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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의 소중한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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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다이어리에 묵상을 작성해보세요!
13:04
조희정
<예배자인가? 관중인가?> 역대상 15 : 16~29 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형식과 절차가 뭐가 중요한가?" 라고 흔히들 말 할 때가 있다.오늘 말씀엔 아주 자세하고 질서정연하게 찬양대의 순서와 조직,역할들이 이름과 함꼐 나열되어 있다. 연합하여 찬양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참 아릅답고 질서덩연하다. 9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아내인데도 남편의 진정한 예배를 몰라보다니 안타깝다. 목사님 강의에서 예배당에 모인 모두는 다 예배자들이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앞에서 부르는 찬양 인도자와 찬양단, 성가대, 특송 연주자들은 앉아있는 회중과 다를 바가 없다.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들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예배 본다"가 아니고 "예베를 드린다"이다.예배는 엎드리는 것이고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회중들은 가끔 찬양단이나 성가대를 공연 보듯이 설교를 강의 듣듯이 한다. 찬양이 어땠고,설교가 어땠으며 성가대가 어땠다는 등 평가를 한다. 예배자로 앞에 설 때 복장을 정갈하게 구분하고 머리 모양을 가다듬는 이유는 예배자로서 주님꼐 구분된 자로 서기 위함이며, 마주 보는 회중들이 예배에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 있다. 예배 때 마주보이는 다양한 에배자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누구인지 일일이 알 수는 없으나 대부분은 함께해서 너무나 은혜가 되는 귀한 지체들이다. 하나님만이 중심을 보시고 진정한 예배자들을 아실 것이다. 내가 주님 찾는 그 한 사람이 되길 간절히리 기도한다. 다윗이 기뻐 춤추고 찬양대를 세워 찬송하는 것 모두 감사 예배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내인 미갈은 마땅히 함께 기뻐하며 춤추는 것이 마땅하다.하나님의 궤가 주 뜻에 맞추어 들어오는데 기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미갈은 예배자가 아니라 관중이었다. 업신여기고 평가하며 판단했다. 예배의 방향을 정확히 인지하며 시선을 계속 하나님께 두는 나와 가족들이 되길 기도한다. 주님!!각 교회의 각 지체들마다 직임을 주시어 연합하여 예배를 드리게 하심을 감사 찬송 드립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고 주님의 거룩하심과 지존하고 존귀하심, 위대하심을 찬양드립니다. 주님을 위해 찬양하기 위한 존재로 생명 주심을 늘 기억하며 주를 향한 한마음으로 예배하는 저와 가족,공동체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관중이 되거나 미갈처럼 판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12:15
박도형
[시작기도] 하나님의 임재를 늘 갈망하고 사모하는 예배자로 거듭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말씀] 찬양대와 문지기 15:16~24 16 다윗은 레위 사람의 지도자들에게 말해 형제들을 세워 수금과 비파와 심벌즈의 반주에 맞춰 즐거운 노래를 크게 부르게 했습니다. 17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 형제 가운데 베레야의 아들 아삽, 그 형제 므라리 사람 가운데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웠고 18 그다음으로는 그 형제들인 스가랴, 벤, 야아시엘, 스미라못, 여히엘, 운니, 엘리압, 브나야, 마아세야, 맛디디야, 엘리블레후, 믹네야, 문지기들인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웠습니다. 19 연주자들인 헤만, 아삽, 에단은 청동 심벌즈를 치게 했습니다. 20 스가랴, 아시엘, 스미라못, 여히엘, 운니, 엘리압, 마아세야, 브나야는 알라모트에 맞춰 비파를 타게 했고 21 맛디디야, 엘리블레후, 믹네야, 오벧에돔, 여이엘, 아사시야는 쉐미니트에 맞춰 수금을 켜게 했습니다. 22 레위 사람의 우두머리인 그나냐는 노래를 맡게 했습니다. 그는 노래를 잘했으므로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23 베레갸와 엘가나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게 했습니다. 24 제사장들인 스바냐, 요사밧, 느다넬, 아미새, 스가랴, 브나야,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불게 했습니다. 오벧에돔과 여히야도 역시 궤 앞에서 문을 지키게 했습니다. 다윗과 미갈 15:25~29 25 이렇게 다윗과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천부장들은 오벧에돔의 집에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왔고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26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오는 레위 사람을 도와주셨으므로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27 그때 다윗은 고운 삼베로 만든 겉옷을 입고 있었는데 궤를 메고 오는 모든 레위 사람이나 노래하는 사람이나 성가대를 지휘하는 그나냐도 모두 고운 삼베옷을 입었습니다. 다윗은 또 삼베로 만든 에봇을 입었습니다. 28 온 이스라엘은 뿔나팔과 나팔을 큰 소리로 불고 심벌즈를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 있게 켜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왔습니다. 29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의 성으로 들어올 때 사울의 딸 미갈이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미갈은 다윗 왕이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왕을 비웃었습니다. [묵상] 여호와의 궤가 들어올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비로서 허락하셨음을 깨닫고 매우 기뻐합니다. 그는 그 기쁨을 찬양과 춤으로 온 마음과 몸을 다하여 표현합니다. 이모습은 너무 기뻐 주체할수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모습이였을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모습을 본 미갈은 속으로 비웃습니다. 왕의 체면을 차리지 않고 경솔하게 행동한다 생각했던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순수한 기쁨을 기쁘게 받으시고 미갈의 위선적인 태도를 징계하십니다. 우리는 누구의 눈을 두려워하며 살고있는지요. 하나님인지 세상의 눈인지 생각해봐야합니다.
11:56
김성구
평안과 기쁨의 날, 그리고 말씀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소중함을 알고 최선을 다해 예배하는 다윗을 봅니다. 저도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의 예배속에서 최선을 다하게하소서!
11:05
서재학
"찬양과 경배"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찬양과 경배는 반드시 필요하다. 형식이 어떻든 관계없다. 성가형식은 그 나름대로 깊이와 공동체성이 있다. 밴드형식은 그 나름대로 정교함과 화려함이 있다. 본질은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찬양으로 먼저 드리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갖지 않고 그저 노래만 부른다면 시끄러운 소리의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본문에서는 궤를 옮기기 전에 찬양으로 경배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전에 마음가짐을 다잡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찬양하고 경배한다. 우리의 찬양도 이래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부분을 충성되이 연습해야 한다. 음악적 공연에 지난다고 생각치 말고 나의 손끝과 입술에서 경배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자. 이를 기억하고 오늘도 찬양을 준비하길 소망한다. 찬양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순서다. 최선의것과 정교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리자. 그리고 찬양속에 있는 메시지를 삶으로 살아내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찬양한다면 우리가 보기엔 조금 부족해도 하나님 보시기엔 영광스러운 찬양일 것이다.
10:41
금신향
노래하는 자들을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고 언약궤를 즐거이 오벧에돔의 집에서 메고 옴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언약궤를 다윗 성에 메어 올림 미갈이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김
10:41
이승봉
찬양대와 문지기 15:16~24 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17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의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그의 형제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18 그 다음으로 그들의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19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20 스가랴와 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마아세야와 브나야는 비파를 타서 알라못에 맞추는 자요 21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22 레위 사람의 지도자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인도하는 자요 23 베레갸와 엘가나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24 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과 느다넬과 아미새와 스가랴와 브나야와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이더라 다윗과 미갈 15:25~29 25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26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27 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29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10:27
윤동호
부족장, 제사장의 시대를 넘어 이제 우리 각각의 성도가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한 제사장된 신분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사명과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과 삶 자체가 성전이며 예배가 되어야 하는 이유 입니다. 내가 높아지고 내가 강하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약함과 하나님의 강함, 나의 작음과 하나님의 크심만을 드러내며 진정 기쁨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 헌신하며 영광드려지는 산제사와 같은 삶을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08:34
이희승
오늘 묵상은 그만 본문을 따라가다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다윗 시대의 악기의 모습들이 궁금해진 나는 놋제금이니, 비파니, 수금이니, 나팔이니 하는 등의 악기 종류들이 궁금해졌고, 노랫소리들과 어우러지는 그 협주가 어땠을까 상상하면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만 지름신이 내려서 <성경문화배경 사전> 이라는 그림책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2017년 생명의 말씀사에서 발간한 이 백과사전이 고대 근동의 문화를 이해하고픈 내 갈증을 만족시켜 주려나 모르겠다. 암튼 음악에 남달리 조예가 깊었던 다윗 왕은 오벳에돔의 집에서부터 다윗 성으로 법궤를 옮겨 오면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동원하여 법궤가 자신이 머무는 성으로 향하게 된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연주를 하도록 명령한다. 다윗 왕 때 새로 정비된 찬양대 가문들에 관한 설명이 앞서서 레위 지파의 족보를 설명할 때 한 차례 나왔었다 [대상6:31-48]. 헤만과 아삽과 에단이 우두머리로서 노래도 하고 놋제금도 연주하였다 (17절과 19절). 놋제금은 꽹과리 같은 타악기였으니 이들이 아마 노래하면서 악곡의 박자와 전반적인 흐름을 주도했던 듯하다. 그 다음은 비파를 연주하던 스가랴, 아시엘, 스미라못, 여히엘, 운니, 엘리압, 마아세야, 브나냐 등이었고 (20절), 수금을 타는 맛디디야, 엘리블레후, 믹네야, 오벧에돔, 여이엘, 아사시야 등이었다 (21절). 비파와 수금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비파는 땅에 기대 놓고 연주하고 공명통과 줄이 직각인데 반해, 수금은 그보다 작아 손에 들고 주로 연주하며 줄의 개수나 모양은 비교적 자유롭다고 한다. 노래를 인도하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는 그나냐였고 (22절), 제사장인 스바냐, 요사밧, 느다넬, 아미새, 스가랴, 므나야, 엘리에셀 등은 법궤 앞에서 나팔을 불었다 (24절). 법궤의 앞과 뒤에 각각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들이 배치 되었는데 베레갸와 엘가나, 오벧에돔과 여히야가 그들이었다 (23절~24절).
08:17
김명현
** 관찰(Observation)과 해석(Interpretation) 15장 후반부에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을 찬양예배로 묘사한다. 수금과 비파와 심벌즈를 노래와 함께 연주하고 문지기도 대동하였다. 다윗과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천부장들은 매우 기뻐했으며,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오는 레위 사람을 도와주셨다고 한다. 29절에서는 사울의 딸 미갈이 창문으로 내다보고 다윗 왕이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왕을 비웃었다고 한다.
08:14
이광순
260926 - 한 줄 큐티 역대상 15:16-29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이 명령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언약궤를 메기 전, 이미 저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배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언약궤를 메는 날과 같이 늘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늘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늘 예배하는 삶이 준비되어 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완벽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즐거운 소리를 내자. 온몸과 마음을 다해 즐거운 소리를 내자. 언약궤를 옮기는 그 기쁨을 노래하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는 그 즐거움을 노래하자. 언약궤를 멜 준비가 되어 있는 삶, 그분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삶, 예배의 즐거움을 누리는 삶, 그런 삶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내가 입술을 열어 내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즐거운 목소리로 내 아버지를 높이 찬양합니다. 아버지를 만난다는 감격에, 아버지를 찬양한다는 그 즐거움에, 내가 목소리 높여 하늘을 향해 노래합니다. 주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주는 우리를 돌보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와 내 식솔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찬양합니다. 나와 내 집은 오직 아버지만을 찬양합니다.
07:33
김경애
● 대상 15:16~29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우리 각자 어깨에 뭘 메고 있을까? 돈. 명예. 장수. 건강. 자손... 각자 귀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맡기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기꺼이 도와주신다.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그리고 그 은혜로 지금을 마주하게 하셨다. 현재 내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 짧은 인생길에서 고비마다 인도해주셨습니다. 어떤 길이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또한 나아갈 것입니다. 인도하시고 붙잡아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07:18
David Kim
하나님의 행차 소리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예배자 역대상 15:16-29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대상15:16) 즐거운 소리... 1. "즐거운 소리"(대상15:16)는 내가 부르짖는 소리가 아니라 내게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소리이고... 그 하나님이 이제 내 삶으로 나아오신다는 "하나님의 행차 소리"가 아닐까. 그리고 그 하나님의 행차를 준비하는 소리이다. 2. 하나님의 행차를 준비하는 것은 "몸을 성결하게"(대상15:14)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죄들, 죄된 습관들을 깨끗히 그리스도의 보혈로 회개하고 씻음을 받는 것이 먼저임을 말씀하신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의 궤를 꿰라고 하신다(대상15:15). 그저 상자처럼 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 내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증거되는 두개의 막대기가 삶을 꿰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에서 있는 체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채"(대상15:15)로 삶을 꿰어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함께 하도록 붙여주시는 공동체를 통해서 더욱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궤는 두개의 막대기로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최소한 네 명이 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함께 삶에서 보여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십자가를 말씀의 언약궤에 함께 꿰고 하나님이 임하시길 함께 중보하는 공동체를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고 나면 어깨에 메라신다(대상 15:15). 내가 편한대로 우상 섬기듯 소달구지에 싣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예배드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군인들의 어깨에 맨 견장처럼 때론 그것때문에 무겁고 힘들고 어려움도 겪지만 어깨에서 빛나는 모습을, 그래서 세상이 나를 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발하는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3. 근데 오늘 말씀은 자꾸만 어제 말씀의 마지막 부분(대상15:14-15)에 눈이 간다. 내 삶에서 하나님이 행차하시기 위한 준비를 다지라는 말씀으로 받는다. 회개로 죄씻음을 받고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들이 꿰지는 삶... 중보기도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삶 자체가 예배로 드려지게 되면 더 이상 세상에서 체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채"(대상15:15)로 삶을 꿸 수 있게 됨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행차를 준비하는 "즐거운 소리"(대상15:16)... 하나님의 언약궤의 나아감... 말씀으로의 나아감... 묵상과 큐티의 나아감이 바로 하나님의 나아감이요 하나님의 행차라고 수많은 천사들이 외치는 듯하다. 그 하나님의 행차에 준비하는 것들이 눈에 띤다. 노래, 비파, 수금, 제금, 나팔, 노래하는, 문지키는, 문지키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신 것에 감사하여 노래, 비파, 수금, 제금, 나팔로 찬양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신 하나님의 일하시는 손 끝에 맞춰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역사하신 악보대로 찬양하기를 원하신다. 나는 그저 하나님이 어떻게 내 삶 가운데 역사하셨나 하며 하나님이 작곡하신 악보만 잘 보면 됨을 고백한다. 어쩌면 하나님은 "네가 할 것은 내가 다 하니까 너는 나를 그저 찬양만 하면 어떻겠니?"하고 꽤 손해나지 않는 제안을 내게 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를 위해 대신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 최선임을 말이다.
06:56
오현
*왕관을 벗고 어린아이가 되는 시간* 웃사의 뼈아픈 죽음과 석 달의 멈춤 끝에, 마침내 하나님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왔다. 역대상 15장 후반부는 죽음의 두려움이 짙게 배어 있던 실패의 자리가 어떻게 환희의 축제로 변모하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본문은 참된 예배가 감정의 분출을 넘어선 정교한 질서임을, 그리고 체면이라는 자아의 껍질을 깨뜨릴 때 비로소 도달하는 영적 자유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1. 환희를 조율하는 질서 다윗은 그저 감정에 취해 궤를 맞이하지 않았다. 그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들을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을 타는 자들을 구별하며, 노래에 익숙한 자를 세워 찬양을 지휘하게 하였다. 언약궤를 옮기는 기쁨의 행진은 치밀하게 계획되고 조직된 거룩한 합주였다. 우리는 종종 뜨거운 열정과 체계적인 질서가 서로 반대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최상의 예배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말씀의 원칙이라는 악보 위에 정교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감정은 쉽게 식어버리지만, 질서 안에서 조율된 헌신은 하늘을 울리는 교향곡이 된다. 하나님을 향한 열광에는 거룩한 질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2. 두려움을 넘어선 어깨 본문 26절은 “하나님이 여호와의 메는 언약궤를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라고 증언하였다. 이전의 실패로 인해 궤를 메는 레위 사람들의 어깨에는 짓누르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웃사의 비극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의 규례대로 순종하여 궤를 메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어깨를 도우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히 짊어지기로 결단할 때, 그 짐은 우리를 짓누르는 고역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순종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일상을 가볍게 만드는 은혜이다. 3. 창문에 갇힌 구경꾼 언약궤가 들어올 때, 본문은 극명히 대조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왕의 체면과 위엄을 모두 내려놓고 베 에봇(제사장의 소박한 옷)만을 입은 채 어린아이처럼 춤추는 다윗, 그리고 그를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업신여기는 사울의 딸 미갈이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왕관을 철저히 잊었다. 자신이 섬겨야 할 진짜 왕이 오셨기에, 그는 보좌에서 내려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춤을 추었다. 반면 미갈은 왕궁의 창문이라는 안전하고 높은 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왕실의 품위라는 잣대로 예배를 평가하는 냉소적인 방관자였다. 참된 은혜는 창밖에서 무대를 평가하는 관객에게는 결코 임하지 않는다. 내 자아를 깨뜨리고 그 은혜의 뜰 안으로 뛰어들어 춤추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06:35
차동길
다윗과 온 백성은 언약궤를 옮기며 찬양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맞이합니다. 예배가 질서와 성결, 겸손과 기쁨 속에서 드려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다윗 왕은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울의 딸 미갈은 춤추는 다윗 왕을 보고 냉소적 반응을 보입니다. 나의 예배 태도는 다윗인가, 미갈인가? 여호와 하나님! 오늘도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여 주시사 숨어 들어오는 사탄, 마귀를 물리쳐 주시고 오고 가는 소식과 만남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4:47
박해동
여호와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오늘의 말씀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시편의 말씀은 문들아 머리 들어라"로 시작되는 시편 24편 7절~10절 말씀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다윗은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게 되는 날 온 우주 만물의 창조자시며 주재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과 성전에 들어가시게 되는 그 감사와 감격에 젖어서 성전의 문을 의인화하여 말하기를 문들아 머리 들어라 영광의 왕이시며 전쟁에 능하신 왕이신 그가 들어가시려고 하니 이 하나님을 맞이하기 위해 고개를 들고 활짝 열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그간 치룬 수 많은 전투에서 항상 앞장 서서 나가시며 승리를 주셨던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의 능력을 친히 경험한 자로서 지금 언약궤를 어깨에 멘 제사장들의 뒤를 따라 나팔 불며 찬양하면서 따르는 수 많은 인파의 행렬을 이끌며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성전으로 영접하는 환영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꽉 닫힌 문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제 마음을 활짝 열고 영광의 주님을 모셔드리고 그의 복스러운 다스림과 보호를 받고 살아가라는 영적 의미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이 대대적인 환영식에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꽉 닫힌채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하는 한 사람 곧 사울의 딸 미갈이 언급됩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이 춤추며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15:29) [ 교훈과 적용] 기뻐하는 자로 더불어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로 더불어 슬퍼하며 마음을 같이 한다는 표시를 함이 얼마나 소중한 신앙 인격이 되는지 그간 주님을 섬겨오는 세월 속에서 숱하게 경험했습니다 언약궤가 입성하는 날 다윗이 너무 좋아서 춤을 추다가 베옷 에봇의 바지가 벗겨질 정도로 몸을 흔들었다는 기록이 사무엘하 7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거기 보면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첫 아내가 된 미갈이 다윗이 모든 행사를 마친 후 참가한 이들에게 빵과 건포도 같은 먹거리를 제공한 후 자기 가족을 축복하기 위해 궁전에 들어왔을 때 자기 남편 다윗을 경멸하며 표독스럽게 하는 말이 나와 있고 이 경멸하는 말에 대해 다윗의 답변도 나와 있습니다 이 책 역대기 저자는 이런 이야기들은 다 빼고 다윗이 아직 궁전으로 들어오기 전 미갈이 창 밖을 내다보며 다윗을 경멸한 마음만 적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다 들여다 보시고 아신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입성하는 날 왜 미갈은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도리어 경멸의 심리를 가짐으로 스스로 자신을 불행한 자리로 밀어넣고 있는 것일까요? 역대기 저자는 미갈의 심리를 통해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 마음을 열고 닫는 것에따라 그의 행복과 불행이 갈라지며 행불행은 자기 마음에서 부터 비롯되고 좌우된다는 것을 이 한 구절 속에서 마음 깊이 받아드리게 됩니다 어제 추석 명절을 맞아서 많은 이들에게 명절 인사 카드를 보내기도 했고 받기도 했습니다 나는 누군가가 나의 카톡에 보내오는 글이나 이미지에 대해 꼭 좋아요 라는 공감 표시를 빠트리지 않고 해 주는 것을 나의 철칙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상대방에 대한 격려 표시로 이런 것은 돈 드는 일도 아니고 그저 클릭 한번으로도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니 더욱 잘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나의 친척 가운데 어떤 분은 하루에 평균 5-6번 보내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응답하는 이유는 나는 당신을 향해 항상 마음이 열려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셈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향해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신의 열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곧 자신의 행복과도 관련된다는 것을 이 아침 모두 기쁘고 행복한데 혼자 닫힌 마음으로 불행에 빠져있는 미갈을 보며 마음 깊이 새기는 교훈으로 받아드립니다 주님! 여기 세상을 살다보면 마음이 상하고 닫히게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럴지라도 나 스스로 마음을 닫고 불행에 빠지늗 일이 없게 하시고 기뻐하는 자로 함께 기뻐하며 슬퍼하는 자로 함께 슬퍼하고 주님과 다른 이들을 향해 활짝 열린 마음으로 살아기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04:30
박상형
다윗의 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대상15장16-29) 1. "체면"이라는 투명한 감옥에 갇힌 우리들에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그물망 속에 살아간다. "사회적 지위"나 "체면"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스스로를 투명한 감옥에 가두고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미덕이라 교육받아 왔다. 보이지 않는 기대라는 숨 막히는 무게를 견디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 영혼의 생동감을 제물로 바치고 있을까? 성경 속 다윗 왕은 이런 우리에게 당혹스러울 만큼 파격적인 장면을 제시한다. 한 나라의 통치자라는 지위도, 왕의 위엄도 모두 내던진 채, 그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그의 아내 미갈이 "왕이 체신머리없이 행동한다"며 업신여길 정도였으니, 그 춤이 얼마나 격렬하고 꾸밈없었을지 짐작이 간다. 과연 다윗은 무엇을 보았기에 그 무거운 체면의 외투를 벗어 던지고 "절대적 자유"의 춤을 출 수 있었을까? 그가 발견한 기쁨의 본질을 살펴 본다. 2. 효율의 "수레"가 아닌 본질의 "어깨"를 깨달을 때의 희열 다윗의 춤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깨달음의 환희"였다. 이전에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편리하고 효율적인 "수레"에 실어 운반하려다 실패하고, 웃사가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경험했다. 그 실패와 이번 성공 사이에는 역대상 14장에 기록된 블레셋과의 전쟁이 놓여 있다. 다윗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매 순간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세밀한 음성을 듣는 법을 훈련받았다. 그 훈련을 통해 다윗은 비로소 깨달았다. 언약궤는 침묵하는 수레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들의 "어깨"에 메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2)"레위 사람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선택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분을 섬기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효율을 상징하는 수레는 하나님과의 거리를 만들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어깨로 메는 행위는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는 친밀한 동행을 의미한다. 다윗의 기쁨은 단순한 행사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아차렸다는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과 일치될 때, 인간은 존재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질적인 희열을 맛보게 된다. 3. 타인의 비웃음을 압도하는 "한 수 위"의 기쁨 다윗의 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미갈은 "사회적 체통"이라는 상대적 가치에 갇혀 있었다. 그녀에게 다윗의 행동은 품위를 잃은 수치일 뿐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기쁨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상대적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절대적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윗은 지금 자신이 기뻐하는 수준을 넘어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을 넘어선 "한 수 위의 기쁨"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자녀가 느끼는 말로 다 못 할 충만함과 같다. "아버지가 저토록 기뻐하시는데, 나의 체면이 무슨 상관인가?"라는 마음이 그를 지배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의 기쁨과 주파수를 맞추게 될 때, 타인의 평가나 사회적 체면이라는 감옥은 더 이상 우리를 가두지 못하는 낡은 창살이 될 뿐이다.
03:57
정기용
♤ 다윗은 왕복이 아닌 베 에봇을 입었고! 다윗은 지난날 언약궤를 옮기다 하나님 규례대로 옮기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언약궤를 옮기는 것을 본다. 13절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그리고 27절 "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깨달은 다윗은 잘못된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 즉 말씀대로 행하는것을 본다. 그리고 다윗의 복장을 보면 왕복이 아닌 베 에봇을 입고 자신을 낮추며 한사람의 예배자로 최선을 다해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본다. 주님, 어떤 사역이라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과 아버지의 마음을 살피며 말씀대로 주의일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동역하는 자들과 연합하지 못하고 혼자서 일하며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데만 급급하여 열정과 조급함이 기도보다 앞서지 않게 하소서.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기는 것을 봅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아닌 세상의 형식과 외식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며, 하나님을 속이는 자로, 하나님의 사람을 업신여기며,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외식과 형식이 아닌 신령과 정직함으로 주를 섬기며 살아가게 하소서.
02:32
강사라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갈망은 삶의 구체적인 순종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모셔 오는 과정은 단순한 국가적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직전의 실패를 거치며,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다가가는 길에는 기분이나 열정보다 그분이 명하신 말씀의 질서가 선행되어야 함을 깨달은 까닭입니다. 레위 사람들의 정교한 직무 분담과 찬양의 배치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자 한 경외함의 표현이었습니다.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되, 그 임재를 나의 틀과 열심으로 규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왕의 화려한 관복을 벗어 던지고 삼베 에봇을 입은 채 계급과 체면을 넘어 춤춘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온전히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창밖에서 그를 비웃었던 미갈의 모습은, 거룩한 임재의 순간에도 한 걸음 물러서서 구경꾼으로 남은 이들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미갈에게 언약궤는 왕권의 위엄을 세워줄 정치적 도구였을지 모르지만, 다윗에게는 오직 엎드려 경배할 하나님 한 분만 보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떠한지 생각해봅니다. 임재를 사모한다면서도 여전히 나의 체면과 세상적 기준을 창가에 세워둔 채, 하나님을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내 삶의 모든 자격을 내려놓고, 그분의 거룩함 앞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엎드리는 자가 가장 깊은 임재를 경험하고, 가장 큰 기쁨을 누리게 될줄 믿습니다.
02:23
장상인
1Chronicles/?代志上/歷代志上/역대상15:29(16-29) As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was entering the City of David, Michal daughter of Saul watched from a window. And when she saw King David dancing and celebrating, she despised him in her heart. 耶和?的???大?城的?候,??的女?米甲???里往外?看,?大?王踊?跳舞,心里就??他。 こうして、主の契約の箱はダビデの町にはいった。サウルの娘ミカルは、窓から見おろし、ダビデ王がとびはねて喜び踊っているのを見て、心の中で彼をさげすんだ。
00:35
유홍열
명절이 지나니 가을이 더 깊어갑니다. 나뭇잎은 하나둘 내려놓고 하늘은 조금씩 높아지는 계절, 문득 지나온 나의 발자국을 돌아봅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잘해서 주님의 일을 했을까?" 돌이켜보니 무엇 하나 잘해서 시작했던 일보다, 부족하고 아는 것 없어도 은혜에 끌려 시작했던 일이 더 많았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참 잘난 사람이 많습니다. 말도 잘하고, 찬양도 잘하고, 성경도 많이 알며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이들을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은 한없이 작아집니다. 나는 저렇게 못하는데…" 비교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내 자리를 잃어버리고 구경꾼이 되며,마침내 주님의 일에서 발을 빼고 포기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하나님은 내 작아진 마음을 온유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 오던 거룩한 행진에는 눈에 띄는 찬양대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비파와 수금을 타는 사람, 나팔을 부는 사람, 땀 흘리며 궤를 메는 사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성전 문가를 조용히 지키던 문지기들이 있었습니다. 각자의 직무는 달랐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너는 필요 없다 하지 않으셨고 단 한 사람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성경에 그 이름을 귀하게 적어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손수 빚으신 주님의 나라에는 결코 쓸모없는 사람이나 작은 자리가 없습니다. 앞에 서서 이끄는 사람도 귀하지만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도 귀하며, 웅장한 찬양도 귀하지만 성전 의자를 조용히 정돈하는 손길도,문가에서 경계를 지키는 문지기의 발걸음도 하나님 눈에는 똑같이 숭고한 예배 입니다. 비록 내 시작은 떨리고 부족할지라도 내가 너를 돕는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기에 다시 용기를 내어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세상의 질문보다, 오늘 나는 무엇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라는 순전한 질문을 품고 싶습니다. 남들의 부족함을 미갈처럼 창밖에서 손가락질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너도 함께할 수 있어 하며 서로의 자리를 찾아주고 격려하는따뜻한 동역자가 되고 싶습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길목, 단풍잎 하나도 자기 모양을 자랑하지 않고 때가 되면 조용히 땅으로 내려앉듯, 남은 인생을 그렇게 주님 앞에 겸손히 드리고 싶습니다. 크게 빛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은사는 달라도 우리가 섬기는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시기에, 내게 맡겨진 작은 문지기의 자리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 합니다. 낙엽이 서서히 고운 채색 옷으로 갈아입는 이 가을날,내 헛된 체면과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 놓고 나를 도우시는 주님의 신실한 손을 꼭 잡습니다. 오늘도.,. 내게 주신 삶의 자리에서 신실한 문지기가 되어 감사함 으로 문을 열며,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마음 깊이 찬양합니다.
00:06
양선일
(하트)오늘하루도 하나님과 함께 말씀묵상(하트) 2026년9월26일 토요일 1804일차 ●묵상본문[역대상 15:16~29] [16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17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의 형제 중 베레갸의 아들 아삽과 그의 형제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18그 다음으로 그들의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19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20스가랴와 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마아세야와 브나야는 비파를 타서 알라못에 맞추는 자요 21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22레위 사람의 지도자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인도하는 자요 23베레갸와 엘가나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24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과 느다넬과 아미새와 스가랴와 브나야와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이더라 25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26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27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28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29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묵상제목[나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 것인가?] [25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설교를 하거나 예배 강의를 하면서 많이 나오는 부분이 오벧에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기돈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심으로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법궤를 가져가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겼다. 석달을 오벧에돔이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이 넘치는 것을 보고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에서 있어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축복받기를 원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예배자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00:01
임현호
다윗은 레위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찬양하는 자들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향하여 마음을 다하여 노래하게 하였습니다. 단순히 의식을 치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을 따르는 것보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예배를 살아있게 합니다. 그분께서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바로 참된 예배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악기를 다루었습니다. 비파와 수금과 나팔과 제금 소리가 어우러졌습니다. 각기 다른 소리이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한마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각기 다르게 살아갑니다. 하는 일도 말하는 것도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하나이면 충분합니다. 서로 어우러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누군가 돋보이려 하지 않고 함께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의 모습입니다. 언약궤가 다윗성에 이르렀습니다. 백성들은 기쁨으로 춤추고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 가운데 함께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갈은 창문을 내려다보고 마음이 들뜬 다윗을 보고 업신여겼습니다. 그녀는 예배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으로 충분해야 합니다. 다른 이의 시선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를 바라보십시오. 그분 앞에서 마음껏 찬양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 다윗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임재 가운데 머무는 자에게는 평안이 함께합니다. 우리도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 변화된 마음을 가집니다. 주님을 만나고 오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견딜 힘이 생깁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살아가십시오. 예배의 자리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주소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진심으로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가 함께 어우러져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예배를 통하여 주님과 만나고 힘을 얻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 time | name | title | Device |
|---|---|---|---|
| 13:04 | 조희정 | pc | |
| 12:15 | 박도형 |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예배자 | pc |
| 11:56 | 김성구 | 평안과 기쁨의 날, 그리고 | mobile |
| 11:05 | 서재학 | "찬양과 경배" 하나님을 | mobile |
| 10:41 | 금신향 | 기쁨의 예배자 | pc |
| 10:41 | 이승봉 | 찬양대와 문지기 15:16~24 | pc |
| 10:27 | 윤동호 |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아지는 예배가 되길 소망합니다. | pc |
| 08:34 | 이희승 |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 pc |
| 08:17 | 김명현 | 기쁨의 예배 | pc |
| 08:14 | 이광순 |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찬양합니다. | pc |
| 07:33 | 김경애 |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 pc |
| 07:18 | David Kim | 하나님의 행차 소리 | pc |
| 06:56 | 오현 | 왕관을 벗고 어린아이가 되는 시간 | pc |
| 06:35 | 차동길 | 참된 예배의 본질 | pc |
| 04:47 | 박해동 |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 pc |
| 04:30 | 박상형 | 다윗의 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 | pc |
| 03:57 | 정기용 | ♤ 다윗은 왕복이 아닌 베 에봇을 입었고! | pc |
| 02:32 | 강사라 |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갈망은 | mobile |
| 02:23 | 장상인 | 하나님의 臨在를 思慕하는 禮拜者. | pc |
| 00:35 | 유홍열 | 직무는 달라도 마음은 하나 | pc |
| 00:06 | 양선일 | 나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 것인가? | pc |
| 00:01 | 임현호 | 다윗은 레위 사람들에게 명령 | mobi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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