 천 대에 걸친 그분의 약속을 바라봄이 소망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교만을 깨뜨리고 나를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만을 자랑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행하셨고, 주님이 지키셨으며., 주님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주님, 고맙습니다 라는 이 한마디가 뜨겁게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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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호
나는 오늘도 이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다윗이 언약궤 앞에서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감사하게 하던 그날의 노래가 마음에 떠오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라고 그는 먼저 말했습니다. 감사는 거창한 고백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는 작은 일이었습니다. 그가 행하신 일을 잊지 않고 떠올리는 그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그렇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오늘도 숨 쉬게 하심을 알아차리는 순간, 하루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식탁에 앉아 오늘의 밥을 앞에 두고 잠깐 멈추어 보십시오. 그것이 감사의 시작입니다. 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라고 본문은 이어 말합니다. 우리는 잘 잊습니다. 은혜를 받은 그날의 감격도 며칠이면 흐릿해집니다. 그래서 기억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공책 한쪽에 기도 응답을 적어 두거나 달력에 표시해 두는 그 작은 습관이 언약을 붙들게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이삭에게 하신 맹세,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하나님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신실함으로 일하셨습니다. 그때에 그 수가 적어서 매우 적고 그 땅에 거류하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민족에서 저 민족으로 옮겨 다니던 사람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사와 이직, 낯선 도시와 낯선 교회, 익숙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자주 외로워집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나그네 길에서 하나님이 아무도 그들을 학대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조용히 증언합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낯선 자리에도 그분의 눈길이 머물고 있습니다.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에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묻습니다. 나는 누구를 함부로 판단하고 있지 않은지, 누구의 마음을 가볍게 상하게 하고 있지 않은지. 하나님은 사람을 귀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말을 아끼고 한 사람을 더 소중히 대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 흔들리는 나를 붙드시는 주님. 오늘 하루도 감사로 시작하게 하시고 잊었던 은혜를 다시 기억하게 하소서. 나그네 같은 이 길에서 주의 눈길을 신뢰하며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온유한 마음을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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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25 | David Kim | 삶에서의 작은 순교 | pc |
| 06:51 | 한수혁 |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 | pc |
| 06:49 | 오현 | 시간을 이긴 기억의 노래 | pc |
| 06:33 | 김영조 | 9.28 역대상 16: | mobile |
| 06:16 | 서재학 | "거룩한 선순환" 성경으 | mobile |
| 05:39 | 차동길 | 영원한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의지하세요. | pc |
| 05:39 | 오철 | 역대상 16:7 | mobile |
| 05:39 | 정기용 | ♤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 pc |
| 04:43 | 박상형 | 기억 저장소에 소중히 간직하는 거룩한 정성 | pc |
| 01:45 | 장상인 | 言約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向한 讚揚. | pc |
| 00:33 | 박해동 |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애착 형성을 위하여 | pc |
| 00:15 | 유홍열 | 은혜를 기억하면 감사가 되고,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 pc |
| 00:00 | 임현호 | 나는 오늘도 이 자리에 조용 | mobi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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